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soviet)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의미로,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소비에트로 출발했다. 이후 정치용어로 정착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의 권력기관을 의미하게 되었고,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라는 국명으로 사용되었다. 좁은 의미로 공산세력의 해방구로 보면 이해가 쉽다.
중공에서 최초의 소비에트는 남부 광둥성에서 만들어진 하이루펑(海陸豊) 소비에트다. 하이루펑은 하이펑(海豊)과 루펑(陸豊)이라는 광둥성의 인접한 2개 현(縣)을 지칭하는데, 그곳에서 4개월여 짧은 기간에 공산정부가 수립되었다. 후이라이(惠來)와 푸닝(普寜)의 일부 지역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시기는 1927년 11월부터 1928년 2월까지다.
이 지역은 하카(客家)라 불리는 한족 가운데서도 천한 계층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그 곳에 펑파이(彭湃)라는 젊은이가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소비애트 창설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마오쩌둥은 펑파이를 ‘농민운동의 대왕‘이라고 칭했다.
하이루펑 소비에트가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중공 사상 첫 소비에트란 점과 조선의 김산, 오성륜, 김약산 등 초기 혁명운동가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특히 김산은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에서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세 인물로 오성륜, 김약산, 펑파이를 들었다.
펑파이(1896~1929)는 광둥성 하이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펑신(彭辛)는 대지주이자 부상(富商)이었고,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18살에 펑신에게 팔려온 노비였다. 어머니는 펑신의 첩이 되어 세 아들을 낳았는데, 펑파이가 둘째였다. 펑파이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일본 와세대대학 정경과를 졸업하는 혜택을 얻었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에 매료되었다.
펑파이는 1921년에 귀국해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고향 하이펑현에서 교육국장을 맡았으나, 소작료 인하투쟁을 주도하는 등 농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결국 교육국장 자리에서 해임되어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전념했다. 1924년 쑨원이 국공합작을 성사시킨 이후 펑파이는 국민당 산하 농민부 비서로 임명되어 수장을 맡았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한 지붕 밑에서 공존하기 어려웠다. 1925년 쑨원이 죽고 국민당은 공산당을 반대하는 우파와 공산당과 협력하자는 좌파로 갈라졌다. 두 파벌은 갈등을 덮어둔 채 1926년 7월 북벌을 개시했다. 장제스가 주도한 국민당의 북벌군은 1927년초 양쯔강 일대까지 중국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때 국민당 우파의 지도자 장제스가 공산당과 국민당 좌파를 척결할 계획을 세웠다. 장제스는 국민당 국대만 피를 흘리고 공산세력은 뒤에 숨어서 세력만 확대하는 것에 분개했고, 국민당 좌파가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갈등은 상하이에서 증폭되었다. 상하이 공산당은 국민당 북벌군이 오기 직전에 상하이를 해방시키려고 무기를 준비했다. 이를 장제스가 눈치챘다. 1927년 4월 12일 장제스는 상하이 암흑가의 폭력조직인 청방(靑幇)과 홍방(紅幇)을 동원해 공산당 행동조직인 노동자 규찰대를 습격하고 그 무리들에게 대학살을 감행했다.
장제스의 쿠데타를 계기로 공산당은 3년 7개월만에 국민당과 갈라섰다. 공산당은 무장폭동을 일으켜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을 전볻시킬 계획을 세웠다. 공산당의 첫 도전이 난창사건이다.
1927년 8월 1일 새벽 2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중국 장시성 난창(南昌)에 주둔하고 있던 국민당 군대가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주모자는 국민당군에 침투해 있던 공산주의자 허룽(賀龍)과 예팅(葉挺)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주더(朱德)도 난창에 와 있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2만명의 반란군을 이끌고 해가 뜰 무렵 난창 시내를 장악했다. 난창봉기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첫 번째 군사대결이었다. 중공(中共)은 난창봉기일인 8월 1일을 인만해방군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다. 난창봉기에는 저우언라이, 주더, 허룽, 예팅, 류보청, 천이(陳毅) 등이 참가했고, 펑파이도 가담했다.
난창봉기는 장제스군의 반격으로 곧바로 붕괴되었다. 국민당 좌파와 우파가 공산세력의 봉기에 단결해 진압에 나섰다. 아직 공산당은 국민당에게 ‘새발의 피’였다. 반란군은 닷새후인 8월 5일 난창을 포기하고 광둥성으로 남하했다. 그들은 식량도 부족했고, 무더위를 이겨내기 힘들었다. 반란군은 남하하다가 궤멸 직전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중에 예팅, 허룽 등이 광저우에 들어가 암약했고, 펑파이는 고향인 하이펑으로 돌아가 옛 조직을 다시 움직였다.
