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지덕사, 세종에 왕위 내준 양녕대군 사당
상도동 지덕사, 세종에 왕위 내준 양녕대군 사당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10.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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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문제로 폐세자된 후 동생 충녕이 왕위 올라…단종 폐위에 개입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양녕로란 도로가 있고, 그곳에 지덕사(至德祠)란 조선왕실 사당이 있다. 그 사당은 바로 조선 3대 태종의 맏아들이자 4대 세종의 형인 영녕대군을 모신 사당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은 태종 이방원의 장자로 출생했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 김한로의 딸이다. 이름 이제(李禔)이고 자 후백(厚伯), 시호는 강정(剛靖)이다. 사당동 사당의 문화재 명칭도 양녕대군 이제 묘역이다.

 

영녕대군 이제 묘역 전경 /문화재청
영녕대군 이제 묘역 전경 /문화재청

 

10살이 되던 1404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양녕의 죄는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사실이다. 성품이 자유분방하고 사냥을 좋아했고 기생을 탐하여 궁궐에 여자를 불러들여 부왕의 노여움을 샀다.

양녕이 어리(於里)라는 여자를 임신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비행을 감싸주던 장인 김한로는 귀양을 가게 되었고, 황희도 양녕을 두둔하다 처벌을 받았다. 신하들의 상소로 양녕은 폐세자되어 경기도 광주로 물러나 살게 되었다. 양녕이 폐세자 된후 세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忠寧大君)을 세자로 책봉하니, 그가 후에 세종이 된다.

 

지덕사부묘소 /문화재청
지덕사부묘소 /문화재청

 

양녕은 임금이 되지 못했지만, 타고난 기질대로 한량으로 생활했다. , 서예, 음악 등 풍류를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기생들과 어울리며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세종에게 여러차례 상소가 올라갔으나, 세종은 그때마다 형을 감쌌고 배려했다.

세종이 죽고 조카인 문종마저 사망하자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올랐다. 이때 양녕은 수양대군(세조)을 지지했다. 그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세조가 사육신과 안평대군, 단종의 사사에 동조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의 방탕은 계속되었지만 오히려 조카 세조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1462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덕사 표지석 /박차영
지덕사 표지석 /박차영

 

양녕대군의 사당은 숙종 원년(1675)에 숭례문 밖 도동(挑洞)에 세워졌다. 사당의 이름이 지덕(至德)으로 명명된 것은 세자로 14년간 지낸 양녕이 아우에게 왕위를 사양한 행적이 고대 중국의 주나라 태백(泰伯)과 같고, 이는 인격이 덕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당은 1912년 지금의 상도동 자리로 옮겨졌다.

사당 안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양녕대군의 친필인 숭례문 현판의 탁본과 정조가 지은 지덕사기, 허목이 지은 지덕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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