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어좌 뒤 일월오봉도, 과거 시험지로 제작
임금 어좌 뒤 일월오봉도, 과거 시험지로 제작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1.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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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1840년대 이후 제작품…금박 장황 복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그리고 파도치는 물결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조선 왕실에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왕의 공간에 설치하는 회화다. 이 그림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조선에서만 발견된다. 중국 고전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에 실린 천보’(天保)에 거론된 천보구여’(天保九如)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경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의 각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 뒤에 설치되었다. 조선 궁궐은 총 5곳이었는데, 현재 일월오봉도가 설치된 곳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이다.

그런데 조선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회화가 과거시험에 낙방한 사람의 시험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보존처리후의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문화재청
보존처리후의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에 있는 일월오봉도는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당가(唐家)의 어좌 뒤에 설치된 4폭 병풍이다. 창덕궁 일월오봉도는 그동안 인정전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바람에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顔料)가 들뜨고, 구조를 지탱하는 병풍틀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을 입었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와 2016년부터 전면 해체 보존처리를 시작해 지난 2021년 말 작업을 마쳤다.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褙接紙)-1960년대 신문지-시권(試券,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병풍틀의 순서로 겹쳐진 구조가 확인되었다. 1960년대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 조선 시대 일월오봉도의 제작시 사용했던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해 이어져 온 것이;.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면 해체 후 각 재질을 분석해 병풍틀의 수종과 사용된 안료, 배접지, 바탕 화면의 재질 등을 각각 확인했으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존처리에 적용했다. 이번 보존처리에서는 기존 병풍틀이 충해(蟲害)와 틀어짐 등의 구조적인 손상으로 인해 재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종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로 제작했다.

이외에, 인정전영건도감의궤인정전중수도감의궤, 1900년대 초 경복궁 근정전 일월오봉도와 덕수궁 중화전 일월오봉도의 유리건판 사진, 창덕궁 신선원전 일월오봉도 등 문헌과 사진, 유사유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장황을 녹색운문단(녹색 구름 무늬 비단)에 꽃문양 금박을 붙이는 등 의궤 속 모습을 재현했다.

또한, 고문서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로 사용된 여러 장의 시권 중 총 27장이 과거 시험 답안과 관련 있는 시권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중 25장의 시권이 동일한 시험에서의 답안으로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일월오봉도는 낙폭지(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를 재활용해 제작한다는 사실과 제작 연대가 1840년대 이후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 과정과 관련 연구 결과를 담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보고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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