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에 가입하겠다던 푸틴, 우크라이나엔 왜?
NATO에 가입하겠다던 푸틴, 우크라이나엔 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3.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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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협조…나토의 동진, 색깔 혁명 이후 러시아 고립감에 위협 느껴

 

20005월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을 만났다. 푸틴은 3월 대선에서 53.4%를 득표해 당선되었고, 취임을 앞둔 당선인 신분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새 권력자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로 날아간 것이다.

푸틴은 클린턴에게 러시아가 NATO에 가입하겠다고 제안했다. 클린턴은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의 대표들이 매우 민감해 할 것이다.”고 대답했다. 이 얘기는 푸틴이 나중에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한 미국의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언급하면서 공개되었다.

그러던 푸틴이 20여년이 지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왜 그랬을까. 그 사이에 러시아와 나토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푸틴의 제안은 임기 1년을 남겨둔 클린턴 행정부에 묵혀 있다가 그해말 당선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무시되었다. 20019·11 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푸틴은 부시 행정부의 반테러 정책에 협조했다. 러시아는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비군사물자에 한해 영내 통과를 허용하기도 했다.

푸틴이 집권 초기에 미국과 협력하고 심지어 나토에 가입하려 한 것은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구소련은 15개 독립국으로 해체되고,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영향권에서 떨어져 나갔다. 2차 대전 패전후, 독일이 동부 영토를 폴란드에 떼주고 오스트리아가 독립하고,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다만 독일은 전쟁에 패했지만 소련은 자유화 바람에 내부에서 붕괴되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위키피디아
블라디미르 푸틴 /위키피디아

 

푸틴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에 동독지역 드레스덴에서 KGB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무기력하게 동유럽 공산정권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스크바에선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푸틴은 KGB를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수하에 들어가 일했다. 세기와 밀레니엄이 바뀌는 순간인 19991231일 옐친이 갑자기 하야하고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푸틴이 어떻게 러시아의 지도자로 선택되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나토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면 미국은 러시아와 동맹이 되어 전쟁을 할수 없게 된다. 소련 붕괴후 미국이 나토를 존속시키려는 명분을 잃게 된다.

소련과 동유럽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 조약기구(WTO)19914월에 해체되었다. NATOWTO는 동서 냉전의 산물이다. 냉전구조가 해소되어 WTO는 해체되었는데 나토는 해체하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에 간섭하려 했고, 유럽국가들도 러시아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으로 미군이 계속 주둔하길 바랬다.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은 나토 지속의 명분을 찾았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면서 반테러 전쟁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악의 축에서 빠져 있었다. 푸틴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테러 전선에 공조했다. 그는 체첸 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무력진압을 정당화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과 보리스 옐친 /위키피디아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과 보리스 옐친 /위키피디아

 

나토는 공산권 붕괴 이후 동진을 시작했다. 소련은 독일 통일을 인정하며 동독에 나토군이 주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독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그런데 나토군은 소련군이 철군하자 곧바로 동독에 주둔했다. 1999년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나토에 가입했다.

푸틴이 나토에 분노하게 된 계기는 옛소련 공화국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이다. 2003년 그루지아에서 장미혁명이,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 2005년 키르키즈스탄에서 튤립혁명이 일어났다. 푸틴은 장미, 오렌지, 튤립 혁명의 배후에 서방세력이 있다고 믿었다.

2004년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 또는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 7개국이 같은 날짜에 나토에 가입했다. 발트3국은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다. 이제 완충지대도 사라졌다.

푸틴은 러시아가 고립되고 있음을 절감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토라고 생각했다. 그루지아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런 나라에서 레닌 동상이 무너지고, 스탈린 기념관이 폐쇄되고 있는데 대해 푸틴은 본노를 참지 못했다.

 

NATO와 러시아 /위키피디아
NATO와 러시아 /위키피디아

 

푸틴은 서방세계의 압박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다. 20088월 푸틴은 그루지야 북쪽의 () 오세티아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그루지야를 침공하고 닷새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이 전쟁에서 양측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잃었고, 남 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그루지야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EU가입을 지지하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나 친러 정권이 붕괴되었다. 이에 푸틴은 크림 반도를 점령,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돈바스의 러시아 주민을 부추겨 2개의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이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08년 그루지야 침공, 2014년 크림 합병에서처럼 무력을 동원해 상대방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번엔 만만치 않았다. 장기전으로 가면 러시아의 타격도 크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마비시킬수 있다. 옐친을 무력화시킨 1998년 국가파산이 푸틴에게 재연될 수도 있다.

 


<참고자료>

FT, Vladimir Putin, Russia’s resentful leader, takes the world to war

Wikipedia, Vladimir Putin

Wikipedia, RussiaNATO relations

Putin Says He Discussed Russia's Possible NATO Membership With Bill Cli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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