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⑤…일본, 외교적 고립
만주국⑤…일본, 외교적 고립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11.11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연맹 조사단, 만주국을 괴뢰국으로 규정…일본, 영-미와 단절

 

장쉐량은 동북군벌 장쭤린의 아들로, 중국 군벌 가운데 대를 이은 특별한 케이스였다. 동북군벌이 여타지역의 군벌에 비해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장쉐량은 베이징 사교계에서 바람둥이로 유명했고 귀공자로 대우받았다. 그는 아버지 장쭤린이 192864일 관동군의 음모로 암살된 이후 동북군벌의 수장에 올랐다. 장쉐량은 처음에 관동군과 국민군 사이에 줄타기를 하다가 고조되는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장제스 정부에 복속했다. 19281229일 장쉐량이 단행한 동북역치(東北易幟)는 관동군에겐 충격이었다. 만주가 일본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가 장제스의 품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배신당한 관동군의 강경파들은 무력으로 만주를 집어삼킬 계획을 짰고, 그 시도가 1931918일 류타오후 사건이었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장쉐량은 베이징에 몸져 누워 있었다. 그는 사건을 일본의 소규모 도발로 오판했다. 장쉐량은 사변 초기에 전면전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일본의 어떤 공격에도 저항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의 부저항 명령은 일본으로 하여금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동북 3성을 차지하는 횡재를 안겨 주었다.

장제스도 여력이 없었다. 국민당은 공산당의 장시소비에트를 두차례 토벌했다가 실패한 이후 3차 초공(剿共) 작전에 돌입, 주력군을 남부지역에 파견한 상태였다. 장제스는 일본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 했다.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과 맞서기 위해서는 일단 내부의 적을 소멸시킨 연후에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장쉐량은 일본의 도발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만주를 침공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장제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주는 도발 5개월만에 일본에 무혈 점령되었다.

 

장제스(오른쪽)와 장쉐량(1930) /위키피디아
장제스(오른쪽)와 장쉐량(1930) /위키피디아

 

중국은 무력충돌을 피하고 대신에 일본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당시 열강은 아무도 중국을 도와줄 상황이 되지 못했다. 1929년 시작한 대공황의 여진이 세계경제에 휘몰아쳐 각국은 경제문제 해결에 골몰했고, 미국과 유럽은 1차 대전 직후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었지만 파시즘이 국제적 위협으로 느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일본의 침공은 중국이 홀로 대처해야 할 국지전의 성격을 띠었다.

난징정부는 만주사변에 대해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국제연맹에 호소했다. 국제연맹은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1210일 조사단을 만주로 파견하기로 했다. 조사단장엔 영국의 인도 대리총독이었던 리튼 백작이 지명되었다. 일본에선 만주의 군사적 점령을 반대한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郞) 내각이 사퇴했다. 미국의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은 전쟁으로 획득한 조약, 상황, 협정등을 무효로 하는 불승인주의를 선포했다. 한마디로 국제여론은 관동군이 점령한 만주를 돌려주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내외 여론이 악화되자 관동군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쏠리도록 또다른 음모를 꾸몄다.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에 맞선 중국군 19로군 /위키피디아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에 맞선 중국군 19로군 /위키피디아

 

193218일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의사가 열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 천황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거는 실패했지만 중국과 일본에 충격을 주었다. 중국언론들은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중국 주재 일본인들을 격앙케 했다. 중국 내에 양국인의 감정이 과열되던 차에 관동군이 음모한 사건이 터졌다.

관동군은 중국인에게 뇌물을 주어 일본인 폭행사건을 꾸몄다. 1932118, 상하이에서 일본인 승려 2명과 신도들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승려 한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관동군이 사주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적반하장으로 중국에 사죄를 요구하고, 일본 교민들도 폭동을 일으켜 중국 경찰을 살해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일본의 억지에 상하이 시장은 일단 굴복했다. 하지만 사건발생 열흘후인 128일 일본해군육전대가 일방적으로 중국군 19로군을 공격해 양국군의 충돌로 확대되었다. 2월 중순 일본은 3개 사단을 파병했고, 3월 중순 중국군은 상하이 부근에서 퇴각했다. 장제스의 난징정부는 뤠양으로 피신했다.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 대표들이 교전 양국을 설득해 정전 협의를 추진했다. 협상이 마무리되어 조인만 남기고 있던 429일에 조선인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하는 바람에 일본의 파견군사령관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협상은 난항을 거듭한 끝에, 55일 정전협정이 성립되었다.

 

일본 군부는 상하이 사변을 일으켜 중국이 만주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만주는 우리가 먹을 터이니, 중원이나 신경쓰라는 식이었다. 그 사이에 39일 관동군은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하고, 폐위된 황제 푸이를 집정으로 책봉했다.

집정(執政)은 군주가 아니었다. 만주국은 형식적으로 의회를 두었지만 1945년 붕괴하는 날까지 의회가 열린 적이 없었다. 법률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률은 집정의 명령, 즉 교령에 의해 제정되고 발표되었다. 교령은 집정이 관동군에 위임했기 때문에 실제로 관동군이 좌지우지했다.

행정 조직에 국무원을 두었는데, 국무총리가 집정을 대행했다. 초대 국무총리는 푸이의 측근인 정샤오쉬(鄭孝胥)1935년까지 맡았고, 만주군벌 출신 장징후이(張景惠)가 멸망 때까지 그 뒤를 이었다. 실세는 국무총리 밑에 있는 총무장관이었다. 만주국은 국무원 내에 총무청을 설치해 국정을 관할하도록 했다. 총무장관엔 일본인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사실상 만주국을 통치했다.

만주국은 형식적으로 독립국이었다. 하지만 만주국은 일본 이외에 대다수 국가에서 승인을 받지 못했다. 만주국을 승인한 나라는 엘살바도르(1934), 도미니카공화국(1934), 코스타리카(934), 이탈리아(1937), 스페인(1937), 독일(1938), 헝가리(1939)에 불과했다. 중국은 끝내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련은 외교적으로는 승인하지 않았지만, 상거래와 인적 교류를 하는 비공식 관계를 유지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국제연맹 리튼 위원회 /위키피디아
상하이에 도착한 국제연맹 리튼 위원회 /위키피디아

 

만주국 수립은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야기했다. 이전까지 일본은 영국, 미국 등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와 동맹을 맺어 청, 러시아를 꺾었지만, 이후부터는 앵글로색슨 국가에 등을 돌리면서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어쩌면 만주국 수립이 일본 패망의 서막이 된 셈이다.

국제연맹이 파견한 리튼 위원회는 421일부터 64일까지 6주 동안 만주에 체류하면서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일본의 기망에 속지 않고 만주사변의 진상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보고서는 일본을 침략자라고 규정하고, 만주국이 자발적으로 생긴 나라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 보고서는 만주에서의 일본의 군사행동이 자위를 위한 방어 행동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고,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국제연맹이 할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2차 대전 후에 탄생한 국제연합(UN)은 군사력을 동원해 침략행위를 저지할수 있었지만 1차 대전의 산물인 국제연맹은 그럴 능력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리튼 보고서만으로도 일본은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적으로 일본은 침략국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전혀 반성할줄 몰랬다. 그들은 오만무례했고, 대응방식은 적반하장식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연맹을 탈퇴해 버렸다.

 

 

<참고자료>

Wikipedia, Chang Hsueh-liang

Wikipedia, Lytton Report

Wikipedia, January 28 incident

Wikipedia, Manchukuo

-현대 중국사(), 이매뉴얼 C.Y., 까치, 2013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오카베 마키오, 어문학사, 2009년 번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