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퀴논 거리에서 생각하는 화해와 용서
이태원 퀴논 거리에서 생각하는 화해와 용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8.22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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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부대 주둔지 퀴논시와 화해의 상징…과거 상처 씻고 ‘사돈의 나라’로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한 블록 뒤 이면도로에 이태원 퀴논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길이는 330m. 서울 용산구가 베트남 퀴논시와 우호교류 20주년을 기념해 201610월에 조성한 거리다. 베트남 퀴논시에도 용산 거리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도로명으론 이태원 보광로 59길이다.

거리는 코로나 전염병의 영향으로 썰렁하다. 연인과 친구들로 자리를 메우던 카페들이 텅 비었다.

 

퀴논거리 표지판 /박차영
퀴논거리 표지판 /박차영

 

이 거리에는 베트남 퀴논시와 파월한국군 맹호부대의 사연이 담겨 있다.

퀴논시는 베트남어로 꾸이년이다. 꾸이년(Quy Nhơn, 歸仁)은 베트남 중부 빈딘(Bình Định, 平定)의 성도로 인구는 28만명쯤 된다. 고대 베트남 남부 고대 참파(Champa) 왕국이 옛수도로, 지금도 참파국을 세운 참족이 빈딘성의 가장 많은 소수 민족으로 남아 있다.

꾸이년과 한국과의 관련성은 파월 맹호부대의 주둔지였다는 사실이다.

맹호부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육군 수도 사단으로 용산에서 창설되었다. 부대는 1965925일에는 선발대가 출국하고, 1016일에는 본대가 부산항을 출발해 10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 퀴논에 상륙했다.

베트남전에서 맹호부대의 용맹성은 알아준다. 산악전과 밀림전에서 미군도 놀라워 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였다. 하지만 전쟁은 비극을 낳는 법. 맹호부대의 작전으로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이 살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퀴논 시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베트남 통일후 퀴논시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런 상처를 안고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재수교를 했다. 베트남은 한국군의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베트남 꾸이년 /위키피디아
베트남 꾸이년 /위키피디아

 

서울 용산구는 구한말 이래 아픔을 지녀온 지역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에 주둔지를 내주었고, 나중에 일본군이 그곳을 메웠고,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에 파병한 맹호부대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용산구는 1992년 한국-베트남 재수교 이후 퀴논시와의 관계 회복에 노력해 1996년 대표단이 처음 퀴논시를 방문했고 이듬해 두 도시 간 자매결연을 맺었다. 우리 군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퀴논시와 장학사업, 의료 지원사업, 집짓기 사업 등을 다양하게 펼쳐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퀴논시의 한국군 증오비가 위령비로 바뀔 정도로 현지인들의 앙금이 많이 누그러 졌다고 한다.

 

퀴논거리 모습 /박차영
퀴논거리 모습 /박차영
퀴논거리 모습 /박차영
퀴논거리 모습 /박차영

 

용산구는 한-베트남 재수교 24주년, 용산구-퀴논시 우호교류 20주년이 되는 2016년에 이태원에 퀴논 거리를 조성했다. 한국에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이 모두 20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이태원 퀴논 거리는 한국에 세워진 첫 베트남 타운인 셈이다. 퀴논 거리는 베트남 유학생, 결혼이민자, 자원봉사자 등이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과 포토존 등을 설치했다. 거리에는 베트남 음식점을 비롯해 외국어로 적힌 간판이 많이 보인다.

한때 한국과 베트남은 전쟁을 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이젠 우리나라의 교역 대상 4위국가로 부상할 정도로 경제교류가 활발한 나라다. 두 나라 사이에 인적교류도 활발해 서로 '사돈의 나라'로 부른다.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베트남 출신이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다.

이태원 퀴논 거리는 단순한 맛집 거리, 외국인 거리를 뛰어 넘어, 화해와 용서의 거리로 의미를 새기고 있다.

 
퀴논거리 표지판 /박차영
퀴논거리 표지판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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