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왜고개, 벽돌 굽던 곳에서 천주교 성지로
용산 왜고개, 벽돌 굽던 곳에서 천주교 성지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6.19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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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김대건 신부 등 순교자 가매장지…현재는 천주교 국군중앙교회

 

조선시대에 수도 한양에서 사용하는 기와와 벽돌은 용산에서 제작되었다. 19세기에 제작된 지도에 용산에 와서(瓦署)와 와굴현(瓦窟峴)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와서는 기와와 벽돌을 담당하는 관서로,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다가 1882년에 폐지되었다. 와굴현은 와고개로 불리다가 왜고개로 변형되었다. 서울 명동 성당과 중림동 성당을 지을 때 사용했던 벽돌도 공급해 주었다고 한다.

 

동여도 경조오부도(19세기)에 기록된 와서와 와굴현. (안내도) /박차영
동여도 경조오부도(19세기)에 기록된 와서와 와굴현. (안내도) /박차영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용산우체국을 지나 국방부쪽으로 가면 왜고개 성지가 나온다. 왜고개 성지는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처형당한 성직자와 신자들이 묻힌 순교성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천주교 군종교구청과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이 들어서 있다.

 

위치 /네이버 지도
위치 /네이버 지도

 

이 곳에는 1846년 병오박해 때 새남터에서 처형당한 한국인 신부 김대건의 시신이 잠시 안장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나중에 경기도 안성 미리내로 이장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처형당한 베르뇌 시메온 주교,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 도리 베드로 헨리코 신부, 프르티에 안토니오 신부, 프티니콜라 미카엘 알렉산데르 신부, 우세영 알렉시오 등 신교자 7명이 이 왜고개에 33년간 안장되었다. 또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당한 최형, 남종삼 등 2명의 순교자도 43년간 왜고개에 안장되었다.

이런 이유로 왜고개는 한국 천주교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고개 성지 모습 /박차영
왜고개 성지 모습 /박차영
왜고개 성지 모습 /박차영
왜고개 성지 모습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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