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러시아 예술품의 방주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러시아 예술품의 방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5.16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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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르미타시 예술의 힘’, 러시아 역사와 박물관 역사를 오버래핑

 

영화 예르미타시, 예술의 힘은 다큐멘터리물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러시아 역사 과정과 오버래핑시켰다.

다큐멘터리가 이탈리아 감독 미켈레 말리(Michele Mally)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이탈리아 작가가 대본을 쓰고, 내리이션도 이탈리아어다. 원작은 “Ermitage. Il potere dell'arte’이며, 영어로는 ‘Hermatage, The Power of Art’. 2019년작.

 

겨울궁전 /위키피디아
겨울궁전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Hermitage Museum)은 러시아 국립박물관으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박물관이다. 박물관 단지는 겨울궁전, 소박물관, 구박물관, 신박물관, 박물관 극장 등 5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품은 모두 500만점인데, 이중 10분의1만 전시된다고 한다. 2020년 코로나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10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박물관의 이름이 예르미타시(Ermitáž)로 정해진 것은 작품을 은신시키는 장소라는 프랑스어 ”hermitage“에서 유래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전경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전경 /위키피디아

 

다큐멘터리는 표트르(Pyotr) 대제가 1703년 네바강 하류 삼각주에 세인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정학적 개념으로 보면 세인트 페테르부르크는 발트해에 접해 있어 서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손쉬운 곳에다. 낙후한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구화의 열망에 가득찼던 표트르 대제는 깊은 늪지대를 개간해 수도를 건설하고, 왕궁을 지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을 건설한 인물은 차르이던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 예카테리나 2(Ekaterina II)였다. 독일계인 그녀는 스스로 예카테리나 대제라 칭하고, 러시아를 강국의 반열에 올린다.

그녀는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예카테리나는 독일의 상인 요한 에른스트 고츠코프스키(Johann Ernst Gotzkowsky)의 중계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의 소장품 200여점을 구입한다. 이때 수집한 작품이 렘브란트, 루벤스, 야콥 요르단스, 안토니 반 다이크, 파올로 베로네세, 프란스 할스, 라파엘로 등의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원작 다나에(Danae)가 러시아로 넘어간다.

예카테리나 2세는 1764년 수집한 그림을 보관하기 위해 차르의 겨울 거처였던 겨울궁전(Winter Palace) 동쪽에 박물관을 건설하라고 지시해 1766년에 완공한 건물이 예르미티시 박물관의 시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렘브란트의 ‘다나에’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렘브란트의 ‘다나에’ /위키피디아

 

이후 차르들은 서유럽의 예술품을 지속적으로 수집해 박물관에 보관했다. 13세기부터 20세기의 예술품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120개 방에 전시되거나 보관되었다.

다큐멘터리는 역대 차르들의 예술품 수집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혁명을 언급한다. 겨울궁전에서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이 체포되고, 케렌스키의 임시정부가 집권한다. 1917년 겨울에 블라디미르 레닌은 겨울궁전을 접수함으로써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한다.

볼셰비키 정권은 서구화한 세인트 페테르부르크를 버리고 모스크바로 수도를 이전한다. 2차 대전 때 니치 독일은 레닌그라드로 개칭한 옛수도를 2년반 동안 포위했다. 레닌그라드 주민들은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장품을 동부 안전지대로 빼돌리고, 그곳을 방어한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스키타이의 황금 사슴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스키타이의 황금 사슴 /위키피디아

 

다큐멘터리는 러시아 역사를 서술하는지, 박물관을 서술하는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의 상관관계를 나열했다. 작가는 예르미타시가 러시아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련 시절에 스키타이 문화에 발굴이 진척되면서 예르미타시는 고고학 유물도 전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키타이문화의 걸작인 황금 뿔을 가진 사슴이다. 이집트 유물도 확보하고, 현대 화가의 작품도 수집함으로써 종합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소련 시절에 공산정권은 부족한 경제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품을 미국 등지에 매각했다. 그 일부는 워싱턴 소재 박물관등에 보관되어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박물관은 러시아연방의 소유로 전환되었다.

다큐멘터리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해외 작품을 강탈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차 대전 때 동유럽에 진주한 소련군은 현지에서 예술품을 약탈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후 독일은 소련군이 동독에서 약탈한 예술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1995년 러시아 정부는 겨울궁전 박물관 니콜라스 홀에서 약탈 예숲품 56점을 전시한 바 있다. 그 작품은 모두 독일인 개인이 소장한 작품들이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세 여신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세 여신 /위키피디아

 

다큐멘터리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방주’(Ark)에 비유했다. 대홍수에 대비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모아둔 곳이 방주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로마노프 왕조와 그 후세대가 러시아의 찬란한 문화를 집적한 곳이다. 그러기에 예르미타시는 러시아의 방주’(Russian Ark)라고 불린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다빈치의 ‘마도나 리타’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다빈치의 ‘마도나 리타’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마티스의 ‘댄스’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마티스의 ‘댄스’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칸딘스키의 추상화 /위키피디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칸딘스키의 추상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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