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둘레길은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인왕산 둘레길은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5.03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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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박물관, 홍난파가옥, 딜쿠샤, 권율대장군 집터, 초소책방 등…

 

인왕산은 인왕사(仁王寺)라는 사찰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왕실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에서 보면, 북악산이 주산이고, 인왕산은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서울 성곽은 남대문에서 서소문을 거쳐 인왕산 자락에서 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인왕산은 높이가 해발 338m에 불과하지만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골짜기가 깊고 암석이 많아 경치가 아름답다. 예로부터 정선(鄭敾)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강희언(姜熙彦)인왕산도’(仁王山圖)가 이 산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일제강점기에 仁旺이라 표기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仁王으로 옛 지명을 환원했다.

 

돈의문 /돈의문박물관 사이트
돈의문 /돈의문박물관 사이트

 

우리는 경찰청 앞에서 내려 강북성심병원 뒤로 인왕산 능선을 만났다. 입구에 돈의문박물관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의 서대문으로, 현재의 정동사거리에 건축되었으나 1915년 일제강점기에 도시를 확장한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돈의문은 새문(新門)이란 별칭을 가졌는데, 돈의문 안쪽 동네가 새문안이다.

새문안 동네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옛 강원산업 본사건물을 포함헤 도시계획으로 철거될 가옥들을 개조해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는 박물관에 들러 서울의 옛모습을 둘러보았다.

돈의문 성곽길 /박차영
돈의문 성곽길 /박차영

 

박물관을 나오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고, 성곽길을 따라가면 월암공원이 나온다. 2008~2009년에 조성된 이공원은 근처 바위에 새겨진 월암동(月巖洞)이란 글씨에서 나왔다. 글씨를 쓴 작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세기에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임하필기돈의문 밖의 서성(西城) 아래에 월암이란 바위가 있는데, 밤에도 오히려 밝은 빛이 나고 귀를 기울여 들으면 은은히 파도 소리가 난다고 했다.

 

월암동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 /문화재청
월암동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 /문화재청

 

월암공원 끝에 작곡가 홍난파의 가옥이 기다린다. 지하 1, 지상 1층의 붉은 벽돌조 건물은 독일계 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고향의 봄의 작가 홍난파는 이 집에서 8년간 지내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홍난파는 17세에 결혼한 첫 번째 부인과 28세에 사별하고, 38세에 소프라노 이대형과 재혼했다. 연애결혼으로 재혼한 그는 이대형과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홍난파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홍난파 가옥 /박차영
홍난파 가옥 /박차영

 

사직터널을 위를 지나면 만나는 것이 딜쿠샤(Diljusha). 딜쿠샤는 일제강점기에 UPA 통신사(현재 미국 UPI의 전신) 서울 특파원으로 와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을 도왔던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Albert W. Taylor, 1863~1949)의 집이다.

앨버트 테일러 /문화재청
앨버트 테일러 /문화재청

테일러는 금광 기술자인 아버지와 함께 1896년 한국에 들어와 은산금광 직원으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사업을 하면서 UPI 특파원을 겸임했다.

테일러는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타전함으로써 3·1운동을 세계만방에 알린 인물이다. 이후 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스코필드,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을 항의 방문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도왔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테일러 일가족은 가택 연금 상태에 들어갔고, 이듬해 5월 조선총독부의 추방령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광복 직후인 1945년에는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찾기 위하여 군정청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기도 했다. 1948629일 미국에서 73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는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이송돼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됐다.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가옥으로, 총면적 624에 이르는 붉은 벽돌의 장방형(사각형) 평면을 가진 서양식 2층 저택이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 89.

딜쿠샤라는 명칭은 테일러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의 뜻에 따라 붙인 것으로. 인도어로 '기쁨, 이상향'을 뜻한다. 인도 북부 러크나우 지역 곰티 강 인근에 자리잡은 딜쿠샤 궁전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집은 1926년에 낙뢰 화재로 손상되기도 했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테일러 일가가 추방된 뒤 자유당 의원 조경규가 소유했지만, 5·16 후 그가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을 몰수당했다. 이 가옥은 1995년부터 서울시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건물 기초에 새겨진 'DILKUSHA 1923'이라는 명문의 뜻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22월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Bruce Taylor)가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의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 현재 국가문화재 687호로 등록되어 있다.

 

딜쿠샤 /박차영
딜쿠샤 /박차영

 

딜쿠샤 옆에 임진왜란 때의 권율 도원수의 집터가 있다. 집터에는 수령 47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높이 24m, 나무둘레 680cm. 권율(權慄, 1537 ~ 1599 ) 장군은 행주대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권율대장군 집터의 은행나무 /박차영
권율대장군 집터의 은행나무 /박차영

 

본격적으로 성곽길을 따라갔다.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봄날씨다. 코로나에 찌들린 시민들이 대거 산책 나왔다. 성곽길을 따라 가다가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인왕산 자락길로 들어섰다. 자락길 끝에 초소책방에 들렀다.

 

 

초소책방 /더숲 사이트
초소책방 /더숲 사이트

 

이 건물은 1968121일 김신조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한 경찰초소였다. 50년간 통제되었던 이 일대가 전면개방되면서 2018년 서울시와 종로구가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기존 건물의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살리되, 폐쇄적인 내부공간을 헐고 일부 자연을 복원했다. 기존의 1층 건물을 일부 증축하고 내외부 개단을 살려 건물 어디에서든지 도심을 전망할수 있게 설계했다.

 

인왕산 자락길에서 본 북악산 /박차영
인왕산 자락길에서 본 북악산 /박차영

 

초소책방에서 내려보면, 서울의 전망이 좋다.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여유를 즐기다가 내려왔다.

 
행선로 /네이버 지도
행선로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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