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경쟁에 추격자 된 미국…반격카드 모색 중
5G 경쟁에 추격자 된 미국…반격카드 모색 중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16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화웨이 규제 강화…자성 목소리 높아지며 정부 차원의 대안 마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정보통신산업을 보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동시에 미국 상무부가 중국 화웨이와 계열사가 미국 기업과 거래할수 없도록 조치를 내렸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 화웨이를 때리는 것은 미국 기업에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국 기업들의 5G 기술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5G기술 경쟁에서 중국에 뒤처지고 있는데 대해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 412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차세대 통신망 5G 이니셔티브' 를 발표하면서 규제 해소, 5G 펀드 조성 등을 통해 향후 글로벌 통신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는 "5G네트워크야말로 21세기 미국의 경제 번영과 국가 안보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vital link)가 될 것"이라며, "5G 경쟁에서 미국은 반드시 승리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경쟁에서 중국에 뒤쳐져 있다는 미국 정부와 업계의 자성이 배경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화웨이와 같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가 낮은 가격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토대가 되는 5G 기술에서 우위를 선점할 경우,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국방안보 분야에서도 패권국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코트라 워싱턴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5G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중국이 소유·통제하거나 추정되는(believed) 기업의 통신 장비 및 서비스를 미국 정부기관이 조달 계약하는 것을 금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동맹국들에게 5G 네트워크 구축사업에서 화웨이 제품 보이콧을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의 요구에 동맹국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EU, 영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은 화웨이 제품을 배제할 경우 자국 네트워크 구축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요구를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동맹국과의 군사안보 관련 정보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화웨이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하고 실적도 좋아졌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화웨이는 전 세계 40개의 상업용 5G 계약을 체결해 7만개 이상의 5G기반 스테이션을 수출했으며, 금년 5월까지는 10만개 수출이 예상되고 있다.

 

자료=CTIA(무선통신사업자협회) 2018년 4월 리포트
자료=CTIA(무선통신사업자협회) 2018년 4월 리포트

 

< 추격자로 바뀐 미국 통신업계 >

그러면 한때 전 세계 통신기술을 선도하던 미국은 어떻게 5G 추격자로 바뀌게 되었나.

영국의 파이넌셜타임스는 1990년대까지 전 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의 통신기술이 쇠락한 이유에 대한 분석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에 따르면, 1996년 제정된 미국 '정보통신법(Telecommunications Act)에 따라 무선 통신사업에 진입장벽이 낮아져 신규 사업자의 시장 참여가 대폭 확대되었다. 하지만 무선 통신시장에 중소업체가 난립하면서 네트워크 중복투자가 발생하고, 대기업인 루슨트(Lucent)와 모토롤라(Motorola)는 재정이 열악한 이들 중소업체들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게 되었다. 이후 업계 경쟁이 과열되고 시장이 포화됨에 따라 다수 중소 통신사업자들이 도산하고 이들에게 금융을 대가로 제품을 공급했던 루슨트 등 장비업체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실적악화에 몰린 루슨트는 2006년 프랑스기업 알카텔(Alcatel)과 합병해 Alcatel-Lucent이 출범했으나 2016년 핀란드의 노키아(Nokia)에 인수되는 처지가 되었다. 노키아는 모토롤라의 네트워크사업까지 인수했으며, 5G 시대를 맞이 미국 국적의 메이저 통신장비업체는 전무한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 중국 화웨이, 핀란드 노키아, 스웨덴 에릭슨(Ericsson), 한국 삼성전자 등 4개 기업만이 사실상 5G 네트워크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SCMP)는 미국 통신기술 쇄락의 원인 중 하나로 초창기 이동통신망 구축 당시 무선통신기술 표준(Standard)의 난립 문제를 지적했다.

유럽은 1987년 부터 일찌감치 GSM 방식으로 무선네트워크 표준을 통일했으나, 미국은 통신사업자(Carriers)들이 자체 판단에 따라 표준을 채택하는 자율 방식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버라이즌과 스프린트는 CDMA 방식을, AT&TT-모빌은 GSM 방식을 각각 채택했다. 한때 AT&T에서 근무한 토마스 로리아(Thomas Lauria)는 저서 '텔레콤의 추락(The Fall of Telecom)'에서 당시 무선 통신시장을 CDMA, TDMA, GSM, AMPS등 각종 표준이 난립하는 '서부시대(Wild West)'와 같은 혼란기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하나의 표준방식에 집중하지 못한 루슨트는 뒤늦게 CDMAUMTS 방식에 올인했으나 이미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GSM 방식이 표준으로 정착되어 미국 네트워크 장비 기업들은 경쟁력에서 밀리게 됐으며, 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 통신장비업계는 이른바 '상실의 시대(Lost time)'를 경험하게 되었다.

