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은 효종 임금을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하멜은 효종 임금을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4.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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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과 하멜 이야기」 기획전시…스페르베르호 모형, 수석식총, 불랑기포 등 전시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은 조선 효종 때 제주도에 표착해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이다. 그는 1653816일 제주도에 표착해 166694일 여수에서 탈출할 때까지 13년간 조선 땅에서의 억류생활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멜은 1630년 네덜란드 호르큄(Gorcum)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하멜은 165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취직해 본사가 있는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로 가 서기(書記)가 되었다.

바타비야 근무 3년째가 되던 1653년 하멜은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대만으로 향했다. 730일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출항했다. 배에는 목향 2만근, 명반 2만근, 용뇌, 대만산 녹피(사슴가죽) 2만장, 영양가죽 3천장, 산양가죽 3천장, 설탕 9만근 등 일본과 거래할 화물이 가득했다.

 

스페르베르호 선박 모형 /문화재청
스페르베르호 선박 모형 /문화재청

 

스베르웨르호는 일본으로 향하던중 태풍을 만났다. 닷새 동안 악전고투 한 끝에 배는 부서졌고, 일행은 제주도에 표착했다. 표착지는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면 해안으로 추정된다.

승무원 64명중 28명이 죽고 36명만 살아 남았다. 선장도 죽어 뭍에 묻었다. 곧이어 제주도 관리들이 나타나, 살아남은 선원들은 제주목사의 관청으로 끌려가 감금된다.

 

제주목사(이원진)가 한양 조정에 남만인(南蠻人)의 표착 사실을 보고했고, 이때 한양에서 내려온 사람이 앞서 조선에 표착해 귀화한 네덜란드 출신의 박연(朴燕)이다. 본명은 얀스 벨테브레 Jan Janse Weltevree)이다.

한양에서 일행은 효종임금을 알현했다. 통역은 박연이 맡았다.

 

조선 궁궐에 불려간 하멜 일행이 효종 임금을 알현하고 있는 모습. /하멜표류기 네덜란드 판본의 목판화
조선 궁궐에 불려간 하멜 일행이 효종 임금을 알현하고 있는 모습. /하멜표류기 네덜란드 판본의 목판화

 

하멜 일행은 효종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일본으로 보내 동포를 만나 다시 고국에 돌아갈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효종은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법도가 아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곳에 살아야 하며, 그 대신에 의식주는 돌보아 주겠노라라고 대답했다.

그런 뒤 효종은 네덜란드인들에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라고 명했다. 그들은 억지춘향 격으로 임금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했다. 그리고 얻은 것은 1인당 포목 2필씩이었다.

이들은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임금의 호위병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한달에 70근의 쌀을 지급받았고, 나무로 만든 소패(小牌, 호패)도 받았다. 정식으로 훈련도감 소속 군인이 된 것이다. 국왕이 행차할 때 이들은 수행원으로 따라다녔다. 효종 임금으로선 외국 군대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16563월 하멜을 포함해 네덜란드 선원들은 서울을 떠나 내려갔다. 이들은 영암에서 길을 바꿔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하멜은 여수의 좌수영에 배치되었다. 좌수영에서 하멜 일행은 고된 노역에 시달렸다.

1666년 하멜 일행은 탈출을 시도했다. 8명을 규합했다. 그들은 돈을 모아 배를 샀다. 1666(현종 7) 94일 달이 지고 썰물이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려 조선 땅을 달아났다. 이틀후인 96일 하멜 일행 8명은 일본 하라도섬(平戸島)에 도착했다. 이들은 14일 네덜란드 상관이 있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하멜 보고서 /문화재청
하멜 보고서 /문화재청

 

박연은 하멜에 앞서 26년전에 조선 땅에 표착해 귀화인으로 살았다. 박연은 조선에서 수도방위사령부 격인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근무했다. 그는 훈련도감에서도 외국인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병법에 재주가 있어 대포를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효종 때 북벌이 추진되면서 서양의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박연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훈련도감에 배속시킨 것으로 보인다. 박연 일행이 개발한 대포가 홍이포(紅夷砲)였다.

박연과 하멜, 두사람은 상이한 길을 걸었다. 한 사람은 조선 땅에 살면서 가정을 꾸렸고, 하멜은 기어이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갔다.

 

수석식총(燧石式銃) /문화재청
수석식총(燧石式銃)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2021년 상반기 기획전시 효종과 하멜 이야기427일부터 627일까지 두 달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른 온라인으로 공개되며, 추후 전시관이 재개관하면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관람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북벌 의지를 다졌던 효종과 조선에 억류된 네덜란드인 하멜이 무기개량 등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하멜 일행이 타고 왔던 스페르베르(Sperwer)호 선박(모형), 조총을 개량한 수석식총(燧石式銃), 서양식 화포인 불랑기포(佛狼機砲), 하멜보고서(복제), 목향, 용뇌 등을 만날 수 있다.

 

하멜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큄에 세워진 그의 상 /위키피디아
하멜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큄에 세워진 그의 상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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