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共 건국③…티베트 독립 짓밟다
中共 건국③…티베트 독립 짓밟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12.15 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공군, 청조의 대등한 관계 무시하고 티베트 침공…자치구로 격하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하이라이트는 조선의 사신이 청의 황제와 티베트 불교의 수장 판첸라마를 만나는 대목이다.

1780년 음력 811일 조선 사신단이 견륭제를 알현했다. 그런데 뜻밖에 건륭제는 조선 사신단에게 곧장 타시룬포(札什倫布)로 가서 액이덕니(額爾德尼)를 만나라고 지시했다. 타시룬포는 판첸라마가 살고 있는 사찰이고, 액이덕니는 판첸라마의 호였다.

건륭제는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룩한 황제다. 그는 동쪽으로 사할린섬에서 서쪽 신장(新疆), 북쪽 외몽골, 남쪽으로 베트남, 네팔, 타이완, 미얀마까지 평정했다. 그런 건륭제가 조선의 사신을 판첸라마에게 인사시키려 한 것은 동방의 예의지국도 라마교에 경배를 한다는 사실을 티베트족과 몽골족에게 과시하려는 속셈이었다.

청의 황제는 라마교 수장을 대등한 위치에서 대우했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하지 않았다.

 

1950년 중공군이 티베트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50년 중공군이 티베트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49101일 마오쩌둥은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면서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이며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겠다고 말했다. 티베트 정부는 마오쩌둥의 발언을 곧바로 반박했다.

티베트와 중국은 서로 독립된 관계이며, 티베트는 어떠한 외세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다. 티베트에는 제국주의 군대도 없고, 외국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제국주의에서 해방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이로부터 중국의 신정권과 티베트 권력 사이에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인지, 독립국인지에 대한 논란은 청조 이전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의 역대 한족정권은 티베트를 복속시키지 못했다. 당나라 때엔 오히려 수도 장안이 티베트 제국인 토번(吐蕃)에 점령되기도 했다. 몽골족의 원나라와 만주족의 청나라가 티베트를 점령했는데, 두 정권의 황제는 티베트 불교 수장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러한 정치적 결합을 한자로 단월(檀越)관계라고 하고, 티베트어로 최왼(cho-yon)관계라 했다.

원나라는 티베트에 다루가치를 파견했지만 다루가치는 내정간섭을 하지 않고,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만 했다. 청나라의 강희제는 1720년 티베트를 점령했다. 청은 원나라의 방식을 이어갔다. 청은 주장대신(駐藏大臣)을 상주시켰지만 티베트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티베트는 달라이라마가 종교지도자로 존재하고, 판첸라마가 통치했으며, 청에 조공하거나 책봉을 받지 않았다. 청도 티베트에 세금을 걷지 않았다. 황제와 달라이라마의 관계는 유럽의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비유할수도 있을 것이다.

원나라와 청나라는 티베트에 군대는 주둔시켰다. 외적이 침입할 경우 방어해준다는 명분이었다. 이 사실이 티베트를 속국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청나라가 라싸에 군대를 주둔했기 때문에 티베트는 중국령이라는 것이다.

1911년 신해혁명 때 티베트 정부는 독립을 선언했다. 달라이라마는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들을 티베트에서 몰아냈다. 그후 군벌시대, 국공내란,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티베트는 사실상 중국에서 독립했고, 영국은 티베트를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중공군의 티베트 공격로 /위키피디아
중공군의 티베트 공격로 /위키피디아

 

1949년 중공 정권이 오랜 내란을 종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자, 티베트의 독립성 여부가 주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마오쩌둥은 단호하게 티베트를 중국 영토라고 규정했고, 티베트는 독립국이라고 주장했다.

195011일 중공은 베이징의 라디오방송을 통해 올해 중에 하이난과 타이완, 티베트를 해방한다고 선언했다. 라싸에 대한 공격은 쓰촨에 주둔하는 덩샤오핑(鄧小平)과 류보청(劉伯承)에게 맡겨졌다.

