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말 실수’에서 촉발된 베를린장벽 붕괴
‘세기의 말 실수’에서 촉발된 베를린장벽 붕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5.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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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④…대변인의 해프닝에 동독 지도부, 여행자유화 기정사실화

 

베를린 장벽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고, 동독과 서독을 분단시킨 인공장애물이었다. 장벽은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를 저지했고, 서독의 민주주의가 동독으로 파급되는 것을 차단했다. 철조망과 경계초소로도 모자라 동독 수비대와 경찰견의 감시망이 펼쳐졌던 이 거대한 장벽은 1989119일 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들은 망치와 도끼를 들고 자신들을 28년이나 갈라 놓았던 벽을 허물었다.

이날의 일은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분단 독일을 통일시키는 급류였다. 양쪽 베를리너들은 오랫동안 그들을 가로막았던 정치적, 제도적, 물리적 금줄을 제거했다.

 

1989년 11월 9일 귄터 샤보브스키(연단 오른쪽 두 번째)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89년 11월 9일 귄터 샤보브스키(연단 오른쪽 두 번째)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이 역사적 사건은 해프닝으로 시작되었다.

1989119일 저녁 6, 동독 정부는 일상적으로 매일 여는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긴박한 시국인지라 수십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했고, 기자회견은 동독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되었다.

귄터 샤보브스키 /위키피디아
귄터 샤보브스키 /위키피디아

기자회견에는 4명의 장관급 고위간부가 브리핑에 나섰고, 이제 막 정부 대변인으로 임명된 귄터 샤보브스키(Günter Schabowski)도 배석했다. 샤보브스키는 여행법 정책 변경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새 여행법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에곤 크렌츠 서기장이 건네준 여행법 개정안 서류를 들고 나왔다.

지루한 브리핑이 진행되었고, 회견이 끝날 무렵인 653, 여행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앞줄에 있던 어느 기자가 동독인들은 언제쯤 자유롭게 서독으로 여행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샤보브스키는 여행법 관련 서류를 반쯤 읽고 대충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곳이면 아무데나 갈수 있고,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 법은 언제부터 발효됩니까.” 샤보브스키는 주저하다가 내가 알고 있기로, 지금 당장입니다“(Das tritt nach meiner Kenntnisist das sofortunverzüglich)고 대답했다. 회견장이 술렁거렸다.

사실 샤보브스키는 개정된 여행법을 잘 몰랐다. 동독 정부의 여행자유화조치는 몇 달간에 걸친 주민들의 시위에 대한 대응조치로, 과거의 조치에 비해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었으며, 굳이 새로운 것을 들자면 여권 발급기간을 단축하는 정도였다. 시행 시기도 다음날이었다. 동독 정부가 임기응변으로 만든 조치였는데, 대변인이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TV카메라 앞에서 지금 당장 여행자유화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회견이 끝나고, 샤보브스키는 미국의 NBC 방송의 기자 톰 브로코(Tom Brokaw)와의 인터뷰에서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을 통해 이주할수 있으며, 이 규정은 당장 효력을 발생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후 74, 서독 통신사는 이 사실을 급전으로 전달했고, 717분 서독 방송 ZDF가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8시엔 서독 ARD도 같은 내용을 전했다. 동독인들은 동독방송보다 서독방송을 더 많이 시청했다. 서독 방송의 앵커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모든 독일인에게 국경이 열렸다. 동독이 오늘 즉시라고 선언했다. 장벽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흥분하듯 말했다.

방송을 본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주민들이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로 몰려나왔다. 동독 정권은 당황해서 국경수비대에 더 엄격하게 출입을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동베를린 시민들은 국경수비대에 당신네 대변인 샤보브스키가 당장에 문을 연다고 했다고 항의했다.

수비대는 긴급히 상부에 전화해 지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군중의 수는 경찰 수를 훨씬 넘어섰다.

1045, 보름홀머거리 검문소(Bornholmer Straße border crossing)의 수비대장 하랄트 얘거(Harald Jäger)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바리케이트를 열라고 명령을 내렸다. 수비대가 바리케이트를 열자 동베를린 사람들은 서베를린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아무도 검문에 응하지 않았다. 동서독을 가르는 통제가 사라진 것이다.

검문소 서쪽에는 서베를린 사람들이 기다렸다. 그들은 동쪽에서 온 시민들에게 꽃을 건넸다. 양쪽 베를리너들은 서로 얼싸안고 샴페인을 터트렸다. 삼엄했던 베를린 장벽은 군중들이 나팔을 불고 춤추고, 환호하는 파티장이 되어 버렸다. 동과 서를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은 이렇게 무너졌다.

이날 밤 일부 베를리너들은 망치와 도끼를 들고 장벽을 부쉈다. 이 행동이 유행처럼 번져 동서 베를린 사람들은 장벽 부수기에 나섰고, 순식간에 장벽은 허물어졌다.

서독 정부는 전에 하던 것처럼 서독으로 건너온 동독인에게 100마르크의 환영금을 주었다. 당시 환율로 6만원에 해당했다. 동독 주민들은 이 환영금을 받기 위해 서독과 서베를린으로 건너갔다. 3일 동안 서독행 여권 430만 매가 발행되었고, 동독 경찰은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비자발급 키트를 들고 다니면서 여행비자를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10일 동안에 동독인구의 절반이 넘는 1천만여건의 사증이 발급되었고, 동서독 경계지역 50곳에 통행로가 만들어졌다.

 

보른홀머거리의 검문소를 건너는 독일인들.(1989년 11월 18일) /위키피디아
보른홀머거리의 검문소를 건너는 독일인들.(1989년 11월 18일) /위키피디아

 

동독 지도부는 샤보브스키의 실수를 되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대변인이 내뱉은 말을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에 오른지 한달도 되지 않은 크렌츠는 인민의 지지를 받을 필요성이 있었다. 크렌츠는 샤보브스키의 실언을 지도부의 결정사항이었다고 둘러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날, 크렌츠는 베를린 주재 소련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소련측은 너무 성급한 조치가 아니었느냐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을 다시 담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1222일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렸다. 그날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그 문을 걸어서 넘어, 건너편에서 기다리던 한스 모드로(Hans Modrow) 동독 총리의 영접을 받았다.

동서독을 가로막았던 장벽은 공식적으로 19906월 동독 국경수비대에 의해 완전 철거되었다.

 

1989년 11월 10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위키피디아
1989년 11월 10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위키피디아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과연 우연이었을까. 역사적인 사건은 우연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지만, 그 배경에는 필연이 작용한다. 베를린 장벽은 대변인의 실수가 아니었더라도, 필연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그해 119일 이전에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1989313일 동독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300명의 신도가 여행자유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00만명이 모이는 대형 집회로 확산되어 있었다. 동독 정부는 이미 장벽을 지켜낼 힘을 상실한 상태였다.

게다가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한 철조망을 제거하고, 동독인들의 서독행 길을 열어 주었다. 곧이어 체코슬로바키아도 문을 열었다. 독일의 내부 장벽은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독 공산정권의 보호막을 제거한 것이기도 했다. 국경 이동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 마당에 공산정권은 완전히 통제력을 잃었다.

19891120일 월요시위에서 "우리는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는 구호가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는 구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독 정권은 서독 정권의 접수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자료>
AIER, The History and Meaning of the Berlin Wall

Wikipedia, Fall of the Berlin Wall

Wikipedia, Günter Schab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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