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삶과 소설이 숨 쉬는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의 삶과 소설이 숨 쉬는 춘천 실레마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4.20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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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 등 12개 작품의 소재…이야기가 있는 곳

 

김유정(金裕貞)의 대표작은 단편소설 봄봄이라 하겠다.

봄봄의 주인공은 1인칭 시점의 .

나는 마름 봉필의 딸 점순이와 혼인한다는 조건으로 머슴노릇을 한다. 나는 어서 점순이와 혼인하고 싶으나, 봉필은 점순이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놓는 바람에 좌절된다. 나는 병을 빙자해 태업을 하지만 봉필은 공갈과 매질을 한다. 나는 이번에 장인의 그곳을 붙잡고 늘어지지만 점순이는 내편을 들지 않고 아버지편을 든다. 나는 맥이 빠져 버린다.”

봄봄은 데릴사위제도를 이용한 노동력 착취를 해학적으로 풍자했다. 순박한 시골청년 는 곧 김유정이었을까. 김유정은 동백꽃에서도 와 점순의 관계를 설정한다.

 

작품 ‘봄봄’ 조각 /박차영
작품 ‘봄봄’ 조각 /박차영

 

김유정은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한 후 금광을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두 살 아래 이상(李箱)을 만나 교감했고, 이상과 같은 해인 1937년에 29세로 요절했다.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은 봄봄 이외에도 동백꽃, 금따는 콩밭, 만무방, 따라지 등이 있다.

특히 봄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은 그의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했다. 단편소설 금따는 콩밭에서 헛소문을 듣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노다지를 캐려다 실패하는 얘기는 그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일수도 있다.

 

작품 ‘동백꽃’ 조각 /박차영
작품 ‘동백꽃’ 조각 /박차영

 

우리는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의 작품의 소재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의 고향 춘천시 신동면에는 경춘선 철도의 김유정역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신남역(新南驛)이었는데, 200412월에 김유정역으로 변경했다. 한국 철도 최초로 역명에 사람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는 길은 경춘선 전철을 타는 방법과 용산역에서 itx 청춘열차를 타고 강촌역에서 내려 김유정역까지 전철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새 김유정역 /박차영
새 김유정역 /박차영

 

용산역에서 한 시간 조금더 걸렸다. 김유정역에 내리니, 봄볕에 눈이 부셨다. 역사가 한옥으로 지어졌고, 역명판이 궁서체로 표기되어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김유정역은 수도권 전철 개통으로 역사를 근처로 이전했는데, 구역사도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옛 김유정역 /박차영
옛 김유정역 /박차영

 

입구에 김유정문학촌이 우리를 기다렸다. 문학촌은 춘천시기 김유정의 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2002년에 만들었다.

김유정이 살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김유정은 1908212(음력 111)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 생가는 조카와 금병의숙 제자들에의해 고증되었다고 한다. 안방과 대청마루, 사랑방, 봉당, 부엌, 곳간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ㅁ자형태다.

 

김유정 생가 /박차영
김유정 생가 /박차영

 

마당은 ㅁ자 가옥 내부에 있고, 굴뚝도 집안 내에 있다는 게 특이했다. 춘천이 내륙지방이어서 보온을 위해 이런 가옥구조를 채택했는 게 아닐까. 그가 살던 시기의 디딜방아도 바깥채에 설치되어 있었다.

문학촌 사무국과 생가에는 김유정의 소설 봄봄’, ‘동백꽃의 주제를 형상화한 조각상들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작품 ‘솟’ 조각 /박차영
작품 ‘솟’ 조각 /박차영

 

우리는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실레마을을 돌아보았다.

김유정은 고향 실레마을을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굴찍굴찍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야 동명을 살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실레마을 스케치 /김유정문학촌 홈페이지
실레마을 스케치 /김유정문학촌 홈페이지

 

실레마을은 그의 표현대로 옴팍한 떡시루 같다. 금병산(錦屛山)이 비단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 김유정 소설 속 이야기가 살아 있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점순이가 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김유정문학촌의 설명에 따르면, 김유정이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실레마을을 소재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병산 자락에 16가지의 실레이야기길을 만들었고, 이 길은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실레미을의 열여섯마당 ‘실레이야기길’ /김유정문학론 홈페이지
실레미을의 열여섯마당 ‘실레이야기길’ /김유정문학론 홈페이지

 

역시 여행과 관광은 식후경이다. 춘천은 역시 닭갈비다. 여기저기 닭갈비집이 즐비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춘천은 오근내(烏根乃)라 불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땐 코로나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뜸했다. 혹여 요즘 세대가 일제 시대 김유정을 기억하는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예인 김유정은 알아도, 우리 정서를 담은 문학가의 이름을 모른다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김유정 동상 /박차영
김유정 동상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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