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버들다리에서 만나는 전태일 반신상
청계천 버들다리에서 만나는 전태일 반신상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8.13 0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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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분신한 곳에서 다시 살아나…전국 노동단체 십시일반으로 모금

 

청계천 5가와 6가쯤 되는 곳에 전태일다리라고 명명된 다리가 있다. 청계천 공사를 하면서 서울시는 애초 다리 이름을 버들다리라고 정했지만, 노동단체들이 전태일 열사가 불꽃처럼 산화한 곳이란 역사성을 들어 전태일다리로 명명하자고 요구했다. 2010년 서울시는 이런 건의를 받아들여 버들다리와 전태일다리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전태일이 누구인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 노동운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701113일 낮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22살의 청년 전태일은 전신에 석유를 뿌리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절규하며 쓰러졌다.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전태일은 갔지만, 그의 뜻은 노동자들의 몸부림으로 살아났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 등장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정도로, 그는 상징적 존재다.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졌고, 지식인과 대학생들 사이에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되었고,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태일의 희생으로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장시간 노동조건을 강요당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노동운동의 조직화, 노동운동 이론의 과학화도 병행,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반신상 /박차영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반신상 /박차영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반신상 /박차영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반신상 /박차영

 

전태일 다리에는 큼직한 전태일 반신상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의 노동단체와 민주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2005년에 만든 동상이다. 그의 몸은 불태워졌지만, 전태일은 그곳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전태일다리 건너 평화시장 /박차영
전태일다리 건너 평화시장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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