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 밀어내며 동쪽 향하는 러시아
몽골족 밀어내며 동쪽 향하는 러시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0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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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4세, 카잔 아스트라한 병합 후 스트로가노프 가문 앞세워 우랄 산멱 넘어

 

16시기초,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시대를 열어 아시아 무역시장을 개척할 무렵, 러시아에는 또다른 움직임이 일어났다. 육로를 통해 아시아로 진출하려는 계획이었다.

1533년 이반 4(Ivan )가 러시아 왕위에 올랐다. 17살이 되던 1547년 이반 4세는 정식으로 대관식을 갖고 친정에 나서면서 차르’(Tsar)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그의 정치는 강렬하고 잔혹했다.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감행해 공포왕 또는 뇌제(雷帝, the Terrable)라고 불렀다. 그가 러시아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러시아 남부와 시베리아에 몽골족이 통치하던 광대한 땅을 자국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반 4세가 통치하기 직전에 남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던 킵차크 칸국(汗國)이 내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여섯 개의 작은 나라로 산산조각이 났다. 킵차크 한국(Kipchak Khanate)은 칭기스칸의 손자 바투가 건설한 몽골제국의 나라로, 금장칸국(金帳汗國, Golden Horde)라고도 불렸다.

금장칸국이 붕괴되면서 형성된 작은 칸국은 크림미아 칸국,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노가이 칸국, 시비르 칸국, 카차흐 칸국이다. 19세기까지 이 여섯 개 칸국 모두 러시아에 흡수 합병되는데, 러시아의 우선 타깃은 카잔, 아스트라한, 시비르의 3개 칸국이었다. 이 세 칸국을 영토화함으로써 러시아는 광대한 시베리아로 진출하게 된다.

 

16세기초 킵차크 한국에서 분열된 작은 칸국들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16세기초 킵차크 한국에서 분열된 작은 칸국들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그 첫 번째 타깃은 카잔(Kazan) 칸국이었다. 카잔 칸국은 킵차크 칸국이 분열하면서 생긴 나라인데, 볼가강 중류와 카마강에 위치하며 모스크바 공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 작은 나라는 처음부터 모스크바 대공과 주종관계를 맺었고, 모스크바도 칸국의 내정에 사사건건 개입했다.

또다른 칸국 아스트라한(Astrakhan)은 볼가강 하류와 돈강 사이에 위치하며, 이웃하는 크리미아 칸국과 노가이 칸국에 의해 군주가 수시로 바뀌었다.

작은 칸국은 러시아(모스크바 공국)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동양적 외교 관행을 배우게 되었고, 소칸국들에게 동양식 조공을 요구했다. 힘이 약한 칸국들은 일단 러시아의 공납을 바치면서 생존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1521년 러시아의 조공 요구에 시달리던 크리미아와 카잔의 두 칸국은 연합작전을 펼쳐 러시아를 선제 공격했다. 칸국 연합군은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격해 러시아로부터 도리어 공물을 받는 조건으로 군대를 철수했다. 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포로를 납치해 노예시장에 팔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공물 납부가 지지부진하자 카잔 칸국은 2년후에 모스크바 다시 침공을 시도했다. 그땐 모스크바가 포병으로 무장해 있었기 때문에 카잔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드디어 몽골 후예의 작은 칸국과 러시아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소칸국들 사이에 가장 큰 문제는 동족간 단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노가이 칸국이 크리미아와 카잔 칸국을 기습 공격하고, 이 와중에 크리미아 칸이 살해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 틈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카잔에 친러시아파 칸을 옹립한 것이다. 이에 크리미아가 개입하고 다시 몽골세력이 카잔의 칸으로 복귀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드디어 공포왕 이반 4세가 무력을 동원했다. 15526월 러시아군은 포병을 앞세워 카잔을 침공하고 수도를 포위했다. 102일 이반 4세는 공세를 취해 수도를 함락하고 남자 대부분을 학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았고, 이슬람 모스크들을 부수었다. 카잔 칸국은 힘없이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이반 4세는 내친김에 아스트라한 칸국으로 밀고 들어갔다. 1554년 공포왕은 아스트라한에 3만의 군대를 보내 괴뢰정부를 세우고 돌아갔다. 그 다음해 반란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토벌한후 아스트라한을 아예 합병해 버렸다. 이로써 모스크바 공국에서 출발한 러시아는 우랄산맥 서쪽을 제패하게 된다.

