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3점 보물로 지정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 3점 보물로 지정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2.2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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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적 ‘자치통감’과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도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 3점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는 5점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지정된 앙부일구는 총 3점으로 각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이 소장 중이며, 이 중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은 2020년 미국에서 돌아 온 환수문화재다.

앙부일구’(仰釜日晷)앙부일영(仰釜日影)’으로도 쓰며,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 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의미다. 1434(세종 16) 장영실(蔣英實), 이천(李蕆), 이순지(李純之) 등이 왕명에 따라 처음 만들었다. 이 해시계는 그 해 10월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 서울 종로에 설치되었던 다리)에 각 1대씩 설치하였고,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에 널리 보급되었다.

 

<앙부일구 지정현황(‘22.2월 현재)>

연번

지정종목

지정명칭

소재지

지정일자

표기법

1

보 물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1985. 08. 09.

앙부일구(1985)

2

보 물

휴대용 앙부일구

국립중앙박물관

1986. 03. 14.

변동없음

3

보 물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2022. 02. 22.

앙부일구(2022-1)

4

보 물

앙부일구

국립중앙박물관

2022. 02. 22.

앙부일구(2022-2)

5

보 물

앙부일구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2022. 02. 22.

앙부일구(2022-3)

 

조선 초기에 제작된 앙부일구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례가 없으며, 지금 남아있는 앙부일구의 경우, 겉면에 북극고 373915(北極高 三十七度 三十九分 一十五秒)’라고 새겨진 명문의 위도 값이 1713(숙종 39) 이후 처음 사용된 사실이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해시계의 제작시기는 1713년 이후로 추정된다.

세 점의 앙부일구는 모두 청동금속제로서, 오목한 몸체를 네 개의 다리가 받친 모습을 하고 있다. 시반에는 남북[午子] 방향에 북극으로 향한 영침(影針, 그림자 침)이 달려 있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세로 눈금인 시각선이 15분 간격으로, 계절을 알려주는 24절기는 가로 눈금으로 13개의 절기선이 은상감(銀象嵌)으로 새겨져 있다. 받침대는 네 개의 다리와 열십자[]의 다리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개의 다리에는 각기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새겼으며 용 좌우에 구름 문양을 표현했다.

3점의 앙부일구는 제작기법에서 시반의 시각선과 절기선, 지평면의 절기글자와 24방향 글자에 표현된 은상감 기법과 영침, 받침대에 새겨진 용무늬, 구름장식, 거북머리 장식 등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이고 있어 숙련된 기술자가 제작한 최상급으로 판단된다. 또 태양의 그림자로 시간 뿐만 아니라 날짜(절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독창성이 뛰어나다.

앙부일구는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앙부일구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앙부일구 /문화재청

 

한편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서적 자치통감(資治通鑑) 266~270과 경주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도 보몰로 지정했다.

자치통감은 1434(세종 16) 편찬에 착수, 1436(세종 18)에 완료된 총294권 가운데 권2662701(5)에 해당하는 서책이다. 주자소(鑄字所)에서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금속활자본으로,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3.4미터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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