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은 면적이 65만㎦로 한반도의 3배나 되고, 인구는 3,000만명을 약간 넘어선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인도, 페르시아(이란)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 고대부터 동서, 남북의 문물 이동로이자 공격로였고, ‘아시아의 심장’으로 불렸다. 국토가 해발 수천m의 산악으로 뒤덮여 있어 지역별로 다양한 종족이 세력을 형성, 분열과 대립을 반복해 왔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강대국의 무덤이었다.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침략했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해 물러났고, 19세기에 영국군이 이 산악국가를 침공했다가 2만명 가운데 1명만 살고 전멸한 적이 있다. 20세기말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을 앞세워 지원하다가 무장조직 무자헤딘에 의해 쫓겨 퇴각했다.
21세기엔 미국이 영국과 소련의 전철을 밟았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지만, 20년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미군이 퇴각한지 40일만에 카불은 탈레반에게 함락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게임(Great Game)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남진하고, 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이를 저지하는 가운데 아프간에서 양국이 충돌했다.
1838년 아프가니스탄의 국왕 도스트 무하마드는 영국 편에 섰다가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에 영국 본국과 인도 총독은 무하마드를 제거하고 영국에 우호적인 인물을 아프가니스탄의 새 국왕으로 교체하는 음모를 꾸몄다. 영국인들은 대체 국왕으로 무하마드에 의해 쫓겨나 파키스탄에 망명해 있던 샤 슈자를 정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 병력 2만1,000명을 동원해 카불을 공격했다. 1839년 7월 영국의 동인도군은 카불에 입성했다. 국왕 도스트 무하마드는 도망쳤다. 샤 슈자는 망명한지 30년만에 카불에 들어와 새 국왕이 되었다.
샤 슈자가 국왕이 되자 아프간인들은 신임 국왕과 영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카불에 주둔한 영국인들은 아프간 여인들을 유혹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여성의 명예를 중시했다. 그들은 가슴에 복수심을 채웠다. 이슬람 지도자들은 샤 슈자와 영국군에게 대항하는 대규모 봉기를 준비했다.
카불을 점령한지 2년이 갓넘은 1841년 11월 1일 밤, 대규모 시위대가 영국인 부대사 관저를 포위했다. 영국군은 발포 명령을 내렸다. 양측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고, 영국인과 30명의 인도인 경비병이 모두 전사했다. 이후 시위는 아프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 틈에 전임 국왕의 아들 와지르 악바르가 6,000명의 병력을 소집해 반란군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금새 반란군은 3만명으로 늘어났다.
반군지도자 악바르는 영국인들을 안전하게 철수하는 조건으로 아버지 무하마드를 귀환시킬 것을 제시했다. 영국군 사령관 윌리엄 엘핀스톤은 악바르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1842년 1월 6일 영국군 4,000여명과 영국인과 그 가족을 합쳐 1만6,000명이 카불을 철수했다.
악바르는 야비했다. 안전 귀환을 약속해 놓고 철수하는 영국인 대열의 후미에서 약탈과 살인 행위를 저질렀다. 영국군은 전투를 하면서 철수를 했다. 짐이 많은데다 민간인들이 대부분이어서 후퇴 속도가 느렸다. 낙오자도 있었고, 동상 걸린 사람도 속출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 좁은 골짜기를 통과할 때 악바르의 군대는 마지막 소탕작업에 들어갔다. 이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윌리엄 브라이든이다. 1월 13일, 브라이든은 유일한 생존자로 본국과 인도총독에게 보고를 전했다.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것은 1978년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여성평등을 외치며 여성의 차도르를 벗게 했다. 이 조치가 이슬람 지도자들을 분노케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개혁에 반대하는 종교인, 옛귀족층, 지주들을 처형하거나 감옥에 수감했다. 혁명 와중에 살해된 사람이 1만~2만7,000명에 이르고, 감옥수감자가 1만4,000~2만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었다. 공산혁명에 반발해 이슬람 지도부는 지하드를 선포하고 지역별로 무장조직 무자헤딘(Mujahideen)을 결성했다. 무자헤딘의 저항은 끈질겼다. 곳곳에 테러가 이어졌다.
공산정권의 지도자 하피줄라 아민은 소련군의 파병을 요청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군대파병을 승인했고, 1979년 12월 23일 소련군은 카불을 점령했다.
소련은 아민 정권을 붕괴시키고 아민의 정적인 바브락 카르말을 대통령에 내세워 친소 정부를 수립하고,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었다.
소련은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카르말 정권은 카불과 몇몇 주요도시만 장악했을 뿐, 농촌지역은 무자헤딘에 장악되었다. 미국과 파키스탄,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자헤딘에 무기를 공급했다. 특히 미국은 수백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을 풀어 스팅어 지대공미사일을 비롯해 첨단무기를 반군에 무상으로 주었다. 이 무기가 나중에 미국을 향하게 된다.
아프간 내전은 미-소 대리전으로 확대되었다. 1985년 집권한 소련의 고르바쵸프 서기장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추진했고, 1989년에 마지막 병력을 철수시켰다.
소련군이 철수한후 인민민주당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주요도시의 거점을 잃게 되고, 철군 3년만인 1992년에 수도 카불이 무자헤딘에게 함락된다. 이로써 1978년에 집권한 공산정권은 14년만에 붕괴되었다.
③ 미국의 전쟁, 20년만에 종식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무자헤딘이 분열되어 내전을 치르다가 1996년에 무자헤딘의 일파인 탈레반이 정권을 수립한다.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극단주의 알카에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우군으로 삼았다.
이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를 일으키고, 그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알카에다를 소탕하고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군 개입 20년후인 2021년 4월 14일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의 철수를 선언했다.
미군의 철수가 완료된 것은 7월 2일이다. 그리고 1개월후인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는 이웃나라로 망명하고, 카불은 탈레반에 의해 점령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너무 오래 끌었다.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저격하고 알카에다를 척결하는 것으로 끝내야 했는데, 그들의 동조자인 탈레반도 적으로 몰아 전쟁을 끌었다. 탈레반 정권 붕괴후 수립된 아프가니스탄 정권은 스스로 유지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미국은 엄청난 돈만 퍼부었고, 그런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다가 수천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미국의 카불 철수는 미국이 지키고 보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정권은 언제라도 포기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세상 사람들이 오늘의 카불 사태를 잊을만해 지면 미국은 탈레반과 다시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무슬림을 탄압하는 중국과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참고자료>
Wikipedia, Taliban
Wikipedia, Fall of Kabul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