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주역 라루 선장, 카톨릭 성인 된다
흥남철수 주역 라루 선장, 카톨릭 성인 된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6.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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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교회의, 성인 시성절차 시작…1만4천명 살린 ‘크리스마스 기적’의 주인공

 

미국 카톨릭 주교회의가 17일 화상회의에서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주역인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를 성인으로 시성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루 선장 /nedforney.com
루 선장 /nedforney.com

로마 가톨릭은 탁월한 덕행이나 순교로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를 하느님의 종복자(Venerable)’ 등의 절차를 거쳐 성인으로 추대한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에 따르면, 미 해군과 상선 선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비영리단체 바다의 사도’(Apostleship of the Sea)2017년 라루 선장을 성인으로 추대할 것으로 추천했다. 이어 라루 선장이 말년까지 소속했던 가톨릭 패터슨 교구가 2019년 그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하면서 시성을 위한 첫 번째 절차가 시작되었다.

 

 

미 주교회의의 이번 결정은 라루 선장에 대해 다음 단계인 복자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기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교구장이 후보자의 생전 기적등을 조사, 심사한 뒤 바티칸으로 보내면 교황청 차원의 조사를 거쳐 교황이 추기경과 논의해 복자시성을 결정한다.

뉴저지 패터슨 교구의 케빈 스위니 주교는 추천사에서 라루 선장과 선원의 리더십과 용기 덕분에 14,000 명의 피난민이 흥남부두에서 구조돼 북한 공산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라루 선장은 1954년 마리너스(Brother Marinus)라는 이름으로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해 40년간 수사로 지내다 지난 200187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나라로 갔다.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12월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철수하는 미군과 한국군을 수송하기 위해 흥남부두에 입항했다.

흥남부두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추운 날씨에도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1215일부터 24일까지 군인과 피란민, 군수물자를 선박을 통해 남쪽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선박은 턱없이 부족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위키피디아
메러디스 빅토리호 /위키피디아

 

빅토리아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 선장은 도움을 기다리는 수많은 피난민을 목격했다. 그는 무모해 보이는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배에 태우기 위해 싣고 있던 무기와 물자를 모두 버리기로 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22일 라루 선장은 공산군에게 목숨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피란민들을 배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16시간이나 이어진 승선 끝에 빅토리호는 무려 정원의 230배나 되는 14,000여 명을 태우고 23일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라루 선장의 빅토리호는 추위와 배고픔, 공포 속에 목숨을 건 항해 끝에 19501225일 크리스마스 날에 한국 거제도 장승포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배에 타고 있던 피란민 중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고, 운항 중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경사도 있었다.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렸고,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자리에 설치된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위키피디아
거제도포로수용소 자리에 설치된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위키피디아

 

라루 선장은 흥남 철수 작전 4년 뒤인 19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베네딕토수도원에 입회했고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간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라루 선장은 생전에 흥남철수에 대해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고 회고했다.

그가 말년까지 소속됐던 가톨릭 패터슨 교구의 케빈 스위니 주교는 17일 미 주교회의에서, 라루 선장의 구조가 이후 한국 선교에 소중한 도구가 됐다며,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신도가 당시 피난민의 후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7월 미국 해병대 박물관 구내에 설치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라루 선장의 헌신을 언급하며 흥남 철수에 얽힌 개인적 사연을 전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다.”고 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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