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의 주인공, 해적 윌리엄 키드
보물섬의 주인공, 해적 윌리엄 키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09 16: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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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교수형에 처해져 3년간 매달린 전설…그의 보물 이야기는 아직도

 

17세기말에 카리브해와 인도양에서 활약한 해적 윌리엄 키드(William Kidd)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Treasure Island), 에드거 알렌 포우의 <황금 풍뎅이>(The Gold-Bug) 등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천양지차다. 영국을 위해 사략선 선장이 되었다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주장과, 해적과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 누명을 썼다는 자신의 변명등이 어우려져 있다. 하지만 영국의 법원 기록에는 해적 및 살인죄로 사형을 당한 인물이다.

 

키드와 보물 숨기는 모습. (Allen & Ginter Cigarettes 작) /위키피디아
키드와 보물 숨기는 모습. (Allen & Ginter Cigarettes 작) /위키피디아

 

그가 태어난 해는 1645년이라는 설과 1654년이라는 설이 있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뱃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영국령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살았다. 처음에는 평범한 선원으로 일하다가 해적선에 옮겨 타게 되었다. 그는 해적으로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1689년 카리브해에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배를 한척 빼앗고, 선원들의 투표로 선장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키드 선장’(Captain Kidd)이라 불렀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전면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자국 해적에게 프랑스 선박 또는 식민지에 대해 약탈을 허용했다. 키드는 영국 정부로부터 사략허가장을 받아 카리브 해의 안티구아, 네비스 섬 등 소안틸레스 열도 주변에서 프랑스 선박을 나포하고 프랑스 정착촌을 습격해 약탈했다. 그의 잔악한 행동은 뉴욕 총독이었던 벨르몬트( Bellomont) 백작의 눈에 띠었다.

해적질에 성공한 키드는 뉴욕으로 돌아와 두 번의 결혼 이력으로 많은 유산을 얻은 돈많은 과부와 결혼했다. 그녀의 부는 뉴욕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라고 했다.

1695년 그는 벨르몬트 총독으로부터 사략선 선장이 되어 미국 해안에 활약하는 해적과 프랑스 선박을 퇴치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총독의 제의를 거절하면 영국의 역적이 되므로 마지 못해 수락했다고 후에 진술했다.

그는 사략허가증을 받으러 런던으로 갔다. 영국에서는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귀족들이 자금을 출자했다. 사략허가증에는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친필로 서명했다.

그는 귀족들이 댄 자금에 자신의 돈을 조금 더 보내 범선 어드벤처갤리’(Adventure Galley) 호를 구해 선장이 되었다. 이 배는 284톤으로, 당시로는 대형선이었고, 갑판에는 대포 34문이 배치되었다. 돛과 별도로 노를 설치해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도 이동해 적선을 공격하고 후퇴할수 있도록 개조했다.

169646일 어드벤처갤리 호는 선원 150명을 태우고 영국 남부 뎁포드(Deptford) 항을 출발했다. 템스강을 하구를 지나는데, 영국 해군에게 경의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박명령을 받아 선원의 절반을 해군에게 빼앗겼다. 원래는 곧바로 인도양으로 항하려 했으나, 영국 해군에게 선원을 징발당하는 바람에 위해 뉴욕에 들러 인원을 새로 보충해 인도양으로 가야 했다.

 

어드벤처갤리 호 그림 /위키피디아
어드벤처갤리 호 그림 /위키피디아

 

어드벤처 갤리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마다가스카르 섬에 도착했다. 그곳은 전세계 해적들이 이동하다가 들르는 해적의 낙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는 프랑스 해적과 상선대를 찾아 헤멨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해적들에겐 약탈이 없으면 배당도 없었다. 약탈 대상을 찾지 못해 소득을 얻지 못한 선원들의 불만이 높아갔다.

그러던 중에 네덜란드 배가 지나갔다. 선원들은 그 배를 나포하려고 무장했다. 키드는 네덜란드 배는 허가받은 나포 대상이 아니라며 약탈을 거부했다. 그러자, 성미 급한 한 선원이 미친개처럼 그에게 덤벼들었다. 키드는 물통을 내리쳐 그 선원을 죽여버렸다. 당시 영국 해상법으로는 선장이 반란을 일으킨 선원을 죽여도 무방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이후 키드는 흔들렸다. 선원들에게 약탈물을 조금씩 나눠주려면 일정 범위 내에서 약탈을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대물이 걸렸다. 1698130400톤급 상선 케다머천트(Quedagh Merchant) 호가 지나갔다. 키드는 어드벤처갤리 호에 프랑스기를 내걸고 가까이 다가가 배를 세우고 나포했다. 배에는 엄청난 양의 면직물과 비단, 금과 은에다 동인도 회사의 상품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런데 배를 조사해보니, 대주주는 아르메니아인이었고, 무굴제국의 대신, 동인도회사의 임원들이 소액지분을 보유한 배였다. 선장은 영국인이었다.