양측 사이에 대화는 있었다. 그 대화는 협상이 아니라 통보였다.

195096일 인도 델리에서 티베트와 중국 대표가 만났다. 중국 대표는 세가지를 통보했다. 그 세가지는 티베트는 중국 영토다, 티베트의 안보는 중국군이 맡는다, 티베트의 외교는 중국이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주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다. 중국 대표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통보했다.

107일 장궈화(張國華)가 지휘하는 인민해방군 제18군이 진사강(金沙江)을 건너 티베트 영내로 진입했다. 티베트 대신들은 중국이 제시한 세가지 조건을 검토했다. 대신들은 달라이라마의 지위를 보전해 준다면 첫 번째 조건을 받아들일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외교권과 군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주권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라싸 정권은 중국측 제안을 거부하기로 해고, 이를 중국에 통보했다.

 

중공대표와 티베트 대표가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경축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중공대표와 티베트 대표가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경축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이젠 전쟁밖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 1019일 중공군은 티베트의 동북 국경 창두(昌都)에 공격했다. 티베트 지도자들은 중국과 전쟁 불사를 주장하면서도 아무런 군사적 대비를 하지 않았다. 군사력도 형편없었다. 군대제도는 청나라때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고, 무기도 재래식 무기에 소총 몇자루였다. 전체 병력은 도합 1만명이 되지 않았고, 일부 승병과 민병대가 조직되어 있었다. 군부대에 가족들이 딸려 있었기 때문에 이동이 매우 느렸다. 전투는 거의 치러보지 못한 군대였다.

이에 비해 중공군은 중일전쟁과 내전을 경험한 전투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의 적은 테베트 군이 아니라, 그곳의 기후와 지형이었다.

이런 군사력으로 거대 중국에 도전한다는 것은 용감한 것도, 무모한 것도 아니었다. 무지였다. 창두 총독은 아페 아왕 지그메(阿沛·阿旺晋美)였다. 그는 적군이 바로 앞에 닥쳤는데도 태평하게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졌다. 총독은 가족과 측근을 데리고 가장 먼저 도망쳤다. 아페 아왕 지그메는 곧바로 중공군에 체포되어 부역자로 변신했다. 전투는 1019일 하루로 끝났다. 중국군 사상자는 114, 티베트군 사상자는 3,000명에 달했다. 창두는 중공군에 넘어갔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에 침묵을 지켰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세계의 관심은 한국전에 쏠려 있었다. 유일하게 대응한 나라는 인도였다. 인도 부총리 사르다르 파텔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 뿐이었다.

중공은 더 이상 진격을 하지 않고 지그메를 라싸에 보내 다시 세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본때를 한번 보여주었으니, 거부하면 또 때리겠다는 것이었다. 지그메는 라싸의 정치인들을 설득하는데 앞장섰다. 대부분의 고관대작들은 달라이라마를 배신하고 중국에 붙었다. 티베트의 독립을 중국에 바친 사람들은 라싸의 고위층들이었다.

 

1951년 라싸 포탈라궁 앞을 행군하는 중국군 /위키피디아
1951년 라싸 포탈라궁 앞을 행군하는 중국군 /위키피디아

 

1951523일 베이징에서 중국 부주석 주더(朱德)와 티베트 대표단 사이에 17개조 협정에 대한 조인식이 열렸다. 티베트의 주권을 내주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티베트는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시짱(西藏) 자치구로 재편되었다.

525일 마오쩌둥은 제18군을 라싸로 진입할 것을 명령했다. 장궈화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라싸를 점령했다. 티베트 주민들은 중국군의 행진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고, 티베트 고위층들은 중국군을 환영했다.

1959년 중국의 합병에 반대하는 티베트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중국이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달라이라마와 많은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망명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nnexation of Tibet by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ikipedia, Patron and priest relationship

Wikipedia, Battle of Chamdo

Wikipedia, History of Tibet (1950presen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