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왕국…풍부한 전설 속 감문국
사라진 고대왕국…풍부한 전설 속 감문국
  • 아틀라스
  • 승인 2019.05.15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분 2년 석우로가 정벌…전설과 지명, 농악으로 이어져

 

경상북도 김천시는 소맥산맥 자락에 위치하고, 추풍령을 넘어 충청북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다. 김천시 개령면에는 고대에 감문국(甘文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신라가 조분이사금 2(서기 231)이 감문국을 정벌해 복속시켰다.

삼국사기에는 감문국에 대해 간단히 기록했다.

 

조분이사금 2(서기 231) 가을 7, 이찬 우로(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여 격파하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 (신라본기)

조분왕(助賁王) 2(서기 231) 7월에 이찬으로서 대장군이 되어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여 이를 격파하고 그 땅을 군현으로 만들었다. (열전 석우로조)

개령군(開寧郡)은 옛날 감문소국(甘文小國)이었다. 진흥왕 18(서기 557), 진나라 영정(永定) 원년에 군주를 두어 청주(靑州)라 하였으나, 진평왕 때 폐지되었다가, 문무왕 원년(서기 661)에 감문군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개령군으로 개칭하다. (지리지 상주조)

 

자료: 김천시
자료: 김천시

 

신라가 이 곳을 복속시킨 것은 소백산맥을 넘어 충청북도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남쪽의 대가야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조선 성종때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감문국 때의 궁궐터가 있으며, 감문현 북쪽 20리에 감문국왕인 김효왕릉(金孝王陵)’이 있고, 현의 서쪽 웅현리에 감문국 때 장부인(獐夫人)의 묘로 전하는 장릉(獐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김천시 감문면 삼성2리에 김효왕릉으로 추정되는 고적분과 고인돌 더미가 있다고 한다.

 

김천 지역에는 감문면, 감문천등 감문국과 지명이 남아 있고, 감문국과 관련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시에 따르면, 감문국 읍성은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감문산성으로 추정되며, 감문국의 궁궐의 초석으로 전해져 내려온 돌이 양천리 유동산 북쪽 밑에 있는 민가에 1969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감문국 삼성리 오성마을에는 감문국 시대의 김효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고분이 있는데 지금은 말무덤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개령면 서부리에서 신룡리로 넘어가는 길 옆에 있는 폐탑 석편(지금은 복원되었음)이 있는 근처에는 감문국시대의 장부인릉으로 전해지는 고분이 있어 감문국이 이곳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사’(東史)라는 사서에 아포(牙浦)라는 소국이 반란하자 감문국이 30명의 대군을 발병했다가 감천의 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의 감문국의 규모를 말해 주는 것이다. 군병 30명을 동원할 정도이면, 감문국의 규모는 600~700 가구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문국 나라제사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경북 김천시 계량면의 금릉빗내농악 /문화재청
감문국 나라제사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경북 김천시 계량면의 금릉빗내농악 /문화재청

 

개령면 동부리에는 동부연당이라고 불리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 연못이 감문국의 궁궐 연못이었다고 한다.

개령면 뒷산인 감문산에는 감문국의 성이었던 감문 산성이 남아있다. 토성이며 군창지, 봉화대 터 등이 남아있다. 감문면에는 속문산(또는 백운산)에 속문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이 감문국의 마지막 군대가 신라에 저항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개령면 광천리 빗내 마을에 빗내 농악이 전수되고 있는데, 이 농악이 감문국의 군악이라고 전해진다. 빗내 농악은 옛 감문국의 나랏제사로,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가 혼합해 동제(洞祭)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매년 음력 정월 6일에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와 함께 진굿(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제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령면 신룡리에는 감문국의 공주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감문국 공주와 신라 총각이 사랑에 빠졌는데, 집안에서 이를 눈치채고 반대하자, 공주가 궁에서 도망쳐 총각을 기다리다 굶어죽었다는데, 그 곳을 애인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감문면 금라리 마을 서쪽 봉화산 아래에 있는 공개바위에도 감문국의 전설이 흐른다. 외국의 한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감문국을 침략할 구실을 만들고자 감문국의 장수에게 바위로 공개놀이를 제의했다. 두 장수는 공개놀이를 하는데, 감문국 장수가 실수하여 공개바위를 떨어뜨리자 외국 장수가 조롱했다. 이에 화가 난 감문국 장수가 바위로 외국 장수를 쳐 죽여 외침을 막았다고 한다.

김천시는 고대 감문국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시의 상징으로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개령면에 감문국이야기나라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