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종이 왜 중앙박물관에 있을까
보신각 종이 왜 중앙박물관에 있을까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12.0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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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새 종 만들어 종각에 걸고 조선시대 옛종을 박물관에 보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에 종각이 있다. 우리나라 보물 2호 옛 보신각 동종이다. 보신각 동종은 종로에 있어야 할 터인데 왜 여기에 와 있을까.

보신각 동종은 조선 세조 14(1468) 만들어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이 종은 새벽 4시에 33번의 파루(罷漏), 오후 10시에 28번의 인정(人定)을 을려 한양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데 사용되었다.

고종 32(1895) 종루에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정오와 자정에 타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9084월부터 종 대신에 포()를 쏘는 것으로 대체됐다가, 일제강점기에 타종이 중단되었다.

해방과 6·25를 거쳐 1953년부터 제야의 종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후 국민의 성금으로 새로운 종이 주조되어 1985814일 보신각에 걸렸고, 다음날인 815일 새 종이 광복절에 처음 타종되었다.

새 종이 보신각에 걸리면서 옛 종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로 이전하게 되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옛 보신각 동종 /박차영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옛 보신각 동종 /박차영

 

옛 보신각 동종은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특히 종신 몸체 상면에는 보살입상이 새겨졌던 흔적을 볼 수 있어 사찰의 종을 옮긴 후 인위적으로 이 부분을 삭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종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옛 보신각 동종 /박차영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옛 보신각 동종 /박차영

 

현재 종로2가 종각에 걸려 있는 종은 경주 보신각종(일명 에밀레종)의 복제품으로, 1985년 이후 옛 종을 대신해 매년 1231일 자정에 제야의 종을 울리고 있다.

 
1981년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위키백과
1981년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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