 

< 애플-퀄컴 합의, 5G경쟁력 확보 힘 실을까 >

지난 416일 애플과 퀄컴은 지난 2년 간의 소모적인 특허 관련 법적 다툼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휴대폰 칩에 과도한 라이센싱 비용을 청구했다고 소송을 제기 했으며, 퀄컴은 애플이 자사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회피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둬 회사는 상호 제기한 일체의 국제 소송을 취하하고, 애플은 지연됐던 라이센싱 비용을 지급함과 동시에 퀄컴과 6년 동안 칩(고사양 5G 모뎀 칩 포함) 공급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분쟁을 마무리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경쟁사에 비해 5G 폰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애플이 퀄컴의 5G 모뎀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결과적으로 퀄컴의 완벽한 승리라고 분석했다. 같은 날 퀄컴의 경쟁사인 인텔은 공식적으로 휴대폰용 5G 칩 개발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미국 업계는 이번 합의가 미국 5G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 효과가 될 것이라고 반색하고 있다. 하지만, 5G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종합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화웨이에 비해 칩기술에 특화된 퀄컴만으로는 미국이 중국과의 5G경쟁에서 우위에 설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퀄컴 살리기 는 미국의 5G 경쟁력 확보를 위한 큰 그림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퀄컴은 2014~2016년 동안 급격한 주가 하락세를 보였으며, 애플과의 소송전이 한창 진행되던 2017년에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브로드컴(Broadcom)의 적대적 인수시도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시도를 불허하면서 미국의 핵심 5G 기술 기업들 지켜냈고, 그로 부터 18개월 후 퀄컴은 애플과의 합의를 통해 화웨이와 경쟁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미국의 반격카드는? >

그러면 미국의 반격카드는 무엇일까.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의 토마스 듀스터버그(Thomas Duesterberg) 수석 연구원은 "지금 상황으로 5G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새로운 5G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최소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시설 설비 및 개보수 비용이 소요된다. 높은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는 AT&T, 버라이즌 등 기존 무선통신사업자들이 천문학적인 5G 구축 비용을 수년 내 조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은 5G 네트워크 장치를 사실상 유럽기업인 노키아와 에릭슨에 의존할 수 밖는 상황에서 과연 노키아와 에릭슨이 기술이나 가격 면에서 중국의 화웨이보다 우월한 솔루션인지에 의문을 제기된다. 현 상황의 프레임대로 경쟁할 경우, 중국이 가진 '규모의 경제', '정부 보조금', '비시장경제'를 등에 업고 있는 화웨이의 성장세를 따라잡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새로운 판짜기(New Scenario)에 돌입해야 하며, 그 방안 중 하나로 '네트워크 가상화(Virtual Networks)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은 기존의 '하드웨어로 연결된 네트워크' 를 중앙서버가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구성으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무선통신사업자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자체 물리적 통신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텔레콤 비즈니스가 자체가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에서 지식집약적 소프트웨어 위주로 전환되는 '트랜스포메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의 요체는 첨단 컴퓨터와 클라우드 시스템 기술이며, 이 분야에서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기업) 라인 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네트워크 가상화 환경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아마존, 시스코, HP와 같은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시스템 분야 선도기업들과 퀄컴, AMD와 같은 첨단 반도체 메이커들이 화웨이가 주도하는 하드웨어 기반 솔루션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자율주행, 고화질 콘텐츠, 스마트홈 등 서비스에 따라 차별화가 요구되는 통신환경 속에서 기업 고객별 맞춤서비스가 용이한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이 기존 하드웨어 구성(Configuration) 보다 효과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듀스터버그 연구원은 "현재까지 5G 사업에서 화웨이 제품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 의회, 업계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5G 주도권 쟁취를 위한 큰 그림 속에서 미국의 5G 코어 기술을 보유한 '퀄컴 살리기'가 조직적으로 가동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연방무역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2017년 퀄컴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Antitrust) 소송 판결을 앞두고, 미국 법무부가 국익과 안보를 명분으로 퀄컴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미국 무선통신산업협회(CTIA)의 메리디드 베이커(Meredith Baker) 회장은 "미국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일단 미국이 5G 서비스 상용화에서 중국에 앞서게 됐으나, 누가 상용화 속도에 앞서느냐가 5G 경쟁의 우열을 나누는 척도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5G 네트워크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차세대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음. 4G가 미국 내 우버, 리프트와 같은 혁신 기업 성장의 자양분이 됐듯이 세계 각국은 5G 환경 하에서 사업모델과 기술혁신을 구현할 기업 양성에 보다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