폴리크라테스…최초 해적인가, 그리스 영웅인가
폴리크라테스…최초 해적인가, 그리스 영웅인가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14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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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로 해상 패권 장악…헤라신전, 지하수로, 항구 확장등 고대문명의 건설자

 

폴리크라테스는 해적인가, 영웅인가.

폴리크라테스(Polycrates)BC 537~523년경에 그리스 사모스 섬(Samos Island)을 통치한 지배자였다.

그가 해적이었다는 주장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의 기록에 근거한다. 헤로도투스는 저서 역사에서 폴리크라테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폴리크라테스는 배 100척과 궁수 1,000명을 거느리고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그는 친구라 해도 빼앗지 않는 것보다 빼앗았다가 돌려주면 더 고마워 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많은 섬과 육지에 있는 많은 도시들을 점령했다.”

헤로도투스는 이오니아 출신으로 폴리크라테스보다 100년쯤 뒤의 인물이다. 그는 이오니아 지역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풀리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역사책에 적어 넣었을 것이다.

 

폴리크라세스와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 2세. (19세기 그림) /위키피디아
폴리크라세스와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 2세. (19세기 그림) /위키피디아

 

엄밀하게 말하면 폴리크라테스는 해적이 아니다. 당당히 사모스 섬을 통치하는 군주였다. 다만 이웃 섬과 그리스 본토에 들어가 약탈질을 했으니, 해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가 폭군(tyrant)이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역사가들이 일치한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가 권력을 잡은 것은 사모스 섬을 장악하고서부터다. 사모스 섬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를 신으로 모시는 섬이다. 헤라 축제가 열리던 날, 폴리크라테스는 형제 판타그노투스(Pantagnotus)와 실로손(Syloson)과 함께 이 섬을 차지했다. 권력은 형제 사이에도 나누는 법이 아니다. 섬을 지배하고 난후 그는 판타그노투스를 죽이고, 실로손은 추방했다.

그는 약탈을 통해 돈을 긁어 모아 갤리선 100척을 사들이고, 궁수 1,000명을 무장시켰다. 헤로도투스의 표현에 따르면, 폴리크라테스의 해군은 당시 그리스에서 최강이었으며, 그의 선단은 이오니아 지방의 해상 패권을 장악했다.

폴리크라테스는 소아시아의 큰 도시국가 밀레투스와 레스보스 섬을 공격해 제압고, 이를 통해 이집트의 파라오 아마시스(Amasis)와 연대해 지중해 동부에서 마음껏 약탈질을 했다.

 

사모스 섬의 고대 지하수로 /위키피디아
사모스 섬의 고대 지하수로 /위키피디아

 

그는 약탈해서 빼앗은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흥청망청 쓰지는 않았다. 사모스 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그를 영웅으로 받드는 사람들도 많다.

그가 한 업적 가운데 후세에 전해오는 것은 지하수로를 개척하고 헤라 신전을 건축했으며, 항구를 개축한 것이다.

사모스 섬의 지하수로는 1km에 달하는데, 기하학적 관점에서 건설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섬의 관광 명물로도 유명한 이 수로는 고대 그리스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준다.

헤라 신전은 이오니아식으로 지은 최초의 건축물로 평가된다.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건축물은 고대 그리스 3대 신전의 하나다.

그는 수도 피타고리온(Pythagorion)의 항구를 확장하고 수심을 깊게 했다. 이 항구는 오늘날에도 어항으로 활용되고 있다.

폴리크라테스는 또 아나크레온, 이뷰코스 등 당대의 시인들을 궁정에 초빙해 문예를 장려하기도 했다.

 

사모스 섬의 헤라 신전 /위키피디아
사모스 섬의 헤라 신전 /위키피디아

 

그는 그리스의 유명한 수학자 피타고라스와도 인연이 있다. 피타고라스도 사모아 섬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공부를 했다. 피타고라스는 폴리크라테스가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지참하고 이집트에 갔다. 하지만 폴리크라테스의 독재에 염증을 느껴 이집트에 잠시 머물다가 남이탈리아로 거쳐를 옮겨 그곳에서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기하학적 학설을 내놓았다.

 

사모스 섬 고대 항구의 유물 /위키피디아
사모스 섬 고대 항구의 유물 /위키피디아

 

그는 사모스 섬에서 많은 것을 일궈내고 제왕처럼 행동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야욕을 채울수 없었다.

폴리크라테스는 그리스 신들의 고향 델로스 섬을 지배하기 위해 해군을 파병했다. 이오니아의 리더임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내륙의 델피에서 호머의 시를 읊조리고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어찌 이오니아 놈이 감히 신전에 손을 대다니

그는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배에서 노를 젖게 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이 집단으로 반란을 일으켜 저항하다가 스파르타로 도망쳤다. 스파르타가 이들 망명객들을 앞세워 사모스 섬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폴라크라테스 활동지역 /위키피디아
폴라크라테스 활동지역 /위키피디아

 

그가 지중해 동부에서 해상권을 쥐면서 당대의 패권국이었던 이집트와 페르시아와 균형관계를 형성했다. 두 강대국은 때론 그와 제휴하고, 때론 그를 견제하게 되었다.

이집트 파라오 아마시스와의 일화가 전해온다.

 

이집트는 페르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폴리크라테스와 손을 잡았다. 이집트는 신()의 나라였고, 파라오 아마시스는 점성술을 믿었다. 아마시스는 폴리크라테스가 지금은 행운을 얻고 있지만, 언젠가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폴리크라테스에게 불행을 피하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 하는 물건을 버리라고 서신을 보냈다.

폴리크라테스는 아마시스 왕의 충고에 따라 그가 가장 좋아 하는 반지를 빼서 바다에 던져 버렸다. 자신의 도장이 새겨지고, 에메랄드가 박힌 황금 반지였다. 하지만 폴리크라테스는 애지중지하던 반지를 버리고 나서 큰 슬픔에 빠졌다.

어느날, 어부가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잡아 독재자에게 진상했다. 그가 물고기의 배를 갈라보니, 바다에 던져 버린 반지가 나오는 게 아닌가. 독재자는 아주 기뻤다. 그리고 이집트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이집트왕 아마시스는 편지를 받고 곧 불행이 닥쳐올 이 사나이와의 동맹이 깨졌다고 선포했다.

 

물고기의 배를 갈라 반지를 되찾는 폴리크라테스 /위키피디아
물고기의 배를 갈라 반지를 되찾는 폴리크라테스 /위키피디아

 

이집트 왕의 예감대로 폴리크라테스에겐 곧 불행이 닥쳐왔다.

사모섬 근처 마그네시아(Magnesia)의 지배자 오로에투스(Oroetus)는 일찌감치 페르시아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왕 캄비세스에게 폴리크라테스를 복종시키겠다고 보고했다. 오에로투스는 거짓말을 했다. 페르시아왕 캄비세스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데, 자신을 구해주면 엄청난 황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폴리크라테스는 순진하게 그의 말을 믿었다. 욕망에 눈이 멀어 마그네시아로 간 폴리크라테스는 곧바로 체포되어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책형에 처해졌다.

다시 의문을 제기해 본다. 폴리크라테스는 해적이었을까, 그리스의 영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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