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⑬…뜻밖의 승전
중일전쟁⑬…뜻밖의 승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12.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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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내 이권 주고 소련군 참전 유도…소련, 중국에 개입

 

19436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유럽 전선의 승리는 눈에 보였다. 이에 비해 태평양 전선에선 일본군이 완강하게 저항했고, 미군 참모본부도 일본군을 과대평가했다. 1945년초, 미군 수뇌부는 일본군을 격퇴하는데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보고서를 백악관에 올렸다. 미국은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 무기의 효과는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4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지병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는 초조해 했고,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194524일 소련 흑해연안 휴양도시 얄타에서 미··3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얄타회담은 전후 유럽과 아시아의 재편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독일의 붕괴는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일본에 대한 승리는 1947년 중반 이전에는 어렵다는 게 연합군의 분석이었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련을 끌어들여야 했다. 필리핀을 점령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소련군 60개 사단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소련군의 대일전쟁 참전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소련 인민들에게 왜 일본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납득시켜야 한다며 생색을 냈다. 소련의 유럽전쟁 참전은 독일이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대응한 것인데, 아시아에선 일본이 공격행위를 하지 않은데다 일·소 간에는 중립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스탈린은 참전 조건을 덕지덕지 내걸었다. 그 조건은 쿠릴열도와 남사할린의 영유권 만주의 철도 이용권과 뤼순(旅順)과 다롄(大連)의 항만 이용권 외몽골의 현상유지(독립) 등이다. 소련은 40년전 러일전쟁에 패전하면서 러시아가 일본에 빼앗긴 권리를 모두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외몽골은 청조 이래 중국 영토였고, 만주 이권은 제정 러시아의 수탈행위였다. 이런 조건은 중국의 주권을 심대하게 침해했다.

스탈린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유럽전쟁이 끝난후 90일 이내에 대일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탈린은 반대급부로 만주에서 중국의 주권을 존중해 주고, 장제스가 중국 유일의 지도자로 인정한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이 정도면 장제스가 만족할 것으로 보고 선뜻 스탈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주권이 거래된 것이다.

영국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은 소련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준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윈스턴 처칠 총리는 이든의 건의를 무시하고 루스벨트의 판단을 지지했다.

·소 양국은 이 내용을 공식기록에 담지 않고, 부록에 밀약 형태로 체결했다. 장제스는 미·소 지도자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만주의 권리를 양도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오쩌둥도 공산주의 원조국이 중국공산당을 인정치 않은 배신행위를 뒤늦게 알았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 참가한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 /위키피디아
1945년 2월 얄타회담에 참가한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 /위키피디아

 

얄타에서 중국에 관해 비밀협약이 맺어졌다는 소문이 났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주미 중국대사 웨이다오밍(魏道明)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민주와 관련한 비밀협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소식을 듣고 장제스는 격분했다. 자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강대국 간에 이권분배가 이뤄진 것이다. 마오쩌둥은 스탈린이 자신을 속인 것에 서운해 했지만, 소련군의 참전이 세력균형을 공산당에 유리하게 이끌 것으로 예상했다.

주중 미국대사 패트릭 헐리(Patrick Hurley)3월에 워싱턴으로 돌아가 대통령에게 밀약 내용을 추궁하려고 별렀다. 루스벨트는 악수를 한 후 밀약 내용을 대사에게 보여주었다. 헐리는 대통령에게 따지지 못했다. 루스벨트의 손은 바짝 말라 있었고,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412일 루스벨트는 세상을 떠났고, 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이 얄타 회담 내용을 모른채 대통령에 취임했다.

430일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고 58일 독일은 연합군에 항복했다. 유럽 전쟁은 종식되었고, 이제 태평양 전쟁만 남았다. 얄타 협정에 따라 소련군은 3개월후인 89일 참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1일의 태평양 전쟁 현황 /위키피디아
1945년 8월 1일의 태평양 전쟁 현황 /위키피디아

 

장제스는 스탈린을 믿지 않았다. 그는 소련군이 참전하기 전에 스탈린의 다짐을 받아두기 위해 7월초에 장남 장징궈(蔣經國)와 처남 쑹쯔원(宋子文)을 모스크바에 보냈다. 스탈린은 전쟁이 끝나도 마오쩌둥이 아니라 장제스를 중국의 통치자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에 얄타 밀약의 특권들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장제스의 아들과 처남에게 조건만 제시한 채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출국했다.

717일 베를린 외곽 포츠담에 3국 정상이 모였다. 미국에선 트루먼이 왔고, 영국에선 선거에서 패배한 처칠과 차기 총리에 오를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가 함께 참석했다. 바로 그날 미국 서부 사막에서 원자폭탄 핵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트루먼에 전달되었다. 트루먼은 영국과 소련 정상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처칠은 더 이상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이 필요없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군부는 군대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소련군의 참전을 희망했고, 트루먼도 동의했다.

726일 포츠담 선언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신속하고 철저한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는 이 경고를 무시했다.

86B-29 미군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6만여명이 사망했다. 트루먼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볼수 없었던 파괴의 비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은 마지막으로 소련에 기댔다. 88일 모스크바 주재 일본대사 사토 나오다케(佐藤尚武)는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무장관을 찾아가 미국과의 협상을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몰로토프는 일본 대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 일본에 대항해 전쟁을 하라는 연합국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89일부터 일본과 전쟁상태에 들어갈 것이다.”

89일 새벽 1, 소련군이 일제히 만주로 진격했다. 같은날 미국의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져 8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게 되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조건부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1945년 8월, 중국군에 항복하는 일본군 /위키피디아
1945년 8월, 중국군에 항복하는 일본군 /위키피디아

 

810일 스탈린은 쑹쯔원에게 동맹조약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소련군은 이미 만주에 진입했고, 이대로 가다간 만주가 공산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스탈린은 포츠담 회담 직전에 장제스를 중국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장제스는 스탈린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약을 체결해들 필요는 있었다.

814일 중소 조약이 체결되었다. 내용인즉, 소련은 장제스 정부를 도의적, 군사적, 물질적으로 지원한다, 만주에서 중국의 주권을 존중한다, 일본이 패전한 후 3주 내에 소련군을 철수하기 시작해 3개월 내에 완전 철군한다, 신장(新疆) 문제에 소련이 개입하지 않는다, 중국은 외몽골의 주권을 인정한다, 만주의 중동철도와 남만주 철도를 30년간 공동관리한다,다렌은 30년간 자유항으로, 뤼순항은 중소 공동의 해군기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중소조약이 체결된 그날, 일본 히로히토 천황은 전쟁 종식을 알리는 조서를 발표했고, 다음날인 815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방송을 통해 선언했다. 장제스는 그 방송을 들었다. 종전은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뜻밖에 중국은 승전국이 되었다. 지긋지긋하던 8년간의 전쟁이 끝났고, 만주국과 여러 괴뢰국도 동시에 해체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Soviet invasion of Manchuria

Wikipedia, Yalta Conference

Wikipedia, Potsdam Conference

-현대 중국사(), 이매뉴얼 C.Y., 까치, 2013

중일전쟁, 래너 미터, 2020. 금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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