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시기에 장제스 정권은 공산당 근거지인 옌안(延安) 주변에 20개 사단 40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항일 국공합작은 말뿐이었다. 국민당 군대는 공격만 하지 않았을 뿐. 공산군을 서북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 두었다.

미국의 입장에선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결구도가 마땅치 않았다. 수십만의 공산군과 그 곱절의 국민군이 대치한 상태에서 일본과 싸울 중국의 가용병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국공대결을 풀면 수십만명의 여유병력을 대일 전선에 투입할수 있게 된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었다.

장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정부는 공산군을 중원에 풀어 놓으면 그들이 항일 투쟁보다는 소비에트화에 주력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서북 건조지역에 공산군을 가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1944년봄, 일본이 이치고(一號) 작전을 개시하며 중국 내륙 깊숙한 곳으로 공세를 펼치자, 미국은 국공 화해를 들고 나왔다. 장제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루스벨트는 전쟁에 중국군을 이용하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100만명의 미군을 동아시아에 보내 희생시켜야 할 것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전쟁 내내 중국의 두 개 정부를 저울질했다. 공산정부에 화해 제스추어를 보내는가 하면, 국민정부를 압박했다. 장제스의 입장에서 미국이 진정 내 편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1944년 4월 일본군이 중국에 총공세를 펼치자 장제스의 정예부대는 맥없이 무너졌다. 허난 지역을 지키던 장딩원(蔣鼎文)과 탕언보(湯恩伯) 장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후퇴했다. 뤄양(洛陽)이 함락되고, 임시수도 충칭이 위협받았다.

국민당 군대는 인민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지 못했다. 장딩원 장군은 패전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썼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허난성 서부 산악지대 주민들이 아군을 공격해 총과 탄약, 폭탄, 심지어 박격포와 통신장비까지 빼앗았다. 그들은 아군을 포위하고 장교들을 살해했다. 마을 촌장과 보갑(保甲)은 달아났다. 그들은 우리가 저장해둔 곡식을 모조리 약탈했다. 우리 장병들은 먹을 거리가 없게 되었다.”

정부와 국민은 고기와 물의 관계다. 물이 빠져나간 곳에 물고기는 살수 없다. 황허 제방을 터트리고(1938), 대기근(1942)을 방치한 국민정부에 민중이 등을 돌린 것이다.

 

 

국민당 군대가 일본군에 참패를 당하자 옌안 정부는 쾌재를 불렀다. 옌안에 주재하던 소련인 고문 블라디미로프는 이렇게 기록했다. “공산당 지도자는 장제스 군대가 패패했다는 소식에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은 장제스가 패배할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충칭의 국민정부가 중국인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반면에 옌안의 공산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중국주재 미국대사관이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옌안 정부와 접촉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의견은 워싱턴에서 받아들여졌다.

조지프 스틸웰 장군도 공산을 끌어들이자는 의견에 공감했다. 이 고집쟁이 장군은 미국의 군수물자를 통제하며 장제스 정권을 압박했다.

일본군이 뤄양을 점령한 후 후난성 창사(長沙)로 진격했다. 창사는 일본군이 여러차례 공격했지만 중국군의 분투로 지켜낸 곳이다. 이곳이 뚫리면 중국과 베트남을 연결하는 회랑(corridor)이 뚫리게 된다. 주둔 사령관 쉐웨(薛岳) 장군이 장제스와 스틸웰에게 물자 보급을 요청했다. 장제스는 미군의 보급물자를 기대했다. 하지만 스틸웰은 장제스의 요구를 거절했다. 비겁한 행동이다. 스틸웰은 물자를 손에 쥐고 동맹국을 제어하려 한 것이다. 국민군 수만명이 무기와 탄약 부족, 굶주림 속에서 죽어갔고, 6년동안 저항했던 도시는 3주만에 일본군에 함락되었다.

