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불전쟁 촉발한 엠스 전보사건…여론전의 시초
보불전쟁 촉발한 엠스 전보사건…여론전의 시초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12.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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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외교관 전보를 각색해 프랑스 국민감정 자극…전쟁 유도

 

1870~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은 두 나라의 국민감정이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그 국민감정에 불을 지핀 사람이 프로이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국민의 감정을 자극해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 전쟁을 걸어오도록 유도했다.

 

상황은 스페인에서 시작된다. 1868년 스페인에 혁명이 일어나 국왕인 이사벨 2세가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사벨 2세는 아들 알폰소 12세에게 양위했지만, 스페인의 혁명정부는 프로이센 호엔쫄레른가의 레오폴드(Leopold) 공작을 새 국왕으로 추대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호엔쫄레른가가 동서 양쪽에서 협공하는 것을 우려해 프로이센 왕가에 스페인 국왕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나폴레옹 3세의 요구를 받아들여 레오폴트의 스페인 국왕 포기를 약속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 국왕을 외교로 꺾은 것에 우쭐해 하며 거만해 졌다. 그는 한번더 밀어붙이기를, 앞으로 다시는 스페인 국왕 자리를 넘보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빌헬름 1세에게 요구했다.

 

1971년 1월, 베르사이유궁에서 열린 독일제국 선포식 /위키피디아
1971년 1월, 베르사이유궁에서 열린 독일제국 선포식 /위키피디아

 

1870713일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뱅상 베네데티(Vincent Benedetti) 백작은 본국 외무장관의 하명을 받고, 독일 서부의 휴양도시 바트 엠스(Bad Ems)에서 휴식을 취하던 빌헬름 1세를 찾아갔다. 빌헬름은 산책을 하던 중에 대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산책로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시종들은 약간 떨어져 있었다. 빌헬름 1세는 대사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금 속박하지 말라며 정중하고 완곡하게 프랑스 황제의 요구를 거절했다. 둘은 냉랭하게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나폴레옹 3세는 삼촌이 황제이던 60년전의 프랑스로 착각한 것이다. 프로이센은 4년전인 1866년에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북독일연방의 맹주로 부상해 있었다. 하지만 북독일연방의 인구는 2,400만명, 프랑스 인구는 3,800만명이었고, 프랑스의 공업과 경제력이 북독일에 앞서 있었다. 여전히 열세였던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비스마르크 /위키피디아
비스마르크 /위키피디아

 

국왕은 프랑스 대사의 접견 소식을 비스마르크에 알리라고 지시했다. 엠스에는 연방 외교부에파견된 관리가 국왕 곁을 지키고 있었다. 엠스에 있던 외교부 직원 하인리히 아베켄(Heinrich Abeken)은 프랑스 대사의 알현 소식을 무미건조한 문체로 정리해 비스마르크에게 전보로 보냈다.

비스마르크는 이 전보를 받고 이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젊은 시절에 셰익스피어와 바이런에 심취한 문학청년으로, 문장력이 뛰어났다. 그는 아베켄이 보낸 전보 내용에 초를 쳤다.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 국왕에게 치욕적인 요구를 했고, 국왕이 격분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문장을 작성해 각국 정부에 배포했다.

비스마르크는 자료를 넘긴 후 동료에게 프랑스놈들, 머리 끝까지 화가 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무렵, 이미 뉴스의 대중화 시대가 열려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 신문들은 비스마르크가 작성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일제히 보도를 내보냈다. 프랑스인들은 조그마한 프로이센 국왕이 대프랑스 제국의 황제를 거역했다고 분노했고, 독일인들은 프랑스가 대독일 국왕을 압박했다고 화를 냈다.

상황은 비스마르크가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프랑스 외교장관은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라며 전쟁을 예감했다. 황제파 정치인 아돌프 티에르는 프랑스 외교의 승리라며 굳이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가 군중들에게 반역자로 몰려 곤욕을 당했다. 2만여명의 파리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와 전쟁을 요구했다.

715일 프랑스 정부는 군사 동원령을 내렸고, 북독일연방도 곧이어 동원령이 내려졌다. 719일 프랑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독일연방에 전쟁을 선포했다.

 

비스마르크는 속전속결로 전투를 이끌었다. 개전한지 두달되 되지 않은 92일 세당 전투에서 독일군은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항복을 받았고, 이어 저항하는 프랑스 도시를 하나씩 점령했다. 독일군은 9월 말에 스트라스부르, 10월 말에는 메츠 요새를 함락했다. 이듬해 118일 빌헬름 1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성립을 선포하며 황제대관식을 열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황제를 끌어내리고, 적국 심장부에서 프로이센 국왕을 황제로 옹립하는 대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엠스 전보사건 기념비 /위키피디아
엠스 전보사건 기념비 /위키피디아

 


<참고자료>

Wikipedia, Ems Dispatch

Wikipedia, Franco-Prussi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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