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⑦…왕징웨이의 반역
중일전쟁⑦…왕징웨이의 반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11.29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군, 장제스의 정적 앞세워 괴뢰정부 수립…이용만 하다가 버려

 

일본이 조선을 직접통치한 것과 달리, 중국 점령지에서는 괴뢰정권을 수립해 간접통치를 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만주국에선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데려와 황제로 등극시켰고, 내몽골에선 칭기스칸의 후손 데므치그돈로브(덕왕)을 앞세워 괴뢰정부 몽장국을 수립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점령지 화북지역에 왕커민(王克敏), 화중지역에 량훙즈(梁鴻志)를 앞세워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두 괴뢰의 수반은 중국인들에게 명망이 높지 않았다. 일본은 중국 본토를 통치할 중량감 있는 얼굴마담을 필요로 했다.

 

왕징웨이(汪精衞, 1883~1944)는 쑨원과 함께 동맹회를 조직하고 활동한 혁명 초기의 멤버로, 쑨원의 후계자로 여겨졌다. 1925년 쑨원이 사망하자 국민당 수뇌가 되었으나 군부를 쥐고 있는 장제스의 정변으로 후선으로 밀려났다. 그는 국공합작을 지지하는 국민당내 좌파를 이끌며, 공산당을 싫어하는 장제스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북벌 성공후 반장제스 연합에 수장 역할을 했고, 장제스가 중원대전에서 반대파 군벌들을 제거한 이후 고개를 숙이고 국민당내 원로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는 좌와 우를 오락가락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주화론을 폈다. 당시 국민당 내에는 주화론자들이 소수 있었지만, 장제스의 주전론에 밀려 비밀리에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였다. 이들은 목소리를 낮췄다는 뜻에서 저조구락부(低潮俱樂部)를 결성했는데, 왕징웨이를 비롯해 저우포하이(周佛海), 가오쭝우(高宗武), 메이스핑(梅思平)이 이 파벌에 가담했다.

평화주의자들의 생각은 이랬다. “중국의 국력은 약하다. 전쟁을 장기화하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결과를 예측할수 없는 장기전에 매달리는 것보다 일본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신속하게 평화협상을 체결하는 것이 나을수 있다.”

왕징웨이는 속으론 일본과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장제스의 치하에서 감히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 말이 혹여 장제스의 비밀경찰 책임자 다이리(戴笠)의 귀에 들어가면 매국노로 몰릴 판이었다.

 

왕징웨이(왼쪽)와 장제스(오른쪽) /위키피디아
왕징웨이(왼쪽)와 장제스(오른쪽) /위키피디아

 

일본군이 우한을 함락한 직후인 1938113일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총리는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일본이 중국과 동등한 지위로 싸우자며 아시아의 신질서를 주창했다. 그가 앞서 그해 1월에 장제스의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에서 크게 후퇴한 것처럼 보였다. 고노에의 발언은 장제스 이외의 중국정부와 상대하겠다는 말이었다.

왕징웨이는 일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메이스핑을 상하이로 보냈다. 메이스핑은 가오쭝주의 중재로 상하이에서 일본군 정치장교와 일본인 기업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중국을 나름 이해하고, 중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던 일본인들이었다.

상하이에서 메이스핑은 일본 장교들과 대강의 협상을 벌였다. 협의한 내용은 평화와 질서가 회복된 후 2년 내에 일본군이 중국에서 철수한다, 중국에서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들이었다. 이에 일본측은 반대급부로, “왕징웨이가 새 정부의 수반이 되어야 하며, 새 정부가 중국 전역을 통치권으로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일본의 속셈은 왕징웨이 정권을 앞세워 장제스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인들은 전쟁에 대한 염증이 커지고 있었고, 국민군이 후퇴하면서 제방을 붕괴시키고, 도시에 불을 지른 일들에 농민들의 반발울 사고 있었다. 일본 군부 일각에서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잘 생기고 핸섬한 왕징웨이를 앞세워 평화를 내걸면, 중국인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왕징웨이 괴뢰국 /위키피디아
왕징웨이 괴뢰국 /위키피디아

 

