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불만…“핵 없애면 지켜준다더니”
우크라이나의 불만…“핵 없애면 지켜준다더니”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2.2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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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3위 핵보유국…젤렌스키, 서방에 영토보전, 경제지원 약속 이행 요구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현지시간 19일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해 서방이 1994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 시절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포기한 뒤 서방이 했던 안보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핵포기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 보유국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30기의 ICBM UR-100N43기의 몰로데트 ICBM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미사일은 미국은 물론 극동러시아까지 사정거리로 두고 있었다.

199112월 우크라이나는 국민투표를 실시, 9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을 통해 독립을 성취했고, 이어 소련이 해체되었다. 소련의 핵무기는 가장 큰 공화국이었던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에 배치되어 있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15개 나라로 쪼개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4개 공화국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연방이 통제하던 핵무기 관리와 발사의 권한이 각 공화국들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핵보유 국가가 많아졌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다. 미국은 과거처럼 한 나라, 즉 러시아가 통제하라고 요구하면서, 비러시아 3개 공화국엔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독립과 서방세계의 지원도 약속했다. 4개 공화국도 19925월 리스본 프로토콜을 체결해 러시아를 소련의 계승국으로 인정하고 핵무기를 소련에 이관하기로 약속했다. 3개국이 얻는 조건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보장, 서방에게서의 경제지원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로 이전했다. 일부 폐기된 발사체와 핵시설은 박물관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수도 키예프 남쪽 250km 지점에 전략핵미사일 박물관(Strategic missile forces museum)이 그것이다.

199412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참여한 가운데 리스본 프로토콜을 재확인했다. 부다페스트 각서(Budapest Memorandum)로 불리는 이 조약에서 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이 핵포기를 약속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서방국가와 러시아는 3개국에 대한 독립과 영토보전을 약속했다.

 

박물관이 된 우크라이나 미사일 사일로 /위키피디아
박물관이 된 우크라이나 미사일 사일로 /위키피디아

 

당시에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었다. 미국 시카고대 존 미어세이머(John Mearsheimer) 교수는 1993년에 우크라이나가 핵 억제력을 포기할 경우 러시아의 침공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소수의견으로 무시되었다.

이 소수의견은 현실로 나타났다. 20142월 러시아 해군은 크림반도를 포위하고 주민투표를 실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를 유도했다. 러시아는 주민들의 자발적 투표와 크림자치공화국 의회의 결의로 이뤄진 일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크림 위기 이후 우크라이나에선 소련에서 독립할 때 핵무기를 포기할 것은 잘못이란 견해가 나왔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핵 재무장으로 나가지 않았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서방이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또 NATO의 핵 우산 아래 러시아의 공격을 방어할 것을 기대했다.

 

우크라이나 전략핵미사일박물관에 보관된 발사체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전략핵미사일박물관에 보관된 발사체 /위키피디아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기대는 점점 멀어져 갔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말로만 러시아에 경고할 뿐 군사적으로 도와주지 않았고, NATO는 우크라이나에게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사훈련을 강화시키자 우크라이나에선 핵 재무장론이 나왔다. 2021415일 안드리 멜니크 독일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독일 방송에 출연해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못한다면, 국가 방위를 보장하기 위해 비핵국가로 남아있어야 하는지 여부를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2014년 3월 5일 파리에서 영국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만나 부다페스트 조약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2014년 3월 5일 파리에서 영국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만나 부다페스트 조약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일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궁 상황실에서 참관한 가운데 전략핵 훈련의 일환으로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뮌헨에서 우물쭈물하는 미국과 NATO에 화를 냈다. 그는 매일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미국에 대해 그러한 행위가 외국인 투자와 우크라이나 환율을 불안하게 하고, 우리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젤렌스키는 나아가 “NATO가 문이 열렸다고 했지만 아직 외지인에겐 허용하지 않고 있다. 회원국들이 우리를 보기 원치 않는다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했다.

그동안 서방의 학자들은 우크라니아가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서방의 자본이 투자되어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점을 지적하며 핵포기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이런 논리도 우크라이나가 존재할 때 가능한 얘기다. 우크라니아가 러시아에 침공당할 경우 서방의 논리가 어디까지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Nuclear weapons and Ukraine

Wikipedia, Russia an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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