 

 

장제스는 어쩔수 없이 미국에 타협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면 전쟁을 치를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장제스와 스탈린을 설득해 중국에서 국공 화해를 유도할 생각이었다. 루스벨트는 부통령 헨리 월리스(Henry A. Wallace)를 중국에 파견하고, 모스크바 주재 대사를 통해 스탈린에게 중국공산당을 설득해 달라고 훈령을 내렸다.

월리스 부통령은 그해 6월 충칭을 방문해 장제스를 만났다. 그는 장제스가 공산주의에 대한 편집증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고, 미국 대표단이 옌안을 직접 방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탈린과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중국의 공산당이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련도 미국의 국공 화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장제스는 마지못해 미국 사절단이 옌안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1944년 7월 22일 미국 육군 시찰단이 군용기를 타고 옌안을 방문했다. 이 방문자들은 딕시 사절단(Dixie Mission)으로 알려져 있다.

마오쩌둥은 딕시 사절단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공산당은 미국 방문자들을 친절하게 접대했다. 8월 7일에 또다른 사절단이 옌안을 방문했다. 공산주의 중국을 목격한 미국인들은 그들의 군대를 미국식으로 훈련하고 장비를 주면 훌륭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으로 판단했다.

워싱턴의 국무부와 국방부는 중국 국민군과 공산군의 지휘권을 스틸웰에게 맡기는 방안을 루스벨트에게 건의했다. 루스벨트도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1944년 9월 19일 스틸웰은 대통령의 서신을 들고 장제스를 찾아갔다. 루스벨트는 장제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중국에 닥쳐온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 ”스틸웰 장군이 어떠한 제한 없이 중국 군대를 지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중국군에 대한 무제한의 지휘권을 스틸웰에게 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악화하는 군사 정세에 대한 책임을 장제스가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제스는 이 편지를 읽고 쇼크를 먹었다. 미국 특사로 온 패트릭 헐리(Patrick Hurley)는 대통령의 서신을 요약하거나 중국어로 번역해 과격한 어투를 다듬으려고 했지만, 스틸웰은 개선장군이 된양 편지를 그대로 장제스에게 건넨 것이다. 루스벨트의 서신은 스틸웰의 친구이자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조지 마샬이 썼다고 한다.

장제스는 루스벨트가 자신을 끌어내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미국의 요구에 따라 군사지휘권을 넘겨주기로 하고, 서로의 권한을 협의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상대 국가의 대통령이 명령하듯 통보를 한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장제스는 군통수권자의 자리를 사퇴할 생각도 했다. 쑨원의 아들 쑨커(孫科)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장제스를 대체할 정치인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제스는 오랫동안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온 인물이다. 제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 한들 4대 강국의 수반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퇴가 중국에 역효과를 몰고올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사퇴 생각을 접고, 스틸웰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장제스는 루스벨트에게 답신을 보냈다. 골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국군의 일체 지휘권을 미국 장군에게 넘기겠다, 다만 스틸웰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는 루스벨트에게 스틸웰을 소환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한마디로 루스벨트에게 자신과 스틸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루스벨트는 3연임을 위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미국에서 장제스는 부패한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런 인물의 요구로 미국의 장군을 자른다는 것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우방의 국가원수를 선택했다.

루스벨트는 그해 10월 스틸웰을 소환하고, 그 자리에 앨버트 웨드마이어(Albert Wedemeyer) 중장을 임명했다. 웨드마이어는 스틸웰처럼 고집스럽고 독단적이지 않았다. 그는 장제스의 의견을 존중했고 타협적이었다. 장제스도 그를 인정하고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1944년말 일본이 이치고 작전을 중단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태평양 쪽에서 조여오면서 일본이 중국 주둔군을 태평양 도서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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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Operation Ichi-Go

Wikipedia, Joseph Stilwell

근-현대 중국사(하), 이매뉴얼 C.Y.쉬, 까치, 2013년

중일전쟁, 래너 미터, 2020년. 금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