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칠백의총 순의비 폭파 전 탁본첩 나왔다
일제의 칠백의총 순의비 폭파 전 탁본첩 나왔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9.2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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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탁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지난해 진본 확인

 

충남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잔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조헌(趙憲, 1544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했다. 이어 금산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그들이 전사한 후 조헌 선생의 제자들이 전사자들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칠백의총이다. 조선 선조 36(1603)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졌다. 순의비에는 금산전투의 경위와 조헌을 비롯한 순절한 인물들에 대한 추모 헌사가 적혀져 있었다.

이어 인조 25(1647)에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일본인들은 자기 민족의 과거 범죄사실을 감추기 위해 칠백의총을 허물고 순의비를 폭파했다. 하지만 금산군 사람들이 비석 조각을 감추어 보존했다. 1971년 깨어진 조각을 시멘트 등으로 다시 붙여 복원한데 이어 2009년 석재로 재차 복원하고 비각도 새롭게 건립했다. 1963년 정부는 묘역을 확장하고 1976년에 기념관·순의탑을 새로 지었다.

 

충남 금산군 금성면 칠백의총 순의비 /문화재청
충남 금산군 금성면 칠백의총 순의비 /문화재청

 

다행스런 것은 일제에 의해 폭파된 조참판일군순의비(趙參判一軍殉義碑)의 탁본첩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칠백의총관리소는 지난해 이 탁본이 조참판일군순의비를 조선후기에 탁본해 첩 형태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참판일군순의비의 비문 일부는 복원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유실된 상황이라 이 탁본첩을 통해 비로소 비문전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비석에 쓰인 음기후지(陰記後識)’의 글쓴이(書者)는 비면의 해당부분이 유실되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탁본첩의 발견으로 조선 후기 저명한 서예가였던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글씨로 확인되었다. 이밖에 각수, 석공 등의 명단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칠백의총관리소는 조참판일군순의비의 탁본첩을 포함해 상설전시도록을 새롭게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하는 도록에는 보물로 지정된 조헌 관련 유품을 비롯해 칠백의총 기념관이 전시·소장중인 주요 유물 30여점의 사진과 설명이 실렸다. 유물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보물 조헌 관련 유품을 포함한 고문서 유물에 대해서는 국역까지 되어 있어 전문연구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의 전체 상황을 소개한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김경태 교수의 논고와 조선 시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칠백의총 연혁을 살펴본 공주대학교 사학과 박범 교수의 논고도 수록했다.

발간된 도록은 국공립박물관, 임진왜란 관련 단체와 문중 등에 배포할 예정이며, 칠백의총관리소 누리집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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