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였던 1989년 12월 25일, 루마니아 국민들은 TV를 통해 공산당 서기장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았다. 3일 전까지만 해도 권력의 정상에서 군림하던 부부는 즉결 군법회의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그날로 총살당했다.

1989년 동유럽은 혁명의 해였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소련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동유럽 공산정권은 평화적으로 민주정부로 이양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루마니아 공산독재는 철옹성처럼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2월 16일부터 시작된 시위는 1주일만에 24년간 장기집권한 차우셰스키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 과정은 다른 동유럽 국가에 비해 폭력적으로, 극단적으로 전개되었다.

동유럽의 ‘1989년 혁명’에서 당서기장이 처형된 나라는 루마니아가 유일하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사형대에 섰다. 그 이유는 차우셰스쿠 부부가 다른 동유럽 공산지도자들에 비해 인민들의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남편은 당서기장겸 대통령, 아내는 제1부통령으로 권력을 독점했고, 인민에게 개인숭배를 강요했다. 그 결과는 처참한 말로였다. 한순간 폭발적으로 끓어오른 민주화 열기는 수십년간 인민을 억눌러온 압제를 날려버린 것이다.

 

 

니콜라에 차우세스쿠(Nicolae Ceaușescu)는 1918년 가난한 농민의 9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구두수선공의 허드렛일을 돕다가 공산당에 가입했고, 루마니아왕국 경찰에 체포되어 수차례 투옥된 열혈 투사였다. 그의 이력에 학교를 다닌 기록이 없다.

2차대전 말기에 1945년 소련군이 루마니아에 진주하면서 그의 인생은 역전했다. 그는 공산청년동맹 서기로 신분상승하고, 부인 엘레나(Elena)와 결혼했다.

그와 엘레나는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다. 1952년 그는 당내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제2인자로 부상했고, 1965년 3월엔 서기장 게오르게 게오르규데지(Gheorghe Gheorghiu-Dej)가 사망하자, 제1인자의 위치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는 공산당 서기장과 총리, 대통령을 겸임하며 무한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고, 루마니아를 이웃 소련과는 구분되는 독자성을 강조했다. 1968년 소련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 그는 지원군을 파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부카레스트 광장에서 대중연설을 통해 소련의 무력개입을 강하게 비난했다.

1971년 그는 중국, 북한, 몽골, 북베트남을 순방했다. 그는 북한 김일성과 중국 마오쩌둥의 개인숭배에 감명받았다. 그는 특히 마오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심취했고, 엘레나는 마오의 부인 장칭(江青)과 뜻이 맞아 개인적 유대를 맺었다. 그는 아시아 공산국들이 스탈린식 집단화와 통제를 인민을 통제하는 것을 주목했다.

그는 귀국후 7월 6일 이른바 ‘7월 테제’를 발표했다. 7월 테제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모방한 것으로, 당원 교육 강화, 대중정치운동 중시, 건설현장에 청년 동원, 정치선전 확대, 애국노동 찬양, 학교에서 공산이데올로기 교육 등을 포함했다. 그는 이를 통해 거대한 집단주의를 강화하고 인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차우셰스쿠의 이런 강압통치는 1970년대 급격한 국제유가 상승으로 오일머니가 넘쳐나면서 무마되었다. 루마니아는 유럽 최초의 산유국으로 1차, 2차 대전에서 독일의 주요 원유공급처였다. 국제유가가 3배나 오르면서 그는 오일머니로 정유시설에 대량으로 투자했다. 기름으로 부풀려진 신용을 토대로 서방의 자금을 얻어 과시성 건축물을 건설했다. 루마니아 정부가 서방국가에서 빌린 자금은 1971년 12억 달러에서 1982년 130억 달러로 불어났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루마니아는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었다. 자원의 환상에 취해 있던 이른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가 나타난 것이다.

1981년 IMF는 루마니아 정부에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인민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가장 큰 고통은 식량 수입 축소였다.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이 부족해 졌다. 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시민들은 식용유를 배급받기 위해 상점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1980~1985년 사이 예산에서 주택비용은 37%, 보견의료 비용은 17%, 문화비용은 53% 감축되었다.

이런 가운데 루마니아는 소련의 1984년 LA 올림픽 불참 요구를 거절하고 대회에 참가해 미국에 이어 2위를 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그해 10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곧바로 진압되었다.

 

 

1985년 소련에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당서기장이 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자 차우셰스쿠는 시큰둥했다. 그는 개인숭배와 정치적 강경노선을 내려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지도자’(Conducător). ‘카르파티아의 천재(’Geniul din Carpați)라고 부르도록 했고, 대통령직은 신설해 취임할 때에는 제왕의 상징인 홀(笏)을 들었다. 그의 생일에 루마니아 언론들은 그를 칭송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루마니아인들은 그날 하루 지도자를 경배해야 했다.

그가 외국을 순방할 때엔 멋진 상과 훈장을 받길 원했다. 프랑스에선 레지옹도뇌르 상을 받았고, 영국에선 배스 훈장을 받았다. 이런 상과 훈장은 후에 그가 처형된 이후 모두 회수되었다.

부인 엘레나는 남편보다 더 설쳤다. 그녀는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을 모방해 직접 대외활동에 뛰어들었다. 당서기장인 남편의 배경으로 공산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마지막에는 부통령까지 올라 정치에 직접 개입했다.

엘레나도 개인숭배의 대상이 되어 ‘조국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따라 다녔다. 그녀의 허영심과 명예욕은 남편보다 더 강했. 루마니아 국영방송은 그녀의 옆모습을 내보내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큰 코가 화면에 나오는 것에 매우 예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별명은 코도이(Codoi)다. 그녀가 학력 콤플렉스를 메우기 위해 화학을 공부할 때 ‘CO2’(이산화탄소)를 “코(CO)+도이(Two)”라고 읽은후 생긴 별명이었다. 루마니아인들은 겉으론 그녀의 별명을 부르지 않았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

루마니아인들은 차우셰스쿠보다 엘레나를 더 미워했다. 그렇기에 그녀도 남편과 함께 처형되었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믿었다. 그는 극심한 긴축정책에 인민들이 굶주릴 때에도 대형건축물을 짓는데 돈을 펑펑 썼다. 의사당을 세계에서 가장 크게 지었고, 북한의 집단주택을 모방해 대형주택단지를 건설했다. 그는 이런 건축물에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했다.

그는 말년에 둘째 아들 니쿠(Nicu)에게 여러 요직을 배려해 장래에 후계자를 삼을 생각을 했다.

그는 언론을 꽁꽁 걸어 잠궜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루마니아 언론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한줄도 전하지 않고 “경애하는 차우셰스쿠 동지의 위대한 강연”을 대서특필했다. 동구권에서 공산주의가 연쇄 붕괴하는데도 루마니아 언론들은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혁명적 과업을 강조했다. 1989년 루마니아 공산당 전당대회는 차우셰스쿠에게 5년 임기의 당서기장직의 연임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런 얼음장 같은 독재 치하에서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다. 헝가리 국경에 인접한 타미쇼아라(Timișoara)의 한 목사가 차우셰스쿠의 집단화를 비판하고 서구식 인권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며 거대한 독재를 무너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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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Revolutions of 1989

Wikipedia, Romanian Revolution

Wikipedia, Nicolae Ceaușescu

Wikipedia, Elena Ceauș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