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최초 보고지, 부산 가덕도 연대봉-응봉
임진왜란 최초 보고지, 부산 가덕도 연대봉-응봉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6.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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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임진장초에 “4월 13일 申時에 왜선이 몇십척인지 까마득하게…”

 

부산 가덕도(加德島)는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시끌시끌했던 곳이다. 이 섬은 역사적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을 방어하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발발 50여년전인 중종 39(1544)에 이런 기록이 있다.

가덕도 축성사 방호의가 일을 끝내고 이제 가덕에 성을 샇았으나, 배를 감출 곳이 없으므로, 항구에 돌을 던져 넣어 바다와 같게 높이고, 그 위로 나무를 울짱을 만드니, 그 안에 배 1만척을 감출만 합니다고 임금께 아뢰었다.” (중종실록 39926일자)

가덕도에 성과 항구를 만들어 왜적에 침입했다는 얘기다.

 

연대봉에서 본 가덕도 /박차영
연대봉에서 본 가덕도 /박차영

 

이순신 장군이 쓴 임진장초(국보)에도 가덕도가 등장한다.

가덕진 첨절제사 전응린과 천성보 만호 황정 등의 긴급 보고에 의하면, 응봉의 봉수감고 이등(李登)과 연대감고 서건(徐巾)등이 와서 고하기를 오늘 413申時(오후 3~5)에 왜선이 몇십척인지, 대략 보이는 것만도 90여척이 본토를 나와서 경상좌도의 추이도를 지나 부산포로 향하는 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를 상세히 헤아려 볼수는 없었으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이러한 공문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당시 가덕진과 천성진은 경상우수영의 해상방어 최전망 진지였다. 전쟁의 긴급함을 알리는 관측소와 봉수대가 연대봉과 응봉에 있었다.

 

가덕도 연대봉 봉수대 /박차영
가덕도 연대봉 봉수대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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