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절벽마을, 우리 현대사가 녹아 있는 곳
창신동 절벽마을, 우리 현대사가 녹아 있는 곳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10.04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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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채석장, 개발연대에 서민이 주거지, 봉제산업의 요람…

 

서울 종로구 창신동(昌信洞)은 일제가 1914년 동명을 만들 때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의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에서 글자를 따 합성한데서 유래했다. 창신동은 동대문 밖 낙산(駱山)의 동쪽으로 뻗어나간 기슭에 위치 있으며, 동쪽은 숭인동과 접해 있다.

 

창신동 전경 /박차영
창신동 전경 /박차영

 

창신동의 북쪽 사면을 이루는 낙산은 화강암이 좋기로 유명했다. 일제가 경성 건설에 착수하면서 서양식 석조 건축양식을 도입했다. 석재는 무겁기 때문에 멀리서 수송하기 힘들다. 그런데 질 좋고 풍부한 석재가 창신동과 숭인동의 뒷산에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일제가 그 산을 그냥둘 리가 없었다. 창신동의 낙산, 숭인동의 동망산에는 일제 강점기에 4곳의 채석장이 들어섰다.

1912년 완공된 조선은행 본점(한국은행)을 시작으로, 경성역(서울역), 경성부청(서울시청), 조선총독부를 짓는데 쓰인 돌이 이 곳 채석장에서 채굴되었다. 그러다가 1924년엔 창신동과 숭인동의 채석장이 경성부 직영채석장으로 지정되었다.

채석장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채석장에는 착암기로 돌에 구멍을 뚫어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폭파를 하고, 돌을 자르는 재단작업을 한다. 매일 그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이 동네는 사람이 살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석재 채굴은 계속되었다.

수십년 동안 돌을 캐다보니, 4개지에 40m나 되는 수직절벽이 생겼다. 창신동과 숭인동의 절벽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창신동 절개지 /박차영
창신동 절개지 /박차영

 

6·25 전쟁이 끝나고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서올로 몰려온 사람들로 인해 서울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초에 채석장이 폐쇄되었다. 서울로 밀려든 무주택자들이 채석장 공터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절개지 아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창신동이란 마을이름보다 돌산 및이라 불렀다.

채석장 절개지에 지어진 집은 모양도 제각각이고, 아슬아슬하다. 골목을 잘못 들르면 한참 헤멘다. 오르막이 가팔라 몇 번이고 쉬어서 올라야 한다.

절벽 아래에도 마을이 있다. 큰 바위 사이의 좁은 공간에 들어섰기 때문에 좁고 좌우비례가 맞지 않는 집들도 많다.

새로 형성된 창신동 절벽마을은 봉제의 메카로 부상했다. 1980년대엔 물량을 대기도 벅찰 정도로 창신동의 봉제산업이 호황이었다고 한다.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에서 팔리는 봉제 일감을 이 곳에서 댔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중국산 덤핑제품이 들어오면서 창신동의 봉제산업은 사양길로 접어 들었다. 아직도 창신동 구석구석에 봉제업을 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창신동 주택가 /박차영
창신동 주택가 /박차영
창신동 주택가 /박차영
창신동 주택가 /박차영

 

2000년에 창신동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당사자 간의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대치하다가 뉴타운지정이 해제되었다. 뉴타운이 해제된 이후 2014년에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엇다. 이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창신1동은 백남준 기념관을, 창신2동은 봉제역사관, 창신3동은 도서관을 각각 지었다.

 

창신동 절개지 아래 /박차영
창신동 절개지 아래 /박차영
창신동 절벽마을 계단 /박차영
창신동 절벽마을 계단 /박차영

 

창신동에는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이 가난한 시절의 거주지였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보냈고, 가수 김광석도 청년시절에 이곳에서 노래를 지었다. 박수근 화백도 창신동 골목길을 오가며 풍경을 그렸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건축학개론, 시크릿가든, 미생도 창신동을 배경으로 했다.

 

숭인동 절개지 /박차영
숭인동 절개지 /박차영

 

창신동의 절벽마을은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깎이고, 개발연대에 서울에 몰려온 인구에 삶의 터전을 제공했다. 봉제산업과 전태일, 영화 미생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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