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이 누에차기 장려하던 성북동 선잠단터
조선왕실이 누에차기 장려하던 성북동 선잠단터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9.0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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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신 서릉씨 제사하던 곳…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뽕나무 심어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근처 도로변에 조선시대에 누에치기(양잠)을 장려하던 선잠단(先蠶壇) 터가 남아 있다. 제사를 지내던 본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국가문화재 사적 8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곳의 단은 1471(성종 2)에 처음 쌓은 것이다. 단을 쌓은 방법은 사직단(社稷壇)과 같게 했다. 선잠단 남쪽에 한 단() 낮은 댓돌을 두고, 그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었다. 이 뽕나무에서 뽕잎을 따서 궁궐내 잠실에서 키우는 누에에게 먹였다. 선잠 의식은 매년 3월에 거행했다.

 

선잠단 터/박차영
선잠단 터/박차영

 

선잠단은 조선 역대 욍비가 잠신(蠶神) 서릉씨(西陵氏)의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서릉씨는 중국 황제(黃帝)의 정비로 양잠을 처음 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농업과 잠업이 나라의 기간산업이었다. 조선의 왕들은 친경(親耕)으로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에게 알렸고, 왕비는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했다. 농업 장려는 국왕이, 양잠 장려는 왕비가 각각 분담했다.

농업과 잠업을 주관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종묘·사직제와 더불어 중요한 국가 제례의식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선농단(先農壇)과 선잠단(先蠶壇)은 바로 이러한 의식을 치르기 위한 제단이었다.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선잠단의 크기는 사방 23, 높이 27촌이며, 네방향으로 나가는 계간이 있다. 제단을 둘러싼 상단과 하단 담장의 둘레는 각각 25보라고 적혀 있다.

 

선잠단지 주변 /문화재청
선잠단지 주변 /문화재청

 

우리나라에서 선잠제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크게 장려되었다. 궁궐 후원에는 왕비가 뽕잎을 따며 양잠의 모범을 보이는 친잠례가 이뤄졌다.

세종 임금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했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선잠단의 설치 이후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냈다.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1908년에 선잠단과 선농단(제기동)의 신위를 사직에 배향하면서 그 기능을 잃고 폐허가 되었다.

대한제국 말까지 선잠단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뽕나무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현재도 이곳에는 수령은 많지 않지만 20여 그루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서울 선잠단지 전경 (2015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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