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는 고도의 철기문화 향유했다
아라가야는 고도의 철기문화 향유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04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원에서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 확인…쇠끌, 모루, 망치등 단야 도구 확인

 

가야인들은 죽어서 무덤에 내세(來世)의 세상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가야인들의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을 보면, 살아 생전에 귀중한 물건을 무덤에 넣어 죽은 후에도 부유하고 고귀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이 거제-마산간 국도건설 현장을 발굴해 보았더니 무덤이 무려 670개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왔다. 아마도 공동묘지였던 것 같다. 무덤을 파헤쳐 보니, 배와 오리 모양의 토기와 갑옷과 투구, 말갖춤(말을 부리는 도구) 등 유물 1만점이 쏟아져 나왔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번지 발굴현장 /문화재청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번지 발굴현장 /문화재청

 

발굴조사에서 청동기 시대의 수혈주거지 등 37, 가야 시기의 수혈주거지 등 15, 아라가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 622, 돌덧널무덤 35, 널무덤 17, 기타유구 200여기 등이 확인되었다.

나란히 배치된 대형고분 839호와 840호는 나란히 배치되어 부부묘로 추정된다. 이 중 840호 고분은 길이 860cm, 너비 454m, 깊이 124cm 규모로,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주로 무구류와 마구류 등이 나왔다.

그 옆의 839호 고분은 나무덧널 무덤으로, 길이 772cm, 너비 396cm인데, 머리 쪽에 모양이 세련되고 창이 정교하게 뚫려 있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 등이 나왔다. 출토유물의 제작기술과 유구의 규모 등으로 볼 때, 840호의 주인은 남자, 839호는 여자로 보이며, 당시 최고층의 부부묘로 추정된다.

 

창원 현동 유적에서 나온 토기유물 일괄 /문화재청
창원 현동 유적에서 나온 토기유물 일괄 /문화재청

 

110개월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토기류로는 아라가야 계통의 통형굽다리접시( 筒形高杯), 불꽃무늬투창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 기하문부호가 새겨진 짧은목항아리(短頸壺), 화로모양그릇받침(爐形器臺), 컵모양토기가 나왔다.

 

위는 984호 무덤에서 나온 투구(冑), 아래는 963호 무덤에서 나온 목가리개(頸甲) /문화재청
위는 984호 무덤에서 나온 투구(冑), 아래는 963호 무덤에서 나온 목가리개(頸甲) /문화재청

 

또 덩이쇠(鐵鋌), 모루, 쇠끌(鐵鑿), 망치 등 단야 도구(鍛冶具)와 철찌꺼기(철재, 鐵滓), 미늘갑옷(찰갑, 札甲), 복발형투구(복발형주, 伏鉢形冑), 목가리개(경갑, 頸甲), 고리자루칼(환두대도, 環頭大刀), 쇠창, 쇠화살촉, 유리구슬, 세환이식(細環耳飾, 귓불에 붙이는 장신구) 등 철기류가 나와 이 곳에 철()의 문화가 발달했음을 보여주었다.

유물 중에서는 찰갑, 판갑, 투구 등 무구와 고리자루칼, 철촉 등 무기류와 철정, 철착, 철부 등 공구류도 다량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배를 만들 때 최적화된 도구인 어깨가 넓은 쇠도끼(유건철부, 有肩鐵斧) 수십 점과 100여 점의 끌(鐵鑿)도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무덤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덩이쇠는 김해지역 출토품보다 더 가볍고, 작게 제작된 특징이 있다.

 

387호 무덤에서 나온 배모양토기(舟形土器) 모습 /문화재청
387호 무덤에서 나온 배모양토기(舟形土器) 모습 /문화재청

 

배모양토기(舟形土器)387호 나무덧널무덤의 피장자 머리쪽의 덩이쇠다발 윗면에서 한쪽이 기운상태로 확인되었다. 길이 29.2cm, 높이 18.3cm의 크기로 배면에 조밀한 톱니무늬가 새겨져 있다. 기존에 나왔던 쪽배(獨舟木)형 배모양토기와 달리 판재를 조립한 준구조선(準構造船) 형태다. 준구조선은 통나무배에서 구조선(構造船)으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의 선박 형태를 말한다.

최근 아라가야 지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주형토기의 배 모양이 준구조선 형태의 배으로, 흘수(吃水, 물에 잠긴 곳) 부분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어 육지 인근의 좁은 바다를 다니던 내해용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비해 이번에 발견된 주형토기는 여타의 한선(韓船)이나 왜선(倭船)과 같이 노를 고정하는 고리가 없는 범선(돛단배)으로, 국제항로를 다니던 외항선용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배모양토기는 뛰어난 예술품이자 당시 사람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해 주는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335호 나무덧널무덤에서 나온 오리모양토기(오리 몸에 낙타 얼굴 형태) /문화재청
335호 나무덧널무덤에서 나온 오리모양토기(오리 몸에 낙타 얼굴 형태) /문화재청

 

또한, 335호 나무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오리몸체에 낙타머리가 결합되어진 토기는 원삼국 시대부터 많이 제작된 오리모양토기와 달리 오리(조류)와 낙타(동물)가 결합한 형태로는 처음 확인된 토기로서, 당시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창원 현동유적 유구 배치도 /문화재청
창원 현동유적 유구 배치도 /문화재청

 

발굴팀은 이곳 창원 현동에는 아라가야의 문화상을 공유하면서, 제철을 생산 기반으로 한 대외 공급 역할을 맡은 해상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역사적으로 창원지역을 포함한 당시의 진·변한 지역에서는 좋은 품질의 철을 생산해 낙랑, 중국, 일본 등지로 공급했는데, 현재의 마산, 김해의 항구들이 그 창구였다. 이번 발굴은 단편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야사 연구에 또 하나의 실증적인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