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역사①…타이족의 민족 대이동
태국 역사①…타이족의 민족 대이동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1.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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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부에 살던 타이족, 한족 확장에 윈난 거쳐 태국·라오스로 이동

 

태국의 역사는 큰 단층을 이루고 있다. 중국 남방에 거주하던 타이족(Tai peoples)이 짜오프라야강 유역으로 남하하기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타이족이 등장하기 전에 태국 일대는 인도 문화 영향권에 있었고, 그 역사는 고고학의 영역에나 규명된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타이 평원엔 BC 4,000년에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고, 일찍이 벼농사가 발달해 사회적, 정치적 조직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서기 3세기경 태국과 캄보디아 일대는 부남(扶南)이란 왕국이 존재한 것으로 중국 사료에 등장한다.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캉타이(康泰), 주잉(朱應)이란 여행자가 남해를 항해하다가 메콩강 일대의 원주민국가를 발견하고, 부남이라고 기록했다. 고고학자들 사이에 부남이 캄보디아의 크메르족 또는 미얀마의 몬족이 세운 나라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데, 크메르족의 고대국가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부남 /위키피디아
부남 /위키피디아

 

1100년 경, 태국 서부와 북부엔 몬족의 드바라바티(Dvaravati), 하리푼차이(Hariphunchai), 라보(Lovo) 등의 왕국이 세워졌고, 동부는 크메르족, 남부 반도지역은 말레이족의 영향권에 있었다. 드바라바티와 하리푼차이는 소승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 나라는 중앙집권적 왕국을 형성하지 못했고, 도시국가들의 연맹체 형태로 교류하는 형태를 취했다.

메콩강 하류의 앙코르제국은 팽창했을 때, 태국 일대도 앙코르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하지만 북방의 타이족이 남하하기 이전까지 사료는 극히 제한적이다.

 

1100년경 동남아시아 /위키피디아
1100년경 동남아시아 /위키피디아

 

현재 태국을 형성하는 국민은 타이족이고, 중국 남붖지역에서 내려왔다. 따라서 태국 땅에서 타이족의 역사는 13세기 이후로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태국(泰國)은 타이족의 나라라는 한자식 표기에서 나온 말로, 태국의 타이족과 중국의 소수민족인 다이족(傣族)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의 유사성으로 종족을 구별하는 어족(語族, language family)의 개념으로는 타이족, 라오족, 중국 광시성의 좡족(壯族), 다이족이 한 뿌리에서 파생된 종족으로 본다. 타이어족은 중국 서남부, 태국, 베트남 부부, 라오스, 버마 북부에 산재하고 있다.

이 종족은 인도네시아-태평양에 뿌리를 둔 남방계로, 고대엔 대만과 푸젠성에서 살다가 BC 12세기경에 양쯔강 중류로 이동했다. ()나라 이후 중국 한족이 팽창하고 남방으로 이주하면서 타이어족은 광둥성, 광시성, 윈난, 구이저우성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이 버마족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황상 타이족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주나라 이후 한족의 남방개척은 그곳에 사는 종족에겐 엄청난 피해를 주었고, 타이족도 피해자의 하나였다. 중국 남방에서 한족과 타이족의 충돌은 8세기 이후 잦아졌다. 당나라 시절인 722년 타이족의 일파인 라오족이 광둥성에서 남월(南越 또는 南粤)을 건국했다가 한족의 토벌에 6만명이 살해되었고, 726년에 광시성에서 또다시 반란이 일어났으나, 패배해 3만명이 체포되고 처형되었다. 756년에 타이족이 반란을 일으켜 20만의 군대를 이끌며 4년을 끌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타이족은 남만(南蠻)의 오랑캐로 서술되었을 뿐 그들의 독자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구당서에 나오는 남조(南詔)는 타이족과 소수 종족의 연합왕국이었다. 738~902년에 윈난성을 통치한 남조는 불교왕국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까지 세력을 넓혔다. 남조는 한족의 반란으로 멸망하고, 소수민족들이 다시 세운 나라가 송나라 시대의 대리국(大理國)이다.

 

타이어족의 이동방향 /위키피디아
타이어족의 이동방향 /위키피디아

 

타이족의 본격적인 남하는 송나라 시대로 관측된다. 송나라는 북방의 금나라에 쫓겨 단절되고 왕조가 남쪽에서 명맥을 이어 남송(南宋, 11271279).이라고 했다. 남송은 양쯔강 이남의 강남 개발에 나섰다. 남송이 광둥, 광시 일대를 본격적으로 한족 거주지역으로 만들면서 그곳에 뿌리내렸던 타이족들은 근거지를 잃게 되었다. 그들은 윈난성으로 가거나, 베트남, 라오스, 태국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타이족이 태국 국경을 넘은 것은 서기 800년경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시하나바티(Simhanavati)왕이 태국 북부 국경도시인 치앙라이의 치앙센에 나타나 그곳에 살던 와족(佤族)을 쫓아내고 도시국가를 건설했다고 한다. 타이족은 치앙센을 100년 정도 지배했으나, 이번엔 몬족의 하리푼차이 왕국이 침공해 치앙센에서 쫓겨났다. 937년 타이족은 반격을 나서 치앙센을 되찾는다. 이후 1000년경 대지진이 발생하여 치앙센은 붕괴되다시피 했고, 선주민이었던 와족이 남하해 타이족을 몰아냈다. 이렇게 태국 북부 지역에서 뺏고 뺏기는 싸움을 계속하면서 타이족은 서서히 태국 남부로 내려가게 되었다.

 

앙코르와트 부조에 그려진 샴족(타이족) 병사 /위키피아
앙코르와트 부조에 그려진 샴족(타이족) 병사 /위키피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타이인들의 부조가 그려져 있다.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좋에 타이족은 용병으로 앙코르제국 수리야바르만 2세의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타이 용병들은 규율이 없어 보인다. 태평한 모습에 발도 맞추지 않고, 어떤 병사는 뒤를 돌아보며 히히덕거리기도 한다. 세워 들고 걷는 창의 각도도 엉망이고, 입고 있는 옷의 아래부분이 치마같이 넓게 퍼져 있다. 그 뒤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롭부리(Lopubri) 병사들에 비해 오합지졸의 모습이다.

당시 선진국이었던 앙코르제국의 입장에서 북방에서 내려온 타이족이 야만족으로 보였던 것이다. 부조 제작자였던 크메르인들이 타이인을 희화화한 것이다.

 

남조 이후에 윈난지역에 건국한 대리국(937~1253)에도 타이족이 남아 있었다. 대리국도 불교왕국으로 국왕이 국정에 지치면 왕위를 물려주고 승려로 출가하는 전통이 있었다. 대리국은 송나라와 티베트의 완충국으로 300년을 유지했지만, 몽골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남송을 공격하다가 1253년 대리를 멸망시켰다. 대리에 남아 있던 타이족들이 남하했다. 이들은 버마, 태국, 라오스로 내려갔고, 그것에 이미 정착한 타이족들과 합세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태국과 라오스를 건국하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History of Thailand

Wikipedia, Tai peo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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