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150여년전 화장실 발굴, 정화시설도
경복궁에서 150여년전 화장실 발굴, 정화시설도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7.08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궐 내 화장실 유구로는 최초…1868년 만들어져 20여년간 사용했을 것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가 확인되었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동궁의 남쪽 지역에서 이와 같은 화장실 시설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경복궁 화장실의 존재는 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 북궐도형(北闕圖形), 궁궐지(宮闕志)등에서 기록으로 확인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의 화장실은 최대 75.5칸이 있었는데,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으며, 특히,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闕內各司)와 동궁(東宮) 권역을 비롯,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완료 후 전경 /문화재청
발굴조사 완료 후 전경 /문화재청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고종 5)에 완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것은 경복궁배치도궁궐지(宮闕志)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발굴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g18,000)과 씨앗(오이가지들깨)이 검출되었다.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화장실 유구의 규모와 구조 /문화재청
화장실 유구의 규모와 구조 /문화재청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되었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분뇨 발효와 침전오수와 정화수 외부 배출)와 유사하다.

 

화장실 유구 노출 후 전경 /문화재청
화장실 유구 노출 후 전경 /문화재청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의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하여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다.

 

발굴조사 완료 후 전경 /문화재청
발굴조사 완료 후 전경 /문화재청

 

전문가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고대 유적에서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의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다.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되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

 

화장실 유구 내부 퇴적 양상 /문화재청
화장실 유구 내부 퇴적 양상 /문화재청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은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문화재청 유튜브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12일부터 공개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