난창봉기 실패 이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추바이(瞿秋白)는 또다른 폭동을 조직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각지의 공산당원은 추수폭동을 일으켰다. 펑파이는 하이루펑에서 두차례의 폭동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또다시 10월 30일 난창봉기에 동원되었던 잔여 부대와 농민들로 노농혁명군 제2사단을 조직해 3차 폭동을 일으켜 하이루펑과 후이양(惠陽), 쯔진(紫金)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펑파이는 11월 중순, 하이루펑 지역에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고, 토지혁명을 실시했다. 11월 13일, 펑파이는 노·농·병 대표대회를 개최, 토지 몰수안을 통과시켰다.
한편 광저우에는 국민당 우파 군벌인 리지선(李濟深)과 국민당 좌파인 장파쿠이(張發奎) 사이에 광둥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이 벌어졌다. 장파쿠이는 우한(武漢) 군정학교 사관후보생으로 구성된 2,000여명의 교도단을 이끌고 왔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산당원이었다. 이 교도단 대원 가운데 80명은 조선인이었다.
코민테른은 광둥에서 무장봉기를 지시했다. 광둥에 피신해 있던 예팅과 허룽은 교도단을 적군(赤軍)으로 개칭하고 폭동명령을 내렸다. 교도단은 장파쿠이의 손을 떠나 공산당에 의해 움직였다.
1927년 12월 11일 새벽 장타이레이(張太雷)를 비롯해 반란군 지휘관들은 광저우의 공공건물을 점령하고 수감되었던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그날 2,000명의 반란군은 광저우 시내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 반란군에 김산, 오성륜 등 조선인들도 가담했다. 반란군은 다음날인 12일 장타이레이는 광저우 공산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자신이 끌어들인 군대가 반기를 들자 장파쿠이는 휘하 병력을 총동원해 광저우로 향했고, 리지선도 반공전선에 군대를 동원했다. 공산주의 폭동에 국민당 좌우파가 단결한 것이다. 광저우의 공산정부(코뮌)은 3일천하로 끝났고, 반란군은 하이루펑 소비에트로 달아났다.
광저우 코뮌이 붕괴될 때 2만명이 사망했는데, 이중 5,000여명은 시민이었고, 조선인도 100여명이나 되었다.
광둥 코뮌에 참여한 조선의 혁명가 김산은 하이루펑으로 도주하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광둥을 빠져나온 우리들은 하이루펑 소비에트가 번창하고 있는 것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격과 흥분을 느꼈다. 우리는 광저우를 잃었다. 그러나 이곳 농촌지방에서는 승리가 우리의 것이리라.” (님 웨일즈, ‘아리랑’)
김산은 하이루펑의 토지개혁에 감탄하고 조국에 돌아가 이런 운동을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펑파이는 하이펑의 토지 80%, 루펑의 토지 40%를 몰수했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광둥의 농촌소비에트를 지주의 수탈에 고통받는 조선의 소작 농민을 해방시키는 모델로 관찰했던 것이다.
하지만 펑파이가 이끄는 소비에트는 대지주 뿐 아니라 중농의 토지도 닥치는대로 압수했고, 자본가와 지주들을 가혹하게 죽였기 때문에 많은 원성을 샀다. 또한 그런 가혹한 혁명이 오히려 반혁명을 초래하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리랑’에서도 하이루펑 소비에트의 반동분자 처형장면이 나오는데, 님 웨일즈는 하도 끔찍해 그 대목을 삭제했다고 한다. 고대 봉건시대의 처형법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는 중공당으로부터 좌경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당이 하이루펑 소비에트 와해에 나섰다. 1928년 국민당의 반격이 시작되자 펑파이는 게릴라전술과 청야(淸野) 작전을 활용해 저항했지만, 정권 기반이 취약한데다 군사력의 한계를 노출했다. 1928년 2월 28일, 국민군의 총반격에 하이루펑 해륙풍 소비에트는 4개월만에 붕괴되었다.
펑파이는 상하이로 도주했다. 하지만 1929년 8월 내부의 밀고에 의해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체포되어 국민정부에 인도되었다. 저우언라이는 펑파이 구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는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총살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Hailufeng Soviet
Wikipedia, Peng Pai
Wikipedia, Guangzhou Uprising
님 웨일즈-김산, 아리랑, 동녘,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