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는 1956년 동유럽에서 처음으로 소련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던 나라로, 공산 치하에서도 자유주의 역량이 충만해 있었다. 소련에서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기 앞서 헝가리에선 시장경제가 상당한 수준으로 도입되어 있었고, 공산정권도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며 통치를 했다. 고르바쵸프가 동유럽 내정에 군사력 동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헝가리 공산정부와 민주화 세력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유총선을 치르고, 순조롭고 평화롭게 민주정권으로 전환했다.

 

1956년 민주화 시위가 소련군의 개입으로 좌절된 직후 야노시 카다르(János Kádár)가 헝가리 사회노동당 서기장을 맡아 1988년까지 무려 32년이나 장기집권했다. 카다르는 스탈린 시절에 간첩 혐의와 반당 혐의로 세 번이나 체포된 이력이 있었으나, 모스크바의 흐루쇼프 정권이 헝가리 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화적 차원에서 그의 서기장직을 인정했다.

카다르의 정책을 ‘굴라시 공산주의’(Goulash Communism)라고 한다. 굴라시는 헝가리 마자르족의 유목 전통에서 파생된 것으로, 냄비 안에 여러 식재료와 양념을 넣은 후 끓여 낸 음식이다. 굴라시주의는 사회주의 통제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조화한 정책이다.

카다르는 여론을 존중하고 포용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함께 할수 있다”(Who is not against us, is with us)고 했다. 그는 ‘부드러운 독재’"(soft dictatorship)를 했다.

시위 8년후인 1962년에 카다르는 시위가담자에 대해 총사면령을 내리고, 신경제정책(New Economic Mechanism)을 도입했다. 목표는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이었다. 제한적이지만 시장의 자유를 도입하고, 서유럽과의 무역을 허용하고, 서비스 부문의 소기업 활동을 보장했다. 그는 관료와 당이 인민에게 지시를 내리는 조직이 아니라 봉사하는 조직이란 개념을 강조하고, 가급적 당이 경제영역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시장경제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중공업과 생산재 부문은 국유화를 유지했다. 카다르는 국가마다 다른 공산주의 제도를 실시할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정책은 모스크바에서도 용인되었다.

카다르의 굴라시 공산주의는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보다 20~30년 일찍 시행된 것이다. 그 이면에 헝가리 출신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의 뉴레프트 운동을 이어받은 부다페스트 학파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바 컸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다르의 개방정책으로 서유럽 자본이 헝가리에 투자되었다. 덕분에 헝가리 경제는 동유럽, 특히 소련보다는 우월한 경제를 유지했다.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집도 보유했다. 노동자는 직장에서 퇴근한 이후 자유로운 삶을 향유했다. 1983년 소련의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헝가리를 방문해 카다르의 개방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안드로포프의 관심은 그가 지명한 고르바쵸프에 의해 추진되었다.

대외적으로 헝가리는 서유럽 국가와의 외교관계를 맺었고, 자국민의 해외여행을 허용했다. 따라서 동유럽의 다른 나라 국민들은 서유럽을 여행하기 위해 경유지로 헝가리를 선택했다.

 

하지만 자원이 부족한 나라여서 1980년대 들어 오일쇼크에 직격탄을 맞았다. 물가가 급상승했지만 임금은 인상되지 못했다. 카다르 정부는 물가 상승이 인민들의 저항을 불러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때마침 소련에서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조치가 취해지면서 카다르는 기존에 푼 것보다 더 큰 정치적 자유화를 단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다르의 완만한 민주화 내지 서구화는 민주주의 새력과 당내 젊은 진보파의 불만을 샀다. 카다르 반대파들은 급속한 개혁을 요구했다. 그들의 눈에 카다르는 개혁의 장애물이 되었다.

 

1988년 봄, 카다르는 집권 사회주의노동당 내 궁정쿠데타에 직면했다. 젊은 정치국원들은 세대교체를 요구하며 76세의 노정객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카다르는 사임하고, 카롤리 그로스(Károly Grósz)가 당서기장이 되었다. 총리엔 개혁주의자로 40세의 젊은 경제학자 네메트 미클로시(Miklós Németh)가 지명되었다.

1989년 1월, 헝가리 의회는 민주화 패키지를 채택했다. 그 안에는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보장, 헌법과 선거법 개정 등이 포함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헝가리 집권당내 진보파 정치국원인 임레 포즈거이(Imre Pozsgay)는 1956년 시위를 민중항쟁로 규정했다. 수십년 동안 카다르 정권이 서방국가의 책동에 의한 반혁명 폭동으로 세뇌시킨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30여년전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혐의로 처형당한 당시 총리 임레 너지(Imre Nagy)는 영웅이 되었다.

 

 

1989년 3월 15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미클로시 정부는 민주세력에게 폴란드와 같이 원탁회의를 열자고 제의했다. 원탁회의에는 헝가리 사회주의노동당, 민주포럼, 소농당, 인민당, 노동자 대표 등이 참가했다. 회의는 4월 22일에 시작되어 9월 18일에 대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 사이에 헝가리 정부는 임레 너지를 사면하고, 그가 처형당한 6월 1일에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의 장례식엔 10만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헝가리 공산정권은 또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철의 장막’을 허물고, 8월 19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주민이 국경에서 만나는 범유럽 피크닉 행사를 열었다. 이 틈에 동독의 주민들이 대거 오스트리아로 이탈했다. 헝가리의 조치는 동독 주민들이 헝가리를 통해 탈출하는 루트를 열어 동서독 통일에 일조했다.

원탁회의는 5개월의 난상토론을 거쳐 9월에 헝가리 정부와 야당, 사회세력은 헌법을 개정하고, 헌법제판소를 두기로 합의를 도출했다. 그들은 폴란드에서 제한적 자유선거를 치른 것과 달리 자유선거를 통해 총선을 실시하고, 차기정부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10월 헝가리 사회노동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그동안의 공산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사회민주정당으로 이념을 채택했다. 당명도 헝가리 사회당으로 개명했다. 한편 헝가리 의회는 나라의 정체를 인민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할 것을 의결했다. 10월 23일 헝가리는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을 공식 선포했다.

원탁회의에서 합의한 총선이 1990년 3월말에 실시되었다. 공산당 집권 이래 처음으로 자유·보통선거로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의석 386석 가운데 민주포럼이 164석(43%), 자유민주동맹이 92석(24%), 소농당이 44석(11%)을 차지했다. 옛공산주의 정당인 사회당은 33석(8.5%)을 얻어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민주포럼은 민주정당 연합정권을 구성하고 요제프 안탈(József Antall)을 총리로 선출했다. 이로써 헝가리는 피플파워에 의해 공산정권을 교체하고, 폴란드에 이어 동유럽에서 두 번째로 민주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소련군은 1990년 3월 16일에 철수를 시작해 3개월만에 철수를 마무리했다.

헝가리가 공산정권에서 민주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없었다. 소련도 조용하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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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Revolutions of 1989

Wikipedia, End of socialism in Hungary

Wikipedia, Goulash Communism

Wikipedia, Hungarian People's Repub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