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벌시대④…안직전쟁에 즈리파, 승리하다
중국 군벌시대④…안직전쟁에 즈리파, 승리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9.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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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솥밥 먹던 안후이파와 즈리파의 권력투쟁…만주군벌 장쭤린 개입

 

위안스카이가 죽은 후 북양군벌의 대표주자로 권력을 장악한 돤치루이(段祺瑞)는 결정적인 흠을 노출했다. 그에게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 즉 매국노라는 불명예스런 딱지가 붙었다. 국가의 이권을 일본에 내주는 조건으로 차관을 얻어와 무기를 조달하고 군대를 창설해 자파 세력을 확대했다는 혐의였다.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었다 해도 매국노 또는 반역자로 찍히면 정치를 하기 힘들다. 국민들이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세력이 힘을 키우게 된다. 돤치루이의 안후이 군벌은 19195·4운동을 통해 매판(買辦) 정권으로 규정되었다. 중국 현대사 최초의 민중운동으로 규정되는 이 시위는 정권을 타도하지는 못했다. 시위대는 중국인민의 여론은 움직였지만 조직력이 취약하고 결집력이 약했다. 결국은 권력 내부에서 매판세력을 응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세력은 북양군벌에서 갈라져 새로운 계보를 형성한 즈리(直隷)파였다.

1916년 위안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북양군벌은 돤치루이의 안후이파와 펑궈장의 즈리파로 갈라져 대립했다. 안후이파는 환계(皖系), 즈리파는 직계(直系)라고도 했다. 한 뿌리에서 자란 안후이파와 즈리파는 19207월에 한차례 전쟁을 벌여 자웅을 겨루는데, 이를 안직전쟁(安直戰爭) 또는 안-즈 전쟁(ZhiliAnhui War)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직환전쟁(直皖戰爭)이라고도 한다.

 

청조 시절의 즈리와 지금의 허베이성 /위키피디아
청조 시절의 즈리와 지금의 허베이성 /위키피디아

 

청나라 시대 즈리(直隸)는 지금의 허베이(河北), 베이징, 텐진을 합친 행정구역이다. 즈리는 수도권으로, 황제가 직접 관할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지역보다 중시되었다. 북양군벌은 황제의 군대였고, 즈리파는 그중에도 핵심이었다. 1912년 황제를 쫓아낸 이후 막강한 수도 군단이 내부분열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싸움의 빌미는 매판의 상징이던 참전군이었다. 참전군은 돤치루이 군벌이 1차 대전에 참전한 댓가로 일본에서 2,000만 엔의 차관을 받아 19192월에 편성한 군대다. 1차 대전은 이미 끝났고, 게다가 일본 돈으로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참전군의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돤치루이는 참전군의 이름을 변방군으로 바꿔, 심복인 쉬수정(徐樹錚)을 사령관으로 앉혔다.

쉬수정은 변방군을 이끌고 독립을 선언한 외몽골로 진격해 몽골의 독립운동을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변방군의 행위는 몽골의 입장에선 침략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선 애국적 행동이었다. 쉬수정의 성공적 활동으로 변방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다소 잠잠해 졌다.

 

쉬수정이 몽골지역에 영향력을 넓혀 나가자 그 지역을 자기의 권역으로 간주하고 있던 동북 3성의 군벌 장쭤린(張作霖)이 반발하게 되었다. 그 틈바구니를 즈리파의 거물 우페이푸(吳佩孚)가 파고 들었다.

1919년 즈리파 보스였던 펑궈장이 사망한 이후 즈리 성장인 차오쿤(曹錕)이 파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우페이푸는 차오쿤 수하에 실력 있는 무장으로, 후난성에 파견되어 있었다.

우페이푸는 안후이 군벌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세력 규합에 나섰다. 191911월 우페이푸는 후난성 헝양에서 서남군벌인 루롱팅(陸榮廷)과 탕지야오(唐繼堯)와 회동해 구국동맹군초약을 체결했다. 이는 반안후이 동맹의 시초였다. 해를 넘겨 19204월 우페이푸는 즈리 바오딩으로 올라가 즈리, 후베이, 허난,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장쑤, 장시 등 8개 성 군부연합체를 비밀리에 조직했다. 반돤치루이 동맹 8개 성에는 장줘린의 동북 3성이 포함되었다.

