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릉 주변서 고려 시대 향로 등 출토
강화 석릉 주변서 고려 시대 향로 등 출토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0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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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석릉(碩陵)은 고려 21대 희종(熙宗, 1181~1237, 재위 1204~1211)의 능이다. 희종은 군권을 잡고 있는 최충헌(崔忠獻)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폐위되어 강화도로 쫓겨났다. 그후 개경에 다시 돌아옸지만, 복위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최충헌의 아들 최우(崔瑀)에 의해 다시 강화도로 쫓겨났다가 그곳에서 승하했다.

 

강화도 석릉 전경 /문화재청
강화도 석릉 전경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사적 제369호인 강화 석릉의 주변 고분군에 대해 2차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실시하고 있는 이번 조사는 석릉 동쪽에 인접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고분 9기를 대상으로 했다.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무덤(할석조 석곽묘)과 판돌을 이용한 돌덧널무덤(판석조 석곽묘), 널무덤(토광묘) 등 비교적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묘역은 여러 단의 석축을 이용하여 구획하였고 봉분 뒤쪽 주변에는 낮은 담인 곡장’(曲墻, 무덤 주위의 담)을 두른 특징이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당시 상장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유물인 지진구(地鎭具)가 나왔다. 지진구는 건물을 짓기 전 땅의 기()를 진압하여 안전을 빌기 위해 봉안한 상징물로, 석릉 주변 고분군에서 나온 것은 무덤을 쌓아 올릴 때 제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진구 형태로는 도기호(항아리)와 동물모양의 철제 향로 다리 등이 발견되었다.

40호 돌덧널무덤 후면 쪽에 석수(石獸)로 양과 호랑이 모양의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각각 1구씩 세워두었으며 인근 52호 돌덧널무덤 묘역에서는 사람모양의 석인상이 확인되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강도 시기 고분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석릉 주변 고분군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1차 조사에서는 다양한 묘제의 고분 6기를 확인하고 도기병, 작은 유병(油甁), 중국 송나라(북송)의 화폐인 북송전(北宋錢) 등을 수습한 바 있다.

강화는 한강 이남의 고려 도읍지로 1232(고종 19) 몽골 침략에 맞서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후 1270(원종 11)까지 39년간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이 시기를 강도(江都) 시대라 한다.

 

52호 돌덧널무덤에서 나온 지진구(도기호와 철제 동물형 향로) /문화재청
52호 돌덧널무덤에서 나온 지진구(도기호와 철제 동물형 향로)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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