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스탈린 집권시기인 1931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Stavropol)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기근 때인 1933년 당이 지시한 파종계획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고, 외조부는 1937년 대숙청기에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강제노동수용소(굴락)에 수용되었다. 고르비(애칭)는 ‘인민의 적’ 출신이었다.
이런 출신성분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적군에 입대해 독일군과 전투에 참전했고, 고르비도 철저한 스탈린주의자로 신념을 굳히며 당의 불신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고르비는 25세에 공산당 청년조직인 콤소몰(Komsomol)에 가입해 리더십을 발휘했고, 31세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레닌 훈장과 붉은노동깃발 훈장을 받은 덕분에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부인 라이사(Raisa Titarenko)를 만나 결혼했다. 1955년 부인과 함께 고향인 스타브로폴로 돌아와 콤소몰 선전선동부장의 보직을 받아 일했다.
고르바쵸프가 개혁에 눈을 뜬 것은 흐루쇼프의 연설을 들은 후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대학동창들과 개혁을 토론했고, 아내 라이사와 농촌 집단화의 문제점을 연구했다. 하지만 1954년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 그는 권력 실세의 신임을 얻기 위해 브레즈네프를 칭송하는 연설을 자주했다. 그런 덕분인지, 그는 매우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1956년 스타브로폴 콤소몰 제1서기에 올랐고, 35세였던 1966년에 스타브로폴 시당의 제1서기가 되었다.
고르비는 1970년대에 스타브로폴 대운하(Great Stavropol Canal)를 완공, 농업생산력을 증진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때부터 모스크바의 당지도부가 그를 주목하게 되었다.
스타브로폴은 유명한 온천관광도시로, 당 고위층이 휴가를 보내는 명소였다. 그는 당의 거물이 내려오면 극진히 모셨고, 이때 정치국원인 유리 안드로포르, 미하일 수슬로프를 알게 되었다. 특히 안드로포프는 고르바쵸프를 유망한 젊은이로 보고 브레즈네프를 만나게 주선하기도 했다.
고르바쵸프는 1970년대에 아내와 함께 서유럽을 다섯 차례나 여행했다. 부부는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을 다니며 공산주의가 부르죠아 민주주보다 우월하다는 당의 주장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서유럽의 언론과 집회의 자유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1975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과도한 업무와 가정 문제로 생긴 스트레스를 음주와 흡연으로 달랬고, 수면제와 안정제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후 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실질적 권력은 KGB 수장인 유리 안드로포프(Yuri Andropov),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i Gromyko), 국방장관 드미트리 유스티노프(Dmitriy Ustinov)의 손에 넘어갔다.
1978년 안드로포프는 유능한 인재로 눈여겨 보았던 고르바쵸프를 모스크바로 불러 당 중앙위원회에 농업담당 서기로 임명했다. 고르비는 이듬해에 당 역사상 가장 젊은 48세의 나이에 최고 정책결정 그룹인 정치국원이 된다. 1979년 소련 지도부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을 때, 그는 반대의견을 가졌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가 올 때까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측면에서 그는 철저한 기회주의자였다.
1982년 11월 브레즈네프가 사망하고, 그의 후원자인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을 계승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는 나이가 많은데다 치명적인 신장병을 앓고 있어서 정치국 회의를 고르바쵸프에게 맡기고 지병 치료에 주력했다. 안드로포프는 서기장 1년만인 1984년 1월에 숨졌다.
안드로포프는 죽기 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고르바쵸프를 지명했다. 하지만 정치국에선 53세의 고르바쵸프가 너무 젊다는 의견에 대두되었다. 소련 지도부는 안드로포프의 유언을 일부 삭제하고 후계자로 콘스탄틴 체르넨코(Konstantin Chernenko)를 지명했다.
브레즈네프가 18년간 집권하는 동안에 소련을 이끌어간 집단지도체제도 늙어 갔다. 브레즈네프는 76세에 사망했고, 안드로포프 68세에, 체르넨코 73세에 각각 당서기장에 올랐다. 체르넨코가 서기장이 되었을 때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i Gromyko)도 70대 중반이었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공유하며 함께 늙어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소련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치국에 형성되었다. 고르바쵸프는 자신을 체르넨코 후임 서기장으로 밀어준다면 그로미코를 소비에트 최고회의 의장으로 추대하겠다고 제의해 그로미코의 내락을 받았다.
체르넨코 시기에 고르바쵸프는 외교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1984년 소비에트 외교위원장에 지명되어 이탈리아, 영국등을 방문했다. 그해 12월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총리를 만나 군비축소등의 의견을 개진, 깊은 인상을 주었다. 대처는 차세대 소련 지도자를 알아보았고, 미국도 그를 서방세계와 함께 일을 할수 있는 인물로 보았다.
체르넨코는 당서기장이 되자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고, 정치국에 후계자를 준비하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는 집권 1년후인 1985년 3월에 사망했다.
곧이어 정치국 회의에서 고르바쵸프를 서기장을 선출하는 문제가 투표에 붙여졌다. 당원로인 그로미코가 후원했기 때문에 반대자가 없었다. 정치국은 만장일치로 고르바쵸프를 소련 제8대 서기장으로 추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마지막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될 줄을 아무도 몰랐다.
고르바쵸프는 앞서 7명의 서기장과 달리 10월 혁명 후에 태어났다. 블라디미르 레닌에서 체르넨코까지 모두 1917년 혁명 이전에 태어났다. 1931년 생인 고르바쵸프는 전임자들과 달랐다. 그는 공산혁명의 대의보다는 70년 가까이 실천해온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더 많이 인식하고 있었다.
소련은 정체되어 있었다. 흐루쇼프의 개혁이 있었지만 브레즈네프 이후 소련은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 국민의 자유는 짓밟혔고, 집단농장의 생산성은 하락했다.
브레즈네프 시기 동서 냉전의 대결은 국방비를 크게 상승시켜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동유럽의 민주화는 소련군의 개입으로 저지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제2의 베트남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폴란드에선 솔리다리티(연대) 운동이 벌어졌다. 공산권 블록을 유지하는 비용은 모두 소련이 져야 했다.
인민의 소비수요는 늘어갔다. 서방과의 군비대결로 군수산업에 치중했기 때문에 소비재는 극히 부족했다. 소비와 생산의 격차가 커지면서 수입이 늘어났고, 육류소비가 늘면서 사료 수요가 급증, 곡물 수출국이던 소련은 곡물수입국으로 변했다.
관료체제는 기승을 부렸다.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 불리는 공산당 특권계급이 형성되어 관료주의화했고, 그들은 부패했다. 이에 비해 자유를 외치는 사람은 탄압을 받았다. 공산당은 반정부인사에 대한 전화도청, 추적에 비밀경찰 KGB를 동원했다. 비밀경찰의 숫자는 한때 1만6,000명이나 되었다.
성직계급에서 반정부 기류가 형성되었고, 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y Sakharov)가 반정부 출판물에 소비에트를 비판하는 주장을 폈다. 이들의 힘은 미약했다. 이 모든 것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이 필요로 했다. 그 일을 고르바쵸프가 떠맡게 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Mikhail Gorbachev
Wikipedia, Yuri Andropov
Wikipedia, Konstantin Chernen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