러시아의 남하가 빠르게 전개되자, 크리미아 칸국은 잽싸게 오스만투르크에 붙었다. 오스만은 군대를 보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다. 모스크바는 아직 오스만과 대결할 힘이 없었다.

결국은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랄산맥 동쪽에는 시비르(Sibir) 칸국이 있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초원의 카잔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정복한후 동쪽으로 팽창을 시작한다. 러시아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종교를 앞세워 이슬람을 믿는 몽골·투르크족과의 성전을 벌였다. 동시에 칭기스칸에 의해 200~300년간 굴복한 과거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1552년 카잔 정벌에 나선 이반 4세(그림) /위키피디아
1552년 카잔 정벌에 나선 이반 4세(그림) /위키피디아

 

16~17세기 지구는 소빙기(little ice age)에 돌입했다. 인류 역사에는 주기적으로 추워지는 소빙기가 찾아 오는데, 유럽이 추운 겨울을 맞게 되었다.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소빙기는 그후 300년이나 지속되었다.

소빙기로 인해 빙하가 확장되는 바람에 스위스 알프스의 마을이 파괴되었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강과 운하가 얼어 붙었다. 1622년에서 1658년엔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로스 해협과 골든 혼(Golden Horn)이 얼어 배가 드나들지 못했다.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당시만 해도 난방시설이 마땅치 않았다. 방안에서도 두터운 옷을 껴입고 있어야 했다. 모피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인류가 발견한 방한재료 가운데 모피보다 따듯한 게 없었다. 하지만 모피는 동물의 가죽을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생산이 제한되었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다. 부유층의 사치품목이었다.

모피 제품 중에 최고는 담비 털로 만든 것이다. 담비는 아시아 북쪽, 시베리아에서 서식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모피가 공급되기 이전에 유럽에선 러시아가 유일한 모피 생산국이었다. 러시아인들은 담비털을 황금양털이라고 불렀다. 시베리아 담비털은 가볍고, 광택이 나고 보드랍고 아름다웠다.

 

시베리아에서 모피를 수집하는 코사크족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에서 모피를 수집하는 코사크족 /위키피디아

 

이반 4세의 꿈을 실현해 줄 귀족이 나타났다. 러시아 북동쪽 변경에서 모피 무역과 소금채취, 어업을 하는 스트로가노프(Stroganov) 가문이었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은 차르로부터 우랄 산맥 서쪽의 땅을 하사받아 정착지를 개척했다. 요새를 세우고 정착민들을 끌어들였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은 쉽게 북극해로 영토를 넓혔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수도 많지 않은데다 무장력이 빈곤해 쉽게 항복했다.

하지만 우랄산맥 동쪽의 타타르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몽골과 투르크족이 혼합된 타타르 족들은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이 애써 만든 정착촌을 급습해 주민들을 학살하고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타타르의 배후에 칭기스칸의 후손이 지배하고 있는 시비르 칸국이 버티고 있었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는 차르에게 우랄산맥 동쪽으로 진격해 영지를 만들겠다고 건의했다. 이반 4세는 허락은 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산맥을 넘으라고 조건을 달았다. 러시아는 서쪽의 리투아니아-폴란드, 남쪽의 크리미아-오스만투르크 동맹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급급하므로, 동쪽 국경 확대에 쏟아부을 군사적 여력이 없었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의 목표는 값나가는 것이 모피였다. 모피는 서유럽의 부르죠아지들에겐 사치품이었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이 지속되면서 모피는 유럽에서 중산층에까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아니케이 표도르비치(Anikey Fyodorovich Stroganov)는 이반 4세의 허락을 받아 시베리아에서 모피 무역에 나섰다. 말이 무역이지 약탈이나 다름 없었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은 시베리아에 버젓하게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타타르족의 칸국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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