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를 추구한 소설 데미안과 작가
아브락사스를 추구한 소설 데미안과 작가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1.15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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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가 공존한 고대의 신…무의식을 찾아 참 자아를 구현하려는 노력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보내고 싶다. 처음 읽었을 때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이번에는 차분하게 다시 읽어 보았다. 처음 읽을 때보다는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작가가 무슨 의미를 전하려 했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해설서를 읽어보면 진정한 자아또는 참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설명이 많고, 데미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또다른 자아’, 또는 참 자아라고 한다. 그런 해설엔 공감이 간다.

그런데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세계 대전이란 집단적 광기는 개인의 자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해결되는가. 의문은 다음번에 일독하는 기회에 해소하기로 하고, 이제까지 이해한 것만으로 소감을 정리하기로 한다.

데미안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힌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을 치르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집단주의, 물질주의에 개인이 파괴되는 과정을 겪었기에 한국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싱클레어에 공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 물질만능의 공허함과 이데올로기의 강요를 푸근하게 감싸줄 에바 부인을 필요로 할른지도 모른다.

 

에밀 싱클레어란 필명으로 출판한 데미안 초판 /위키피디아
에밀 싱클레어란 필명으로 출판한 데미안 초판 /위키피디아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아브락사스(Abraxas)라는 신의 존재다.

싱클레어는 꿈 속에 나타난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냈다. 데미안의 답신은 이러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나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유대교에서 선의 신을 의미하는 야훼와 악마의 신인 사탄을 합친 개념이다.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선의 신만을 강조하고 악마는 배제한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 즉 아브락사스를 숭배하는 파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종파를 그노시스(Gnosis)파라고 한다.

데미안은 성경의 등장인물 카인의 부적을 설명하면서 악의 세계에 대한 숭배를 지적한 바 있고, 싱클레어가 나중에 만나는 피스토니우스가 아브락사스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꿈속에서 새를 보았고, 그 새를 그림으로써 아브락사스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이고,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얽히며, 사랑과 죄악이 어우러지는 그런 모습이 아브락사스였다.

 

아브락사스 모형 /위키피디아
아브락사스 모형 /위키피디아

 

고대인들은 아브락사스를 인간의 몸에 수탉의 머리를 갖고, 두 개의 다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상상했다. 오른손에는 방패, 왼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싱클레어에게 아브락사스는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인간이면서 짐승이고, 최선이면서 최악이고, 사랑이면서 죄악이다. 그것이 인간의 내면 깊숙하게 숨어 있는 참 자아, 즉 무의식이고, 헤르만 헤세는 소설에서 에바부 인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에바 부인은 애인이면서 남자이면서 어머니 같은 존재다. 주인공은 에바부인에게 유혹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머니처럼 안기고 싶어 한다. 그녀가 아브락사스의 세계다. 남자와 여자, 애인과 어머니, 유혹과 사랑을 융합하고 초월한 존재가 에바 부인이고, 싱클레어의 내면 깊숙이 박혀 있는 무의식의 세계다.

새는 알을 깨야 한다. 그 알은 낡은 질서, 즉 현실의 세계다. 주인공은 새가 되어 낡은 질서를 개고 무의식의 세계, 즉 아브락사스로 날아간다. 그 종착점에 에바부인이 나타나고, 나의 또다른 존재 데미안과 함께 한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제국 남부 슈바르츠발트의 시골마을 칼브(Calw)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는 중국과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곻, 나중에 손주 헤세가 그 영향을 받았다.

헤세는 어려서부터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종교의 구속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14살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의 전통과 권위에 저항하다 끝내는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이 무렵 부모의 실망과 주위의 냉대를 받았고, 한때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런 방탕한 모습이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소년기에 반영되어 그려진다.

헤르만 헤세의 젊은 시절 소설과 시는 낭만적이었다. 그는 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1914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의 몰락을 보았고, 아내와의 잦은 불화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위기에 빠져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를 치료한 사람은 요제프 랑(Josef Lang)이란 심리학자였는데, 랑은 당대의 유명한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의 제자였다. 헤세는 융의 정신분석학 연구에 몰두했다. 헤세는 이를 통해 자아와 세계의 대립을 이해하고, 내면 세계 깊숙이 숨겨져 있는 참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소설 데미안은 융의 심리학을 해석하면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데미안은 1차 대전 인 1916년에 집필을 시작해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다. 책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전투에 참가하다 부상당해 같은 병상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의 또다른 자아임을 확인한다.

그 검은 거울 위에 나 자신의 모습인 그 이제까지 내 친구이며 내 안내자였던 저 데미안 와 똑같이 닮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85년 인생 가운데 한 가운데인 42세 때 쓰여졌다. 그는 데미안을 출판한 이후에도 40여년을 더 살았다.

40대 초반의 헤세는 집단과 단체, 국가가 광기를 띠고 끔찍한 것에 헌신하는 모습을 그렸다. 바로 전쟁이다. 헤세는 집단적 이상, 즉 집단의 무의식이 실현되면 광기의 세계에서 벗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는 거대한 새가 알에서 뛰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다. 세계는 파괴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차 대전보다 더 험악하고 극단적인 세계를 경험했다. 데미안 출간 이후에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고, 그는 스위스에서 살면서도 위기감에 젖어 있었다. 유럽은 더 큰 파괴를 겪었다.

소설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가 지향한 바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무의식이든, 집단 무의식이든, 그것을 추구하면 자신의 삶을 찾고, 집단의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개인에겐 의식과 무의식의 설명이 통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의 영역에선 심리학적 접근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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