 

차오쿤(왼쪽)과 우페이푸(오른쪽) /위키피디아
차오쿤(왼쪽)과 우페이푸(오른쪽) /위키피디아

 

1920525일 우페이푸는 돤치루이 정권에 불복종을 선언하고 군대를 이끌고 북진했다. 돤치루이는 후난 독군 장징야오(張敬堯)에게 우페이푸의 진군을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장징야오는 도적 출신으로 위안스카이의 눈에 들어 입신출세한 인물인데, 우페이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이 겁쟁이는 가족과 재산을 챙겨 줄행랑치고, 후난성은 혁명파 군벌 자오헝티(趙恒惕)의 손에 넘어갔다.

우페이푸는 후난성을 접수한 후 허난성을 향해 북상했다. 돤치루이는 허난성 독군 자오티(趙倜)를 신뢰하지 못하고 처남인 우광신(吳光新)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자오티는 안후이파에 등을 돌리고 우페이푸 진영에 가담했다. 우페이푸는 허난성까지 손쉽게 장악하게 되었다.

 

우페이푸가 이끄는 즈리파 군대가 북상하자 돤치루이는 심복 쉬수정의 변방군을 베이징 근교로 배치시켰다. 즈리파와 안후이파가 바오딩과 베이징에 집결하면서 전운이 고조되었다. 장쩌린도 619일 동북군을 이끌고 베이징에 도착했다.

정권을 쥐고 있던 안후이파는 그들의 군대를 정국군(定國軍)이라고 한 반면에 도전자인 즈리파는 토역군(討逆軍)이란 표현을 썼다. 양측의 군대는 각각 5만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명분에서 즈리파가 유리했다. 즈리파는 안후이파를 매국노, 반역자로 몰아부친 것이다.

 

중국 최고의 정예부대 10만명이 수도 주변에 진을 치고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만주군벌 장쭤린이 중재자로 나섰다. 그는 이미 우페이푸가 주도하는 반돤치루이 동맹에 발을 담근 상태에서 안후이파에겐 제3자인양 너스레를 떨었다. 당연히 그의 중재안은 우페이푸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장쭤린은 대총통 쉬스창(徐世昌)에게 쉬수정을 파면하고, 변방군 지휘권을 육군부로 넘길 것 등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안후이파에겐 치명적인 내용이었다. 중재안이라기보다는 우페이푸의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쉬스창 총통은 장쭤린의 중재안을 덥석 받아주었다. 돤치루이와 쉬수정은 총통이 배신했다며 총통을 끌어내릴 방법을 찾았다.

장쭤린의 중재는 더 진척되지 목했다. 안후이 군벌은 장쭤린이 즈리파에 매수되었음을 간파하고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쉬수정은 장쭤린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돤치루이 관저로 와달라고 했다. 76일 저녁 뒨치루이가 직접 나와 장쭤린을 마중했고, 만찬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장쭤린은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하게 전개된다고 느끼고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그곳을 빠져 나와 자신의 사령부로 달아났다.

 

안직전쟁 직후에 즈리파와 펑텐파 장군들의 기념사진 /위키피디아
안직전쟁 직후에 즈리파와 펑텐파 장군들의 기념사진 /위키피디아

 

두 파벌은 전쟁으로 치달았다. 78일 돤치루이는 안후이파 인사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어 즈리파 토벌을 결의했다. 타깃은 즈리파의 수괴 차오쿤과 그의 수하 우페이푸였다.

돤치루이는 군대를 이끌고 총통 관저를 포위하고, 대총통에게 차오쿤과 우페이푸의 파면과 토벌을 선언하도록 요구했다. 비겁한 대총통 쉬스창은 돤치루이에게 군사력 사용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양측의 전략은 대등했다. 안후이 계열로선 일본 차관으로 최신무기를 도입해 무장한 게 장점이었고, 즈리파에겐 오랜 실전경험이 안후아파보다 강한 점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었다. 반역자 돤치루이를 타도하라는 구호는 즈리파를 우웛하게 했다. 게다가 장쭤린의 동북군이 즈리파의 우군이었다.

 

전투는 오래 가지 않았다. 714일 돤치루이의 공격명령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나,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안후이파가 밀리기 시작했다. 대세가 기울자 장쭤린의 동북군이 가세했다. 안후이 진영에 탈영병이 꼬리를 이었다.

쉬수장은 부하들을 버리고 베이징의 일본 공사관으로 달아났다. 단치루이는 718일 국무총리직을 사직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돤치루이는 텐진의 일본 조계로 도망쳤다. 쉬수정도 일본으로 달아났다. 일본 자본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도 본색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승자는 우페이푸의 즈리파와 장쭤린의 펑텐(奉天)파였다. 그들은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두 파벌이 다시 전쟁을 벌였으니, 1, 2차 봉직전쟁(奉直戰爭)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ZhiliAnhui War

나무위키, 안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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