메이스핑은 중재안을 들고 충칭으로 건너와 왕징웨이에게 보고했다. 1126일 왕징웨이 저택에서 열린 비밀회의에는 저우포하이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충칭을 탈출해 상하이에서 집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왕징웨이와 저우포하이는 일단 군벌이 지배하는 윈난성 쿤밍(昆明)에서 만나 프랑스령 베트남으로 건너간 다음 영국령 홍콩을 거쳐 그 해말에 상하이로 들어갔다. 왕징웨이가 상하이에 도착하기 앞서 중국언론들은 그의 탈출을 보도하면서 매국적 행위라며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그러면 왕징웨이는 왜 조국을 배반하고 일본에 붙었을까. 그는 장제스의 최대정적이었다. 정적이라고 해서 나라를 팔아먹을순 없다. 왕징웨이는 이 문제로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야 하느냐는 가책으로, 망명을 결심하는데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변절 이유는 중국이 전쟁에서 이길수 없다는 패배주의였다. 이길수 없는 전쟁에서 협상을 통해 최대한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수십만, 수백만명의 국민과 병사가 죽어가는데도 항전을 외치는 것은 자살행위이며, 누군가는 피점령지역에서 정부를 맡아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저포우하이가 설명한 교활한 논리다. 장제스가 전쟁에 승리하면 왕징웨이가 얻은 조건은 없었던 게 되지만, 장제스가 패할 경우 왕징웨이의 조건은 얻는 게 있다는 논리다.

충칭의 장제스 정부는 왕징웨이의 반역 행위를 실랄하게 비난하며, 193911일자로 그의 모든 직위를 해임하고 국민당에서 퇴출시켰다.

 

왕징웨이를 지지한다는 구호 /위키피디아
왕징웨이를 지지한다는 구호 /위키피디아

 

일본은 왕징웨이를 바로 괴뢰정부 수반에 올려놓지 않았다. 기존에 화북과 화중 지역에 있는 2개의 괴뢰정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의견이 갈려 있었고, 왕징웨이에 대한 일본 정부내 시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상해로 탈출한 직후 193915일 고노에 내각이 퇴진했고, 신임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 내각은 전임 내각의 계획을 수용하지 않았다. 왕징웨이만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이다.

왕징웨이 국가의 국기 /위키피디아
왕징웨이 국가의 국기 /위키피디아

다급해진 왕징웨이는 6월에 도쿄로 갔다. 그는 애당초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라고 했지만, 군국주의로 치닫던 일본 군부는 그의 말을 들은척도 하지 았다. 2년후 철군하는 내용은 일본군의 반대로 논의대상에서 빠졌고, 일본측은 중화민국 초기의 오색기를 국기로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왕징웨이는 결국 이용만 당했다. 그가 얻은 것은 단 하나였다. 괴뢰국의 기를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를 사용하도록 일본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왕징웨이를 주석으로 하는 괴뢰정부는 그가 탈출한지 13개월째 되는 1940330일에 수립되었다. 왕징웨이의 나라는 국호가 중화민국, 국기는 청천백일기로 장제스의 나라의 그것과 동일했다. 군대도 조직했다. 양측 군대가 전투를 벌일 때 피아를 구별하기 위해 왕징웨이 국기엔 화평(和平)반공(反共)건국(建國)이란 글씨를 새겼다. 그래도 구별이 되지 않아 사람들은 왕징웨이 정권, 괴뢰정권 등으로 불렀다. 또는 수도로 구별해 충칭정부, 난징정부라고도 했다.

일본은 장제스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똑같은 국호에 똑같은 깃발을 쓰는 나라를 만들고 국민당의 거물을 영입했으나, 중국인들은 그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도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정권이 수립되기 직전에 가오쭝우는 반역을 중단하고 충칭으로 돌아가 장제스에게 잘못을 뉘추쳤다. 장제스는 그를 용서하고 미국에 가 살라고 했다. 저우포하이는 장제스의 비밀경찰과 내통하며 살길을 찾았으나, 종전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옥사했다.

왕징웨이는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인 1194411월 골수암으로 사망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쑨원의 곁에 안장되었으나, 종전 후 장제스는 그의 무덤을 폭파하라고 지시했다. 19461, 그의 무덤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다.

왕징웨이가 사망한 후 천궁보(陳公博)2대 주석직을 맡았으나, 일본의 항복선언 직후인 1945816일 해산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Wang Jingwei

Wikipedia, Wang Jingwei regime

-현대 중국사(), 이매뉴얼 C.Y., 까치, 2013

중일전쟁, 래너 미터, 2020. 금항아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