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에 비잔틴 양식의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아현동에 비잔틴 양식의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1.04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한말에 들어와 120년 역사…한국전 참전 그리스 사제에서 다시 이어져

 

서울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에서 공덕역 쪽으로 왼쪽 인도를 따라 5분쯤 걸어가면 돔 형태의 교회를 만나게 된다. 이 교회가 한국정교회 대교구청이다.

정교회의 뿌리는 1천년이나 된다. 유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였지만, 1054년 로마교황청과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서로 파문을 하면서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로 분열했다. 분열의 이유는 신학적 차이보다 정치적 갈등이 컸다. 1204년의 제4차 십자군 원정 때에 교황청 소속 군대가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불지르고 정교회 성당의 성상과 성물을 약탈하면서 두 교회의 골은 더 깊이 패였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 치하로 넘어가면서 정교회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족의 교회로 전통을 이어갔다. 로마 교회는 오늘날의 카톨릭, 동방교회가 정교회다.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박차영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박차영

 

한국정교회는 19001월 러시아인 크리산토스 스켓코프스키(Chrysanthus Sketkovsky) 신부가 처음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온 것이 시초다. 선교사 파견 3년후에 고종이 서울 정동 러시아대사관 옆에 부지(경향신문 자리)를 주어 니콜라스 성인에게 봉헌한 소성당을 설립하도록 했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러시아인들을 내쫓는 바람에 정교회는 작은 공동체로만 남아 있었고,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본국과의 교류가 끊어졌다.

 

초기 정교회 /정교회 홈페이지
초기 정교회 /정교회 홈페이지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엔 참전국의 일원인 그리스군의 종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가 한국정교회 공동체를 서울에 설립했다. 1956년 한국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대교구로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그리스 정교회로 전환되었다.

1968년에는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한 것이 지금의 한국정교회 대교구청이다. 그리스 정부가 건물을 지어 주었다.  건물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 내 신자수는 대략 2,000~3,000명 정도. 2004년 한국정교회는 자치행정제로 승격했으며, 현재 세계총대주교에 소속되어 있다. 2008년부로 현재까지 그리스 출신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제2대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초대 교구장은 그리스 출신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가 1975121일부터 2008720일까지 30여 년 이상 한국에서 재임했다.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박차영
한국정교회 대교구청 /박차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