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서의 7년’ 그후, 하러-달라이라마의 친분
‘티벳에서의 7년’ 그후, 하러-달라이라마의 친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6.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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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할러웃의 가치관으로 윤색…달라이라마, 하러 두 번 만나 우정 확인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티벳에서의 7’(Seven Years in Tibet, 199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팩션물이다. 헐리웃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미국적 가치관이 가미되어 사실이 상당히 윤색되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인공 하러가 나치 독일을 거부하고, 아들에 집착하며, 중국 공산당 간부가 티벳 불교를 비난하는 장면들은 양키주의의 단면을 드러낸다.

시나리오는 주인공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가 오스트리아 귀국 직후 1952년에 쓴 동명의 책(Seven Years in Tibet)과 그의 1959년 작품 하얀 거미’(White Spider)를 토대로 각색되었다. 두 작품에서 그의 동료이자 선배인 페터 아우프슈나이터(Peter Aufschnaiter)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티벳에서의 7년’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내용과 달리 하러(브래드 피트)는 나치 열성당원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19387월에 알프스 아이거봉(Eiger, 3,967m)을 처음으로 정복, 나치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만난후 SS(나치 친위대)에 가입했다. 그는 이 사실을 감추다가 60년 후에 그의 나치 전력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실을 인정했다. 아우프슈나이터도 나치 당원이었다. 영화에서는 하러가 나치를 거부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1939년 아우프슈나이터(데이비드 듈리스)를 단장으로 하고 하러가 대원으로 참여한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영국령 인도의 낭가 파르밧(Nanga Parbat)을 등정하려다 2차 대전 발발로 인해 인도 주재 영국 당국에 체포된다. 오스트리아 등반대는 영국령 인도에 있는 감옥에 수감된다. 하러가 수감생활을 하던 중에 이혼한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인리히 하러 /위키피디아
하인리히 하러 /위키피디아

 

영화에서는 하러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윤색된다. 하지만 하러는 자신의 저술에서 전부인이나 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혼한 부인의 새 남편은 2차 대전에 참전해 사망하는데 영화에서는 전쟁이 끝난후 하러가 아들을 만나는 장면에 전부인의 남편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등장한다.

또 영화에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라사에 도착해 모래로 만든 만달라를 밟고, “종교는 마약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 항공기를 착륙시키기 위해 티벳인들이 공항을 건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사의 공항은 영화의 시점보다 7년 후인 1956년에 건설된다.

중국 정부는 영화가 중공(中共)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묘사하고, 달라이 라마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이유로 감독 장 자크 아노와 주연 브래드 피트, 조연 데이비드 듈리스에 대해 입국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아노는 2012년에 피트는 2014년에 중국 땅을 밟았다.

 

페터 아우프슈나이터 /위키피디아
페터 아우프슈나이터 /위키피디아

 

하러는 귀국후 오스트리아에 살다가 리히텐슈타인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 후에도 알래스카, 안데스산맥, 중앙아프리카, 아마존강, 콩고강 등을 탐험했다. 그는 저술작업도 병행해 20여권의 탐험기와 사진집을 출간했다.

하러는 영화에 나오는 첫부인과 이혼한 후 1953년 재혼했다. 1958년 두 번째 부인과도 이혼하고 1962년 세 번째 부인과 만나 평생을 함께 했다.

그의 동료 아우프슈나이터는 하러보다 10개월 후에 티벳에서 나와 네팔에서 활동하다가 한참 후에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다. 그는 1973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2년 10월 15일 오스트리아에서 달라이라마가 하러에게 진실의 빛 메달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International Campaingn for Tibet
2002년 10월 15일 오스트리아에서 달라이라마가 하러에게 진실의 빛 메달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International Campaingn for Tibet

 

하러는 그후 달라이라마와 두 번 만났다. 달라이라마는 하러의 80세 생일인 1992년과 90세 생일인 2002년에 하러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카린티아(Carinthia)를 방문해 생일을 축하했다. 달라이라마는 두 번째 방문인 2002년에 하러에게 티벳 망명정부가 주는 진실의 빛’(Light of Truth) 메달을 수여했다.

하러는 1982년에 티벳을 다시 방문했는데, 그는 그때 침략자에 의해 티벳 문화가 파괴되고 상당수 티벳인이 강제수용소에서 노역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러는 200617일 오스트리아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러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달라이라마는 우리는 진실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의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의 장면 /네이버 영화

 


<참고자료>

International Campaingn for Tibet, Dalai Lama says Harrer was a loyal friend

DW, Controversial Mountaineering Legend Heinrich Harrer Dies

Wikipedia, Seven Years in Tibet (1997 film)

Wikipedia, Heinrich Harrer

Wikipedia, Peter Aufschnaiter

Wikipedia, 14th Dalai L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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