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던 코페르니쿠스 저서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던 코페르니쿠스 저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9.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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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설, 루터의 종교개혁과 맞물려 천문학과 사회 변화에 크게 기여

 

소설가 댄 브라운이었다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연구를 아주 흥미롭게 다루어 수백만 독자들이 읽는 베스트셀러 소설로 창작했을 것이다.

미국 천문학자 오언 깅거리치(Owen Gingerich)아무도 읽지 않은 책’(The book nobody read)은 천문학의 시조인 코페르니쿠스의 저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당대 독자들에게 얼마나 읽혔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깅거리치는 미국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관측소의 명예교수이자 하버드대 천문학 과학사 교수이며, 미국 천문학계의 거장이다. 197011월 깅거리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왕립천문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책 초판 한권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누군가가 책에다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를 잔뜩 적어 놓았던 것이다. 그의 관심은 여기서 출발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위키피디아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위키피디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폴란드의 천문학자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던 중에 그리스의 고문헌을 통해 태양중심설을 알게 되었고, 폴란드로 돌아와 자신의 태양중심설을 간략한 요약본 형태로 저술해 유포했다. 그는 말년에 지동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를 저술해 1553년 임종에 임박해 초판 인쇄본을 받아 보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이 저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天動說) 체계에 대치해 지동설을 본격적으로 제시했고, 당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인쇄매체를 이용함으로써 혁명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저서는 독일의 성직자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어 종교개혁의 불을 당긴 직후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동설을 신의 섭리라고 받아 들였던 카톨릭에 정면 도전하는 역할을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 가운데 태양 중심 우주론을 다룬 앞부분 5퍼센트 정도는 지적으로 즐길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는데 비해, 나머지 95퍼센트는 행성의 움직임을 고도의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무지무지 어렵고 전문적으로 서술되었다. 이에 저명한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아서 케스틀러(Arthur Koestler)1959년 저서 몽유병자들’(Sleepwalkers)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이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자 역사상 가장 판매가 신통치 않은책이라고 평가 한 바 있다.

하버드대 천문학자 깅거리치도 케스틀러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가 나이 40살이 되던 해에 에든버러 초판본에서 빽빽하게 쓰여진 메모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깅거리치는 에든버러 초판본이 코페르니쿠스 생존 당시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이자 당대 최고의 천문학교수인 에라스무스 라인홀트(Erasmus Reinhold, 1511~1553)의 것임을 밝혀냈다. 비텐바르크 대학은 마르틴 루터가 재직하던 대학이자 종교혁명의 본산지였으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주인공 햄릿이 다닌 대학으로 당대 최고의 대학이었다.

깅거리치는 케스틀러의 가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는 어렵게 서술된 것은 분명했지만 많은 독자를 가졌고, 당대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깅거리치는 그후 30년에 걸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성인(聖人), 이단자, 불량배, 음악가, 영화배우, 의사, 장서가들이 소유한 코페르니쿠스의 책들을 찾아냈다. 도서관과 연구소, 경매장, 개인 소유의 성() 안까지 넘나드는 철저한 조사 끝에, 1543년의 초판본과 1566년의 재판본 600권을 조사했다. 깅거리치는 그 책들을 소유한 이들과 그들이 책에 남긴 메모와 각종 흔적을 정리해 2002년에 ‘’코페르니쿠스의 회전에 관하여의 주석에 관한 조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할 때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이 책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펴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543년 초판 /위키피디아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543년 초판 /위키피디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그의 유일한 제자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Georg Joachim Rheticus)가 당대 최고의 인쇄업자인 뉘른베르크의 페트레이우스에게 원고를 가지고 갔다. 이렇게 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저술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반어법이다. 깅거리치는 케스틀러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그는 오랜 추적 끝에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수 많은 연구자들에게 읽혔고,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만 천문학자 깅거리치의 추적 결과는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빈치코드와 같은 스릴과 공상, 허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설명 /위키피디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설명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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