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베트남, 천년을 이어온 오랜 인연
우리나라와 베트남, 천년을 이어온 오랜 인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8.10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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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유학자의 베이징 교류, 베트남 왕자의 망명…오늘날엔 박항서 감독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애증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우리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해 지금의 베트남정부와 전투를 벌였다. 대한민국과 베트남과의 관계는 1956년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그 베트남(월남)1975년 패망하고, 현재의 베트남(월맹)과는 1992년 외교관계를 다시 수립했다.

베트남 정부와의 공식 외교에 앞서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교류는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두 나라 외교사절단은 베이징에서 유학 대결을 벌였고, 베트남 왕자가 우리나라에 망명해 지금도 그 후손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북쪽과 남쪽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역사의 끈을 맺어왔다. 두 나라 역사는 너무나 흡사하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때론 적대적이고, 때론 조공·책봉의 화해관계를 맺어온 것도 같다.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를 공유해 왔다. 유교는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던 두 나라를 맺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중국에 온 베트남 사신들의 모습을 조선 사신이 그린 그림. /나무위키
중국에 온 베트남 사신들의 모습을 조선 사신이 그린 그림. /나무위키

 

기록상 가장 먼저 베트남과 한국 역사가 만나는 시기는 고려말이었다. 베트남과 고려는 몽골과 기나긴 항전을 벌였다는 데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나라 모두 지쳤다. 쿠빌라이(원나라 세조)가 베트남을 공격할 무렵, 고려는 몽골과 화친을 청했고, 이어 베트남도 몽골에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두 나라는 원나라에 조공 사절단을 보냈다.

1308년 베트남(대월)과 고려에서 파견한 사절단이 원나라 수도 연경(燕京)에서 만났다. 당시 베트남에서 최고의 유학자 막 단 찌(莫挺之)가 연경에 도착했다. 때마침 고려 사절단도 연경에 머물렀다. 두 사절단은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한자를 공용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필담이 가능했다.

원나라 황제는 각국 사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정에서 두 나라 사절에게 한시 실력을 겨루게 했다. (이 이야기는 베트남에서 널리 퍼져 있다. 베트남에서는 이 시합에서 원 황제가 막 단 찌에게 손을 들어주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베트남 사신과의 교류가 잦아졌다.

조선초기 유학자 서거정(徐居正)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 안남국 사신을 만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성종실록191224일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거정이 사은사(師恩使)로 부경(赴京)하여 통주관(通州館)에서 안남국(베트남) 사신 양곡(梁鵠)을 만났는데, 그는 제과 장원(壯元) 출신이었다. 서거정이 근체시(近體詩) 한 율을 먼저 지어 주자 양곡이 화답하였는데, 서거정이 곧 연달아 10()을 지어 수응하므로, 양곡이 탄복하기를, "참으로 천하의 기재(奇才)." 하였다.

 

1597(선조 30) 진위사(陳慰使)로서 명나라 북경에 간 이수광(李睟光)은 베트남 레 왕조에서 온 풍 칵 꽌(馮克寬)과 만났다. 두 사람은 숙소 옥화관에서 50일이나 함께 머물렀다. 두 사절은 한자로 필담을 주고받으며,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풍속을 이야기하고, 시를 주고 받았다. 이수광은 베트남 사신에게 명 황제에게 바치는 시집(萬壽慶賀詩集)의 서문도 써 주었다. 고국에 돌아간 풍 칵 꽌은 관리와 유생들에게 이수광의 시를 소개했다.

 

조완벽(趙完璧)이라는 진주 출신 유생이 정유재란 때 일본 사쓰마(가고시마)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교토 상인에게 팔려간다. 그는 교토 상인을 따라 필리핀, 베트남 등지를 따라 다니다가 베트남 고관이 초대한 연회에 참석한다. 베트남 고관은 조완벽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책을 하나 꺼내면서 이 책은 당신네 나라 이지봉(李芝峯, 지봉은 이수광의 호)이 쓴 시인데, 당신은 알겠지요라고 묻는다. 조완벽은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되어 이수광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대답하자 베트남 고관이 서운해 하며 그 책자를 보여줬다. 조완벽이 그 책을 보니, 첫머리에 이수광의 시가 실려 있었다.

베트남 고관은 또다른 책을 꺼내면서 이 책은 귀국 이지봉이 쓴 책인데,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모두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조완벽은 베트남 유생들을 만나보니 정말로 이수광의 시를 외우고 있더라고 전한다.

그는 포로로 잡혀갔다가 10년만에 돌아와 이런 사실을 전했다. 조완벽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글 읽기를 숭상하여 이곳저곳에 학당이 있어 아이들이 고전을 외우고 시문도 익혔다고 한다.

 

이밖에도 조선 성종 때 사신으로 간 조신(曺伸) 연경에서 베트남 사신 레 티 꺼(黎時擧)와 시를 주고 받은 일이 어숙권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수록돼 있다.

또 베트남 대학자 레 꾸이 돈(黎貴惇)도 유명하다. 그는 1760~1762년 사이에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조선 사신 홍계희를 만나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베트남에 남아있다.

 

베트남 왕자가 고려로 망명해 이 땅에서 씨를 뿌린 경우도 있다. 화산이씨와 정선 이씨. 베트남 정부에서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를 리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했으며, 베트남에서 살 경우 출입국관리, 세금, 사업권 등에서 베트남인과 동일한 특혜를 주고,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15일이면 공식 행사까지 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팬들과 함게 하고 있다. (2018) /위키피디아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팬들과 함게 하고 있다. (2018) /위키피디아

 

베트남에서는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높다.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사돈의 나라'로 부른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을 포함해 한국에 체류하는 베트남인은 10만명을 넘는다.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다.

결혼 이주민 가운데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의 가족이 가장 평안하다는 얘기가 있다. 두 나라 사이에 유교가 맺어온 문화적 공통점이 가정의 화목을 가져오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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