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추앙받는 반데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추앙받는 반데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2.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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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치하에서 독립운동…나치에 협력, 유대인과 폴란드인 학살 간여했다는 지적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우크라이나인들은 극우 민족주의자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 1909~1959)에 대한 숭배 열기로 휩싸여 있다. 그의 생일은 11. 올해 첫날에도 수도 키예프 거리에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수백명의 추모객들이 횃불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2차 대전 때 소련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벌일 때의 상징이었던 붉은색과 검은 색의 이색기(二色旗)를 휘날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을 비난하고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우상화하는 민족주의자 반데라에 대해 회의적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스테판 반데라 /위키피디아
스테판 반데라 /위키피디아

 

반데라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지역인데,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갈리치아는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1919년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한 지역이었다가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우크라이나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반데라는 고향이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폴란드로 넘어가는 것에 분노해 동족 젊은이들을 규합해 민족주의 운동을 벌였다. 1929년 그는 지하에서 우크라이나 민족기구(OUN)의 조직을 주도했고, 1934년에는 폴란드 외무장관의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다.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독일 점령지로 가서 OUN 무장조직을 정비했다. 이후 그는 나치의 반폴란드, 반소련 정책에 동조해 독일 군부 내에 우크라이나 우호세력을 확보하려고 애를 썼다. 1941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반데라는 나치에 협력해 우크라이나 국가 수립을 준비했다.

나치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숭인하지 않았다. 반데라는 나치에 실망하고 나치의 요구를 거부했다. 194175일 그는 게슈타포에 의해 가택에서 연금되었다. 그후에도 그는 나치에 협조를 거부하는 바람에 1942~1943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1944년 연합군이 승기를 잡고 조여오자 독일은 소련군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석방했다. 반데라가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저항군은 소련을 거부했다. 그는 석방되어 우크라이나 지하저항조직을 주도하며 반공운동을 벌였다.

 

반데라는 철저한 인종주의자였다. 그가 폴란드인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고, 그가 지도하는 민족운동조직을 인종편견으로 물들게 했다. 2차 대전기간에 그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저항군은 폴란드인 5~10만명을 학살했고, 유대인들을 독일군에 넘겨주는 앞잡이 노릇을 했다. 독일의 소련 침공기간에 그는 연금되거나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어 이런 학살극에 직접 간여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그의 인종편견이 우크라이나 극우주의를 자극한 것은 분명하다.

 

2015년 1월 1일 키예프에서 반데라 생일을 기념하는 시위행진 /위키피디아
2015년 1월 1일 키예프에서 반데라 생일을 기념하는 시위행진 /위키피디아

 

2차 대전이 끝난후 그는 우크라이나 저항조직을 지도하며 공산세계에서 반공운동을 펼쳤다. 전후 냉전시대에 돌입하자 이번엔 미국과 영국이 그를 지원했다. 반데라는 미국 CIA와 영국 M16의 지원을 받아 반소련 투쟁을 이끌었다. 덕분에 그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제외됐다. 냉전초기 반데라는 OUN 요원들을 침투시켜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에서 첩보작전을 전개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서독에 남아 OUN-B의 반공주의 활동을 주도했다.

그는 19591015일 뮌헨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독일 의료진은 그가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련 KGB 요원이 독극물 사이안화물로 살포하는 바람에 암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반데라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 /위키피디아
2009년 반데라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그는 독립 영웅으로 부상했다. 2010년에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반데라에게 사후 영웅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2011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전임자의 결정을 무효 처리하기도 했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에 참여했던 우크라이나 극우 자유당원들이 반데라를 영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 이스라엘에선 반데라를 테러리즘, 인종주의자로 비난하고, 러시아에서도 그를 파시스트로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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