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임금의 워라밸…낮엔 정무, 밤엔 을야지람
조선 임금의 워라밸…낮엔 정무, 밤엔 을야지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5.10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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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11시에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고 자기수양…좋은책 읽기를 권장

 

조선시대에 임금은 낮에 정사를 돌보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독서를 하며 책에서 지혜를 얻고 자기수양을 했다. 임금의 독서시간은 대개 밤 9시부터 11시였는데, 당시 시간 개념으로는 이경(二更)이다. 조선시대엔 밤을 갑()ㆍ을()ㆍ병()ㆍ정()ㆍ무()로 다섯 등분했는데, 이를 오야(五夜) 또는 오경(五更)이라고 한다. 이경은 을야(乙夜)라고도 한다.

이런 연유로 조선 임금의 독서시간을 을야지람(乙夜之覽)이라고 했다. 줄여서 을람((乙覽)이라고도 했다.

을야지람은 임금이 학문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현대 감각으로 해석하면 조선 임금의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맞추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을야지람(을람)에 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성종 24(1493) 홍문관 부제학 김심이 상소하기를 괴이한 희극 책은 전하께서 음란한 소리(淫聲와 미색(美色)과 같이 멀리해야 하며, 내부(內府)에 비장(秘藏)하게 하여 을야지람(乙夜之覽)을 돕게 함은 마땅하지 못합니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저녁 독서시간에 음탕한 책을 읽어서는 아니 된다는 상소문이다.

연산군일기 12년조(1506)연산군이 중국에서 들여온 증증전등신화(重增剪燈新話)를 을람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등신화는 괴담기문(怪談奇聞)을 엮어서 쓴 전기소설이다.

을람은 서적간행에도 도움이 되었다. 중국에 갔다가 돌아온 사신이 서책을 올리면, 임금이 그 책을 을람하고 좋은 책이라며 출간을 명하기도 했다.

임금의 독서는 중요했다. 임금이 좋은 책을 읽어야 선정을 베풀게 된다고 신하들은 믿었다. 따라서 신하들이 자신이 양서를 읽으면, 그 책을 임금에게 권하기도 했다. 연산군이 흥밋거리 소설이나 읽었다고 후세의 사관이 기록해둔 것은 쫓겨난 임금을 비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호롱(오승환작) /문화재청
호롱(오승환작) /문화재청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전통문화상품개발실이 재학생, 졸업생과 함께 조선 왕실에서 쓰던 물품을 재해석해 40여점의 공예품으로 제작, 전시했다. 이번 전시에는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던 왕실 품위를 살려 젊은 작가들의 예술적 감각과 창작열로 빚어낸 것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왕의 휴식: 을야지람주제의 전시품이다. 임금이 잠들기 전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던 시간에 사용하던 편리한 호롱, 1인용 다기 등을 현대화했다. 젊은 작가들은 현대인의 을야지람에 필요할 물건으로 제안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삶에 담긴 지혜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의금상경-향낭(권용현, 우승민작) /문화재청
의금상경-향낭(권용현, 우승민작) /문화재청

 

2왕의 의복: 의금상경에서는 임금이 쓰던 비단과 면 소재의 겹침을 통해 화려한 듯하나 소박하게 구현된 향낭 모양의 손가방, 쓰개 모양의 모자는 의금상경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한다. 의금상경(衣錦尙絅)은 화려함을 피하고자 비단옷 위에 걸치는 홑옷을 말한다.

 

 

나의 호위무사, 석수향로(이솔찬 작) /문화재청
나의 호위무사, 석수향로(이솔찬 작) /문화재청

 

3왕의 공간에서는 왕실이 머물던 건축, 조경 등에서 발견한 색, 형태의 균형을 도자함, 차 도구, 석수 향로 등을 통해 소개했다.

전시는 512일부터 66일까지 전주한옥마을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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