다만 이 배는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중이어서 프랑스 해군 또는 해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 국왕이 허가한 통행증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허가받은 약탈대상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키드는 후에 법정 진술에서 자신은 이 배를 풀어줄 것을 지시했지만, 선원들이 프랑스 통행증을 가지고 있으니 적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풀어주길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키드는 케다머천트 호를 이끌고 마다가스카르로 돌아갔다. 또 뒷감당을 위해 프랑스 통행증을 잘 간직했다.

무굴 제국에서 분노해 동인도회사를 거쳐 영국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동인도회사도 나포된 배에 지분이 있기 때문에 본국에 케다머천트 호를 되돌려주고, 키드를 체포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에서는 휘그등과 토리당의 정치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키드에게 출자한 귀족들이 휘그당 소속이어서 토리당이 극렬하게 키드에 불만을 쏟아냈다.

 

마다가스카르에 돌아온 키드는 그곳에서 카리브해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자신의 배를 훔쳐간 또다른 해적 로버트 컬리포드(Robert Culliford)를 만났다. 키드는 선원들에게 컬리포드의 배를 나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선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컬리포드에게로 가버렸다.

실망한 키드는 더 이상 사략 행위를 멈추고 카리브해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어드벤처갤리호가 고장이 나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었다. 배에 있는 화물과 쓸만한 장비를 죄다 뜯어서 나포한 케다머천트호로 옮겼다. 그리고 케다머천트호를 어드벤처프라이즈(Adventure Prize) 호로 이름을 바꿨다.

 

뉴욕항에 도착한 윌리엄 키드 (1920년, Jean Leon Gerome Ferris 그림) /위키피디아
뉴욕항에 도착한 윌리엄 키드 (1920년, Jean Leon Gerome Ferris 그림) /위키피디아

 

카리브해에 돌아왔을 때 키드는 영국 정부가 토리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에게 체포령을 내리고 전함을 파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디너스 섬 위치 /위키피디아
가디너스 섬 위치 /위키피디아

 

키드는 카리브해에서 그동안 약탈한 화물들을 다른 해적들에게 팔고 금으로 바꿨다. 어드벤처프라이즈 호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뉴욕으로 가기로 했다.

그는 뉴욕으로 가면 벨르몬트 총독이 자신을 도와줄 것으로 믿었다. 키드는 개인 배를 구해 엄청난 양의 보물과 현금을 싣고 뉴욕으로 갔다. 뉴욕에 입항하기 앞서 롱아일랜드 섬 동쪽의 가디너스 섬(Gardiners Island)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벨르몬트 백작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벨르몬트는 매사추세츠도 관할하고 있었는데, 키드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보스턴에 있었다. 벨르몬트는 키드에게 보스턴으로 오라고 했다. 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키드는 체포되었다. 그는 1년 동안 보스턴에서 구류되었다가 런던으로 이송되었다. 키드는 재판에서 해적죄와 살인죄로 사형 언도를 받고 1701523일 사형되었다.

교수대에 3년간 방치된 키드 /위키피디아
교수대에 3년간 방치된 키드 /위키피디아

 

그는 온 몸을 결박당한채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교수형을 두 번 받았다. 첫 번째 집행 때 로프가 끊어져 죽지 않았다. 형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하느님이 그가 무죄임을 알고 로프를 잘랐다며 키드를 살려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집행관들은 다시 그를 교수대에 올렸고, 그는 세상을 떠냈다. 그의 시체는 해적행위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템스강 가에 3년째 방치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가 숨겨 놓았다는 보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 나섰고, 그에 관한 많은 스토리들이 전해지고 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가디너스 섬에 많은 사람들이 탐사했다. 로드아일랜드주 블록 섬(Block Island)에도 키드가 이 섬에 사는 친구 부인에게 앞치마 가득하게 금괴를 주었다는 신화적 스토리가 남아 있다. 2015,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해변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 50kg의 은 덩어리가 발견되어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에게 건네졌는데, 후에 유네스코 과학자들이 조사해본 그것은 은이 아니고 납이었다고 한다.

한편 2007년 카리브해 도미니카공과국의 얕은 바다에서 케다머천트 호(어드벤처프라이즈로 개명) 조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와 과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케다머천트의 잔해가 맞다고 입증했다. 이 배는 키드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기 전에 부하에게 맡겼는데, 곧이어 선내에 불이나 어디론가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물을 숨기는 키드 (Howard Pyle 그림) /위키피디아
보물을 숨기는 키드 (Howard Pyle 그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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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2-03-13 00:24:23
영국인인 이상 죽어 마땅하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