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민간에선 자를 제각각 사용했나
조선시대 민간에선 자를 제각각 사용했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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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에서 철종때 옛 곱자 발견…도량형 기준과 2~3% 차이

 

정밀 과학의 시대에 2%의 오차는 엄청난 오류를 범한다. 조선시대 말기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자의 오차가 2%였다면, 국가 도량형의 표준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기도 안성시가 실시하는 안성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 해체 보수 과정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곱자가 발견되었디.

곱자는 전통건축 과정에서 목재와 석재 길이를 측정하거나, 집 전체의 크기와 비례, 치목(治木, 나무를 깎는 일)과 치석(治石, 돌 다듬는 일)에 필요한 기준선을 부여할 때 사용하는 '자 형태의 자를 말한다. 일부에서는 곡자라고도 하는데, 네이버 사전에는 곱자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견된 목재 곱자는 장변 43, 단변 31.3, 두께 2내외)의 크기다. 이 곱자는 대웅전 상량문 기록 등을 토대로 볼 때, 1863(철종 14) 대웅전 수리공사 당시 기둥의 해체보수 작업 과정에서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견된 곡자는 단변을 10치로 나누어 세부 단위를 부터 까지 표기했다. 1()10(). 특히, ‘에서 까지는 다시 한 치당 10등분을 하여 측정의 정밀도를 높였다. 이 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대웅전의 치수를 계산해 보니, 자와 대웅전의 용척(길이 단위)이 같아 대웅전을 지을 때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곱자의 모습 /문화재청
곱자의 모습 /문화재청

 

이번에 발견된 곱자의 용척을 분석한 결과 한 자가 313내외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곡자의 한 자는 영조(재위: 17241776) 시대의 도량형 단위인 영조척에서 1(()=306.5mm에 비해 6.5mm가 더 길다. 100년 남짓한 시기에 자의 치수에 2%나 차이가 난 것이다.

그후 근대에는 한 자의 용척이 303였는데, 이 기준과는 무려 10mm, 3% 정도의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는 철종 때 청룡사 공사를 한 목수가 도량형 기준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자를 사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조선은 세종대(1446)에 도량형 통일을 단행했지만, 민간에서는 제멋대로의 자를 사용한 셈이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도량형의 국제적 표준이 논의되고 있었다. 1875년 세계 각국의 대표가 파리에 모여 전세계가 통일된 도량형 제도를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미터법을 채택했다.

같은 시대에 한양에서 가까운 절 보수공사에서 제멋대로의 측량도구가 사용된 것이다.

 

곱자 결구부의 모습 /문화재청
곱자 결구부의 모습 /문화재청

 

어쨌든 문화재청과 안성시는 귀중한 옛 물건이 나왔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곱자는 대웅전 뒤쪽 기둥 하부와 초석 사이에서 나왔다. 문화재청은 관계 전문가들의 현황검토와 곱자의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한 보존처리를 진행했으며, 보다 정밀한 조사연구를 위해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로 이관했다.

앞으로 정밀실측 조사, 재료(수종) 분석, 엑스레이(X-ray) 촬영, CT(컴퓨터단층) 촬영, 유사 용척 조사연구, 대웅전 수리 이력 분석 등을 추가로 진행해 전통건축 분야의 연구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곡자는 안성 청룡사 대웅전 해체·보수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항온항습실에서 최적의 상태로 보존될 예정이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은 주요 부재의 노후화로 인한 건물 전체 변형이 심해 해체·보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관계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20166월부터 해체·보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발견 당시 곱자의 모습 /문화재청
발견 당시 곱자의 모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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