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뱀 전설이 살아 숨쉬는듯 춘천 청평사계곡
상사뱀 전설이 살아 숨쉬는듯 춘천 청평사계곡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8.17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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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선원으로, 회전문이 특이함…깨끗한 계곡에 풍부한 수량의 물

 

춘천 청평사는 오봉산(五峰山)의 자락에 지어진 천년사찰이다. 가는 길은 소양호를 건너는 방법과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객지에서 온 우리는 청평사로 갈 땐 택시를 이용하고, 올 때는 소양강 여객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춘천역에서 택시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청평계곡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절까지는 1km 정도. 계곡이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공주와 상사뱀을 묘사한 상 /박차영
공주와 상사뱀을 묘사한 상 /박차영

 

계곡 입구 안내판엔 청평사에 얽힌 전설을 소개했다. 내용은 이렇다.

당나라 황제 태종에게는 공주가 있었는데, 평민 청년과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 은밀한 사랑이 당 태종에게 알려지고, 태종은 화가나 청년을 사형에 처했다. 청년이 죽고 형장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공주를 사랑한 청년의 혼이 상사(想思) 뱀으로 나타난 것이다.

뱀은 궁궐로 들어가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 버렸다. 궁궐에서는 공주에게서 뱀을 떼어내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다.

한 노승이 신라에 영험한 사찰이 있는데, 그곳에 기도를 드려 보라고 했다. 공주는 노승의 권유로 이곳 청평사에 오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공주는 자신을 감고 있는 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오려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수 있는지요하니, 뱀이 순순히 몸을 풀어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 목욕을 하고, 사찰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한편 뱀은 공주가 혹시 도망가지나 읺았을까 걱정해 청평사로 갔다. 절문(회전문)에 들어서려는 순간 맑은 하늘에 소나기와 벼락이 떨어져 뱀이 그 자리에 죽고, 빗물에 떠내려 가 버렸다. 법회를 마치고 공주가 계곡을 내려가던 중에 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있는 것을 보았다. 공주는 깜짝 놀라 뱀을 정성껏 묻어 주었다.

태종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금을 내려보냈다. 공주는 이 곳에 오래 머물며 상사 뱀의 극락왕생을 빌다가 귀국했다고 한다. 이후 공주가 머물던 동굴을 공주굴, 목욕을 했던 웅덩이는 공주탕, 삼층석탑은 공주탑이라 불린다는 전설이다.”

 

거북바위 /박차영
거북바위 /박차영

 

계곡을 오르니 작가 송광희가 제작한 공주의 상사뱀이란 조각이 바위 위에 설치되어 있다. 조금더 올라가면 거북바위가 나오고, 공주굴, 구송폭포가 나온다.

 

공주굴 /박차영
공주굴 /박차영

 

구송(九松)폭포는 주변에 소나무 아홉그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평상시에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땐 가물에서 물줄기가 송아지 오줌 싸듯 약했다.

 

구송폭포 /박차영
구송폭포 /박차영

 

더 올라 가면 청평사(淸平寺). 조계종 신흥사(新興寺)의 말사로, 고려 광종 24(973)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해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했다. 그 뒤 폐사가 되었다가 1068(문종 22) 이의(李顗)가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했으며, 1089(선종 6)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해 산 이름을 청평(淸平)이라 했다.

 

청평사 회전문 /박차영
청평사 회전문 /박차영

 

절에 오르면, 윤회를 상징하는 회전문이 서 있고, 회전문에서 다시 일직선으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안치돼 있다. 대웅전 뒤편의 산신각과 극락보전이 청평사 전각의 전부다. 위에서 보면 절은 4단계로 지어져 있다.

 

청평사 대웅전 /박차영
청평사 대웅전 /박차영

 

청평사는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다가 1970년대에 전각들을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지금은 회전문 앞과 뒤, 대웅전 사이에 건물터들만 쓸쓸히 남아 있지만, 이곳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청평사의 규모는 221칸이나 됐다고 한다.

 

보호수 주목 /박차영
보호수 주목 /박차영

 

절 뒤편에 수령 800년 된 주목이 오랜 연륜을 보증해 주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고려 사찰의 운치를 더해 준다.

절도 좋았지만, 이 한여름에 청평 계곡 폭포 밑에서 발을 담근다는 것 자체도 좋았다. 계곡 아래 소양호에는 여객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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