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동작 사이 국사봉에 스며든 민중의 애환
관악-동작 사이 국사봉에 스며든 민중의 애환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10.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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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재, 능고개의 전설…당곡마을 구암이란 지명에서 무속적 흔적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 사이에 국사봉이란 야트마한 산이 있다. 해발 184m. 북쪽으로 한강이, 남쪽으로는 관악산이 보인다.

국사봉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이름의 산이다. 한자로 國師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國思峰 또는 國士峰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나라의 스승이 사는 산, 나라를 생각하는 산 등으로 해석된다. 서울의 국사봉도 산 자락에 묻혀 있는 양녕대군이 멀리 경복궁을 바라보며 동생 세종의 일을 걱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국사봉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산 이름의 하나로, 그저 마을 뒷산의 개념으로 보는 게 마땅한 듯하다. 산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는 산 정도다. 이곳 국사봉에도 무속적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당곡마을, 거북바위(龜巖)라는 지명이 무속적 흔적이다.

 

국사봉 정상 /박차영
국사봉 정상 /박차영

 

동작구와 관악구를 가르는 국사당에는 민중의 애환이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한강 북쪽 한양도성 안에는 권세 높은 양반네들이 살았고, 가난한 백성들은 한강 남쪽 노량진에 살았다. 그나마 일거리와 먹을거리라도 있으면 다행,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도적질을 할 수밖에 없다.

국사봉 근처에 살피재라는 지명이 그런 곳이다. 숭실대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높고 험한데다 숲이 울창해 도둑들이 나타나 길손을 괴롭혔다.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살펴서 가라고 당부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다른 어원으로는 고개가 높고 험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슬프다는 뜻으로 슬피재라 하다가 음이 변해 살피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자에 방점을 두고 싶다.

 

국사봉에서 본 관악산 /박차영
국사봉에서 본 관악산 /박차영

 

상도동 지덕사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능고개의 전설에도 민중의 애환이 묻어난다. 능고개는 세종대왕의 형인 양영대군의 능묘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살림이 빈궁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근근이 지내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노승이 그의 집을 지나다가 밤이 깊어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는지라, 이 가난한 자는 노승을 불러들여 불을 지피고 죽을 끓여 드렸다. 노승은 집주인이 굶고 자신에게 죽을 준 사실을 알고는 장차 능고개 자리에 묘를 쓰라고 일러주었다. 그가 죽고 능고개에 묘를 썼더니 자손이 번창하고 가세가 일어났다고 한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마음을 착하게 쓰면 번창한다는 신화적 스토리의 일부다.

 

사자암 /박차영
사자암 /박차영

 

국사봉 밑 상도동 쪽에 사자암이란 전통사찰이 있다. 조계종 소속으로, 조선 태조 5(1396) 무학대사가 한양청도 과정에서 창건했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으로 한양의 풍수를 살펴 보던 중에 만리현(만리동)이 달아나려는 백호의 형상이었다. 이에 무학대사는 백호를 제압하기 위해 한강 건너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 형상인 국사봉에 사자암을 조성했다. 국사봉을 사자봉이라고도 한다.

이 절에는 많은 고승들이 머물러 수도했고,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호국도량으로 유명하다.

 

22004년에 국사봉을 가로지르는 터널이 개통되었다. 국사봉터널의 개설로 봉천동고개(살피재)를 넘는 교통량이 분산되었다.

 
 
국사봉 등산 행로 /네이버지도
국사봉 등산 행로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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